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트라우마>
출근길, 치과 건물 앞에서 낯익은 실루엣이 눈에 들어왔다.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그 사람이 고개를 돌려 나를 볼까 봐, 태연한 척 서둘러 치과로 들어갔다.
치과의 불을 켜야 했지만, 불을 켜지 못한 채 숨을 죽였다.
불을 켜는 순간, 그가 문을 열고 들어올 것만 같았다.
떨리는 손. 쿵쾅거리는 심장. 심호흡을 하며 진정시키려 애썼다.
그날도 이랬다.
"그러니까! 왜! 내가 해달라는 대로 하면 되잖아! 왜 안 되는 건데? 사보험 타야 하니까 그렇게 해달라고!"
임플란트 환자였다. 사보험을 타기 위해 번호를 조작해, 허위 청구를 해달라는 요청이었다.
처음엔 타일러도 보고, 설명도 했지만 결국 그는 데스크에서 고성을 질렀고, 진료실까지 들어와 원장님께 행패를 부렸다.
"해주면 되는 거잖아요, 왜 이렇게 유난이에요!?"
원장님의 팔을 툭툭 치며 몸에 손을 대기까지 했다.
원장님이 단호하게 말했다.
"손대지 마세요."
그는 얼굴을 찌푸리며, 여전히 소리를 지를 기세였다.
"법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설명드렸습니다. 이런 식이면 더 이상 진료 보기 어렵습니다."
그러자 환자는 어처구니없는 말을 했다.
"그럼 깎아줘요. 비싸."
결국 문제는 비용이었다.
진료실 안팎, 언제 터질지 모르는 긴장감. 그 안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혔다.
문제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 후로 그는 나와 실장님, 진료실 선생님을 번갈아 괴롭혔다. 특히 실장님이 쉬는 날 데스크를 보는 나에게 전화가 쏟아졌다.
"아니, 내가 아파서 전화했는데 왜 안 받아?" "어제 병원에서 기다렸어. 너무 아파서 잠도 못 잤다니까?!"
점점 감정이 쏟아졌고, 나는 참을 인을 세 번 새기며 응대했다.
"많이 아프셨죠? 어제는 휴진이었어요. 지금은 좀 어떠세요?"
그러자 그는 폭발했다.
"지금은 어떠냐고?! 아프니까 전화했지! 너희 부모가 아프다고 생각해 봐! 그렇게 대응할 거야?!"
그 순간, 나도 터졌다.
부모 이야기가 나오자 화가 났다.
그럼 난? 나는 이런 대우를 받아도 되는 거야?
"그만 소리 지르세요."
매번 날 향해 손가락질하고 소리치던 얼굴이 떠올랐다.
"저는 진료를 도와드리는 사람이지, 감정을 받아주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제 그만하세요."
그는 수화기 너머에서 고성을 질렀다.
"뭐라고? 지금 나한테 명령하는 거야?"
"명령이 아니라,그냥 말씀을 드리는거예요"
말이 끝나자 그는 허탈하게 웃더니,
"명령하지 마! 알아서 할거야."
하며 전화를 끊었다.
그 후에도 몇 차례 같은 일이 반복됐다. 결국 경찰까지 언급하며 경고했다.
그리고 조용히 마무리되었던 사람.
그 사람을, 다시 마주친 것이다.
내 몸은 기억을 떠올렸다. 심장은 쿵쾅거리고, 손끝이 떨렸다.
이렇게까지 반응한다는 것이 놀라웠다.
간판이 바뀌자 다시 치과에 오려했던 걸까.
그날, 그는 점심시간에 병원에 찾아와 원장님을 찾았다.
병원엔 나 혼자뿐이었다. 무슨 일이 벌어질까 두려웠다.
"2시에 진료 시작하니 그때 오세요."
그는 언성을 높였다.
"안다고! 그냥 물어보는 거잖아!"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아까 두려웠던 마음은 이내 차분해졌다.
단호해질 때라는 걸 알았다.
"네, 그러니까요. 2시에 오세요. 지금은 점심시간입니다."
"아, 씨 진짜! 2시라고 그만 좀 말하라니까! 누가 모르냐고!!"
그의 고성이 다시 커졌지만, 나는 흥분하지 않고 단호히 말했다.
"진료시간은 2시부터예요."
순간, 아차 싶었다. 말하지 말라던 그 말을 또 해버렸다.
자극이 될 줄 알았지만, 그는 난리 치지 않고 씩씩거리며 나가버렸다.
온몸에 힘이 풀렸다. 피로가 몰려왔다.
정말 피곤한 일이지만,
한 번 더 확실히 알게 됐다.
언제나 저자세로 나갈 필요는 없다는 것.
우리는 좋은 진료를 제공하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지, 누군가의 감정을 다 받아내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나를 지키는 건, 결국 나 자신이라는 것.
한 겹 더 두꺼워진 굳은살을 만들며,
아무렇지 않은 척,
그날의 진료를 보았다.
그는 2시가 넘고,
다음날이 되어도 나타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