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라는 계급장

네버랜드에서 웬디로 산다는 건

by 박하린


어린 시절, 엄마와 같이 버스를 타면 버스 손잡이를 그렇게 잡고 싶었다.

그 시절 나에겐 어른이 된다는 것은 까치발을 해도 안 닿는 거리만큼 멀리 있는 상상 속의 일이었다.

그런데 마치 흔하디 흔한 회상 장면처럼,

버스 차창의 풍경이 스쳐 지나가듯 어느샌가 스쳐가 버린 세월 뒤로,

어느새 나는 버스 손잡이를 잡고도 팔꿈치가 접히는 만큼의 어른이 되었다.


육아 휴직을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30대 초중반 언저리였던 나는, 직장에서 경력 있는 막내라인과 같은 느낌이었다.

몇 년 아이를 키우며 또 다른 세계를 경험하고 돌아갔을 땐, 나는 왠지 모르게 막내 라인을 벗어난 어른 취급을 받았다.

사회 초년생인 신규라인이 나를 어려워하는 걸 처음 느꼈을 때 내 마음을 스친 그 이질감이란.

나도 너랑 별반 다르지 않다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사실 우리는 달랐기에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어떤 면에서 나이는 계급장이었다.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아도 커지는 숫자만큼

사람들은 나를 달리 대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를 실제 나이보다 어리게 보는 말에는 여전히 기분이 좋다. 자연스레 얻은 계급이 편하고 좋기도 하지만 또 동시에 어려 보이는 게 좋다니.

얼마 전, 대학 캠퍼스를 거닐며 본 학생들은 이유 없이 밝아 보였다. 햇살에 아직 닳지 않은 표정과 몸짓이 빛났다.

우리는 젊어 보이고 싶은 게 아니라 아직 끝나지 않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여전히 매력적인 존재로 남고 싶은 것인지도.


지금 나의 아들은 과거의 나처럼 어른이 된 세계를 꿈꾼다. 혼자 운전을 하고 맛있는 걸 혼자 만들어먹고 힘도 더 세지는 어른이 되고 싶다고 했다.

독립과 자유를 꿈꾸는 아이가 귀엽고 기특해 미소가 지어졌다. 하지만 곧 나는 마음이 씁쓸해졌다.

아들에게는 자유의 반짝임은 보이지만 책임의 무게는 보이지 않는다. 나이라는 계급장은 자유와 책임이라는 두 얼굴을 가졌으니까.

그래서 그랬던가. 어른이 되고 난 후에 본 피터팬은 어딘가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피터팬의 세상은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방금 친했던 애도 금방 잊어버리고 싸움도 놀이가 된다. 리더 역할을 하고 자기 마음대로 규칙을 만들면서 그와 동시에 결과에 무심하다.

늙지도 않고 책임은 안 지면서 자유로운 대장 역할을 자처하는 꼴이라니!

결국 네버랜드에도 웬디가 필요했다. 피터팬이 외면하는 일들을 대신 감당하는 사람. 책임을 정리하고, 관계를 이어 붙이고,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세상을 굴러가게 만드는 사람. 누군가 늙지 않는다는 건, 다른 누군가가 그 몫의 세월을 대신 짊어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순간 꼭 피터팬 같은 몇 사람의 얼굴이 스쳐 지나간다. 피터팬은 아마 어른이 된 적이 있었던 사람일지도 모른다. 어른들은 책임을 벗어던지고 싶고 아이들은 어른이 되고 싶어 하니까.


나는 피터팬이 불편하다고 했더니 아들이 왜 불편하냐고 되물었다. 아마 그 질문은, 아직 아무것도 포기해보지 않은 사람만 할 수 있는 질문일 것이다. 피터팬이 불편한 건, 우리가 이미 어른이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책임 없이 유지되는 관계는 없고 권위에는 대가가 있고 시간이 지나면 무엇이든 낡는다는 걸. 피터팬은 부러운 존재가 아니라, 우리가 되지 않기로 한 모습에 가깝다.


어린 시절의 나는 버스 손잡이를 잡을 수 있게 되면 그 시야만큼 새로운 게 보이는 된다는 건 미처 알지 못했다. 평균 수명의 절반을 지나가는 중인 나는 계급장은 갖고 싶지만, 낡고 싶지는 않다. 나는 어떤 어른이 될지 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계속 그걸 생각하며 산다. 방향 없이 나이 드는 건 불안하고, 방향을 정하는 건 답답하다. 아마, 나는 웬디이기도 하고 동시에 피터팬이다. 우리 모두가 그렇듯이.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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