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나서기

누가 더 처음이었을까, 나일까 너일까

by 박하린



온몸에 두드러기가 퍼지고 있었다.

땀띠인 줄 알았는데, 이유식 알레르기 같았다.

범인은 검은콩.


지금껏 될 수 있는 한

유기농에 신선한 재료로 정성껏 만들어 먹였는데,

집에 오래 묵혀두었던 검은콩 때문이었을까.

팔다리로 퍼져나가는 붉은 반점에 마음이 쓰였다.


평일 낮 시간.

병원은 가야겠는데, 8개월이 될 때까지

겁 많은 엄마는 아이와 단둘이 차를 타고

병원에 가본 적이 없었다.


운전하는 동안 뒷자리에서

아이가 엉엉 울면 어쩔 줄 몰라질 것 같아,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동네 병원에

유모차를 끌고 걸어가 보기로 했다.


그때 우리는 오래된 주택가 한가운데

우뚝 솟은 새 아파트에 살고 있었고,

울퉁불퉁한 낡은 길을 유모차로 건너려니

손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좁은 골목을 지날 땐

낯선 사람이 유모차 가까이로 지나가야 했고,

전염병(코로나 시절)이 무서운 세상에

마스크조차 제대로 쓰지 않은 할아버지들이

앞에서 지나갈 때는

어깨가 절로 움츠러들었다.

다가오는 사람을 피해 벽 쪽으로 붙을 때면

가게 앞 가판대와 나란히 걷게 되었고,

알록달록한 물건들만큼이나

내 마음도 조심스러워졌다.


그런데 우는 아기 걱정은 기우였는지,

아이는 날것의 세상을 구경하느라 바빴다.

사람도 많고 알록달록 물건도 많고

떼굴떼굴 굴러다니는 눈동자 굴러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무사히 도착한 소아과에는

나이 지긋한 인자한 선생님이 계셨고,

대기 없는 신속한 진료에

적당한 알레르기 약을 처방받고 나왔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이의 눈은 데굴데굴 신나고

다시 내 어깨엔 잔뜩 힘이 들어갔다


그래도 호기심 가득한 그 얼굴을 보면

왠지 나도 미소가 번진다.


전염의 위험만 아니었다면,

내 어깨도 조금은 느슨해졌을까.

아이가 나 없이 세상에 나아가는 날이 오면

오늘보다 더 조심스러워질 내 마음을 상상해 본다.


오늘은 약 잘 먹고

알레르기만 가라앉으면 될 것이다.

밥도 잘 먹고, 토닥토닥 잘 재우기.

오늘 하루의 할 일은

그저 그거면 충분하다고

나지막이 되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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