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잠자는 숲 속의 공주의 부모였다면?
아이를 간절히 바라던 왕과 왕비에게서 태어난 공주의 첫 번째 생일.
공주는 열다섯 번째 생일에 물레에 찔리면 깊은 잠에 빠진다는 저주를 받는다.
이에 아버지인 왕은 온 나라에 있는 물레를 없애버리고 공주는 평생 물레라는 물건은 알지 못한 채 자란다.
그리고 열다섯 살이 되었을 때 저주를 내린 요정의 꼬임에 넘어가
난생처음 보는 신기한 물레를 만져보다 결국 잠이 들고 만다.
스노우 플로우라는 신조어가 있다.
우리말로 하면 제설기 부모쯤 되려나.
눈을 치우듯 부모가 한 발 앞서 나가서 자녀가 실패나 좌절을 겪지 않도록 아예 장애물을 치워버리는 걸 말한다.
아이에게 잠자는 숲 속의 공주를 읽어주다 문득 스노우 플로우라는 말이 떠올랐다.
내가 왕이었다면. 공주의 부모였다면 어떻게 해야 했을까.
당장 물레를 죄다 없애버리고 싶은 그 마음은 같다.
나라도 저주를 피해 갈 수 있다면 모든 위험요소를 제거하고 싶었을 거다.
잠깐 다시 이야기를 비틀어본다. 이런 건 어떨까.
어느 정도 자란 공주에게 물레라는 걸 알려주고 네가 저주를 받았으니 이 물레에 절대 찔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된다고 알려준다면?
공주는 언젠가 다가올 저주를 문득문득 두려워하며 불안해하다가 결국 나쁜 요정의 꾐에 넘어가 물레에 찔리고 말까?
혹은 다행히 15살의 저주는 피했지만 저주를 피하느라 온갖 것을 조심해서 다양한 경험을 하지 못하고 말까?
저주받은 공주의 미래는 무한한 가능성의 갈래로 나뉜다.
물레에 절대 찔리지 않기 위해 온 왕궁이 조심하며
매일 살얼음판 위를 걷듯 살고 있던 공주에게
놀이의 재미를 알려주는 친구가 하나쯤 있었더라면.
사랑 가득 받고 여러 가지 경험을 많이 하고 자란 당찬 공주가
나쁜 요정을 만났을 때 낯선 사람이 나에게 베푸는 친절과 가식을
단박에 구별해 내었다면.
부모의 사랑은 언제 공포로 변하는가.
너무 사랑하는 만큼 불안해진다.
이십 대 초반 대학생이던 시절,
처음으로 자유 해외여행을 가게 되었다. 무려 일본으로.
고작 비행기로 1시간 남짓 걸리는 가까운 곳이었지만
나에게는 불안한 만큼 빡빡한 표로 채워진 여행계획이 있었다.
그로부터 20년쯤 지난 지금의 내 여행은 좀 다르다.
물론 바람 따라 물 따라가지는 못하고
교통과 숙소를 예약해 두고 대략적인 할 일을 정해두지만
빡빡한 할 일 목록에 즐거움이 스며들 자리가 부족하지 않도록,
즐거움이 스며들 자리를 남기기 위해 사진조차 찾아보지 않는다.
나는 알기 때문이다. 조금 시행착오가 있어도 괜찮고,
어쩌면 그 자체가 여행의 묘미라는 것을.
우연히 들어간 식당이 맛있으면 즐겁고
맛없으면 추억거리가 생긴다.
내 인생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예상하고 준비한 대로 펼쳐지기는커녕,
인생은 늘 새로웠고 다채로웠다.
하물며, 내가 우리 아들 인생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내가 내 인생도 잘 모르는데
아이의 인생을 어떻게 설계할 수 있을까.
아이가 태어나고 1년, 나는 정말 분주했었다.
아이가 제때 해결해야 할 과업이 명확했기 때문이다.
마치 걸음마를 향해 가는 그 일 년을 같이 통과하는 기분이었다.
매달 발달에 좋은 교구들로 바꿔주며 발달을 도와주려 애를 썼지만
좀 지나고 나니 그제야 보였다.
아이는 그냥 절로 자라기도 하는 거였다.
내가 굳이 발달에 맞는 장난감을 들이밀지 않아도
아이는 자기 발달에 맞는 무언가를 기가 막히게 찾아서
자기만의 방법으로 기가 막히게 놀기도 한다는 것을.
부모인 내가 해줘야 하는 건,
그런 교구를 많이 사는 일이 아님을.
혹은 좋다는 학원만을 보내는 일이 아님을.
사실 부모 노릇은 돈으로는 절대 살 수 없다는 것을.
난 내 아이를 믿기로 했다.
육아에서 제일 힘든 건
의도적인 방임이다.
내가 아이에게 주고 싶은 것은 아주 크고 안전한 울타리다.
나이가 자랄수록 울타리는 조금씩 커질 것이다.
아주 결국에는 울타리가 있어도 아이 눈에는 미처 보이지 않을 정도로 크고 넓으면 좋겠다.
푸르른 들판에서 뛰어노는 아이를 생각하면 마음이 흐뭇해진다.
때로는 눈이 와도 비가 와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집으로 뛰어 들어와! 따뜻한 수프와 품을 내어줄게! 정도 아닐는지.
적어도 나 정도의 인생을 살면 어떻겠냐고 생각해 본다.
아이를 믿는다는 건 의외로 나를 사랑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내가 걸어온 울퉁불퉁한 길들이 꽤 괜찮은 여행이었다고 인정할 때,
비로소 내 아이의 앞길에 쌓인 눈을 그대로 둘 수 있다.
그 눈을 치우며 얻을 수 있는
무엇으로도 살 수 없는 나만의 것을 만들어 나갈 기회를
나는 아이에게서 빼앗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