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식과 육아의 상관관계
격식을 차린 다는 건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좀 우아를 떠는 방식으로 사는 거랄까. 다르게 말하면 여유가 있어야 격식을 차릴 수 있다. 나 혼자 먹는 밥도 예쁜 그릇을 꺼내고 음식을 정갈한 모양으로 담아 호로록호로록 그 맛을 음미하며 먹는 거. 그게 나를 위한 은근한 격식이었다는 걸 몰랐다.
육아는 격식을 쉽게 포기하기만 든다. 그것보다 너무 중요한 일이 많아서다. 내가 지금 우아하게 숟가락 젓가락 써가며 맛을 음미할 여유가 없어지는, 그게 바로 육아의 알싸한 첫맛이다. 배고픔을 가시려 우걱우걱 밥을 입 속으로 밀어 넣기도, 아무 빵이나 뜯어먹기도, 다 식은 커피를 벌컥벌컥 마시기도. 그런 일들이 아무렇지 않은 일상이 되는 게 육아의 시작인걸 아이를 낳을 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아기는 배고프면 울고 잠이 와도 울고 엄마와 떨어졌다고 운다. 그래서 배불리 먹이고 엄마와 꼭 붙여 잠을 재웠는데도 돌아서면 또 옆에 엄마가 없다고 운다. 그것만 하면 좀 나으려나. 아기가 먹은 젖병도 씻어야 해, 조금 크면 이유식도 만들어야 해, 잘 먹기만 하면 좋으련만 어디를 그렇게 묻히고 뱉어 되는지 빨래는 매일매일 내 마음처럼 뱅글뱅글 돌아간다. 먹는 것만 먹는 게 또 아니라 아무거나 먹으려고 입에 가져가니 온종일 닦아대고 또 쫓아다니느라 집에만 있는데도 하루가 정말 기똥차게 바쁘다.
잠은 부족하고 하루 종일 할 일은 부지런히 많은데 나를 위한 시간을 만들어내는 게 사치 같은 생활을 1-2년 즈음하고 나면, 원래 내가 좀 희미해지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내가 호들갑을 떨어대던 그 격식에서 한 발 물러나게 된다. 좀 서글프게 말하면 내가 사라지는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가 뭐였더라, 내가 즐겨보던 드라마는 언제가 마지막이었지, 아 그 식당은 이제 문 닫았다고? 내가 그 시기에 나에 대해 알게 된 건 ‘내가 속을 뻥 뚫어주는 라거를 좋아했었구나’라는 거 정도?
그리고 아이가 세돌이 넘어가고 단순히 말을 하는 걸 넘어서 사람과 사람의 대화가 소통이 되더니 제법 나의 아들은 사람의 자태가 뿜어져 나오는 유아가 되어있었다. 그렇게 아이와 조금 떨어져 있는 시간이 생긴 나는 조금씩 다시 예쁜 그릇을 꺼내기도 하고 예쁜 옷을 사모으기도 했지만, 글쎄 그건 예전의 그 격식은 아니었다.
예전에 나는 그 옆에 책을 뒀을까 티브이를 뒀을까 확실하지 않지만, 확실한 건 장난감은 아니었다. 예쁜 그릇을 꺼내긴 했지만 정갈하게 담긴 음식의 맛을 호로록호로록 음미할 수는 없었다. 뭐 내 요리실력은 음식의 미에 집중하던 시절보다 당연히 월등히 좋아졌지만 말이다.
나는 아이 돌 때까지만 버티면 다시 내 인생을 조금은 다시 찾는 줄 알았다. 그래서 돌 때까지 버티자, 버티자 하는 마음으로 그 시절을 참 열심히 살아냈다. 모든 음식을 만들어 먹이고, 발달도 열심히 체크하고 월령별로 집안 세팅도 바꿔주며 말이다. 그런데 돌이 지나가고 또 지나가도 내 인생은 돌아오지 않았다. 내 격식은 저만치 멀리 있었다. 내가 간절히 원했던 아이였지만 내 인생에 아이가 함께한다는 게 진정 어떤 건지는 몰랐던 거다.
아이가 태어나고 지구가 다섯 바퀴만큼 돌고 난 지금 내 인생은 완전히 바뀌었지만 그게 전혀 싫지는 않다. 그냥 언젠가부터 난 엄마로 아이와 함께하는 삶을 받아들이기로 했고 그러자 아이가 있는 채로 나의 격식을 만들어내기 더 쉬워졌다. 우아함과는 좀 거리가 멀지도 모르겠다. 틈날 때 조금씩이라도 책을 읽는 것, 내가 좋아하는 원두를 사두고 아침마다 음미하는 일, 설거지를 하면서 가끔은 드라마도 챙겨보는 시간, 내 감성과 취향을 지키는 소비를 하는 것. 짬짬이 격식이랄까? 내 격에 맞는 방식은 내가 정하면 되는 거니까.
아마 아이가 어린 시절, 제일 바쁘게 동동 거리며 사는 이 시절이 가슴 시리게 제일 행복하고 아름다운 시절일지도 모른다고 가끔 생각한다. 세상에 나에게 이런 사랑과 행복을 주는 존재는 없었으니까. 그리고 아들은 결국 독립해서 내 품을 떠나갈 존재니까. 영원하지 않은 것만큼 반짝이는 게 어디 있을까. 원래 인생은 흐르는 강물처럼 땅의 변화에 맡게 흘러가는 거니까, 내가 물이 되어 모습을 바꿔보기로 했다. 그렇다고 내가 물이 아닌 게 되는 건 아니잖아?
난 이제 내 인생의 지형이 기대된다. 내가 살아온 굽이굽이 친 곡선이 내 바다를 더 멋지게 만들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