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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내미 이 복 희 Dec 02. 2023

그녀, 나의 연인





내가 이렇게 처참한 모습이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몸의 장기란 장기들은 다 들춰졌다. 몸이 이렇게 복잡한 구조로 되어있는 줄 미처 몰랐다. 백마같이 쭉 빠진 본래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나를 자신의 분신처럼 여겨온 그녀가 이런 내 모습을 본다면 얼마나 마음 아파할까.

그녀가 원하는 곳이면 나는 언제나 구름 위를 날듯이 다녔다. 그날도 동인지 교정 작업이 있는 그녀를 태우고 콧노래를 부르며 가고 있었다. 그날따라 신호가 잘 맞아떨어져 더 신나게 달렸다. 삼거리에 못 미쳐 황색 신호등이 깜빡거렸다. 앞차가 갈 듯 말 듯 망설이더니 멈췄다. 그녀도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았다. 나도 멈추려고 있는 힘껏 용을 썼다. 다행히도 앞차와의 거리가 어느 정도 확보되었다. 그녀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뒤에서 총알같이 달려오는 승용차가 보였다. 갑자기 심장이 쿵쾅거렸다. 나를 들이받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 순간 그녀의 몸이 돌처럼 굳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는 핸들을 있는 힘껏 잡고 브레이크를 밟았다. 브레이크를 밟는 힘이 그렇게 셀 줄이야. 룸미러에 고정되어 있던 그녀의 두 눈이 질끈 감겼다. 피할 수 없는 운명에 몸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

“꽈당!”

전신을 여지없이 강타당하는 동시에 앞차를 된통 들이받았다. 그야말로 샌드위치가 되었다. 앞뒤 범퍼가 다 부서지고 트렁크가 밀려들어가고 내장에서 연기가 술술 올라왔다. 중상이었다. 뉴스로만 접하던 삼중 추돌 현장의 당사자가 되고 말았다.

“큰일 났다. 어떡해!”

그녀가 정신을 잃은 것 같았다. 몸이 망가진 충격 때문이긴 하지만 잠시라도 그녀를 잊은 것이 미안했다. 그녀의 의식이 빨리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뿐, 어찌해줄 수 없는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그녀에게 온 정신이 쏠렸다. 뒤차의 운전자인 듯한 남자가 뛰어와서 그녀를 부르며 깨웠다. 다행히도 그녀는 이내 의식이 돌아왔다. 그 남자는 전적으로 자신의 잘못이라며 괜찮으시냐고 거듭 물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견인차가 일등으로 달려왔다. 곧이어 경찰차가 왔다. 상황을 짐작한 경찰은 내가 폭발할 위험성이 있으니 모두 빨리 도로 건너편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라고 했다. 어쩔 줄 몰라하던 그녀도 부축을 받으며 건너갔다. 망신창이가 된 나는 어느새 견인차에 묶여 있었다. 건너편에서 공연히 앉았다가 섰다가 하는 것으로 보아 그녀는 정신이 들락날락하는 것 같았다. 가끔은 눈시울을 닦기도 했다. 달려가서 보듬어주고 싶었지만 나는 이미 구급차 신세를 지고 있었다.


나는 지금 수술 중이다. 나를 사망 처리하겠느냐는 보험사의 말에 오금이 저렸다. 우리의 인연이 여기에서 끝이란 말인가. 치료비가 몸값보다 더 많이 나간단다. 나는 완전히 절망했다. 사망처리가 된다고 해도 어디다 하소연할 능력도 없지 않은가. 그런데 그녀는 보험금 이외의 치료비를 부담하고라도 나를 버리지 않겠다고 했다. 가슴이 뭉클, 울 뻔했다. 처음 태어난 그때처럼 감격이다. “야호!” 몸은 완전히 해체되어 있어도 마음은 따뜻하다.


처음 그녀를 주인으로 맞을 때가 생각난다. 그녀의 셋째 아이가 태어날 즈음에는 두 자녀나 한 자녀가 대세였다. 세 아이를 데리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이 아이들이 다 아주머니 아이가 맞느냐는 기사들의 말이 그녀의 귀에 딱지로 앉을 정도였다. 참다못한 그녀는 남편과 상의 끝에 나를 맞아들였다. 그때가 1999년 9월 7일. 그녀의 막내아들과 나는 열세 살 동갑이다.


그녀는 여러 사람들에게 내가 없이는 살 수 없을 거라고 말하곤 한다. 그때마다 나는 우쭐한다. 내 심장에 키를 꽂는 순간 그녀의 기분이 어떤지 바로 읽어낸다. 우울한 날이면 더 우울한 음악을 틀고, 즐거운 날은 더 경쾌한 음악을 튼다. 급한 일로 서둘러 가속페달을 밟을 때는 그녀의 흥분도 고스란히 알아챈다.


나를 데리고 저수지를 찾거나 하염없이 달리기만 할 때는 틀림없이 남편하고 무슨 일이 있을 때다. 그런 날에는 혹여 몸에 이상이 있을까, 특별히 조심을 한다. 내 품에서 책을 읽거나 커피를 마시며 뭔가를 긁적일 때 정말 그녀가 사랑스럽다.


그녀가 어떤 사정으로 열 살이 넘은 나를 버리지 않는지는 잘 모르겠다. 가끔은 고가품이라도 단박에 사지만 때로는 몇 백 원 가지고도 이리저리 재는 것으로 보아 매우 알뜰한 사람인 것 같다. 그럼에도 내 몸의 이상은 바로 알아채고 즉시 치료를 해 주고 정기검진도 거르지 않는다. 감사할 따름이다.


열세 살이 된 나. 사람으로 치면 일흔 정도의 고령이 아닐까. 그래도 그녀는 내가 편하고 부담 없고 정이 들어서 좋다고 한다. 앞으로 그녀와 함께 할 날이 얼마나 될는지 모르지만, 그날까지 안전하게 모시는 것이 소원이다. 며칠 후면 퇴원할 것 같다. 아마도 그녀는 재회의 기쁨에 벅차 6월의 녹음 짙은 가로수 길을 달리지 않을까. 그녀, 나의 연인을 모실 생각만으로도 설레게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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