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엄마로 살아남기-
내가 사는 미국 교외지역에서는 운전을 하다 보면 roundabout을 정말 자주 만난다.
round about은 네 갈래 이상의 길이 둥글게 맞물려 있는 곳이다.
그곳에서는 일단 각자의 입구에서 멈춰 섰다가
신호등 없이 대신 먼저 빈 틈이 나는 쪽이 지나간다.
그렇다.
우리말로 하면 회전교차로쯤 되는 개념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보던 회전교차로와는 조금 다르다.
한국에서는 보통 교통량이 많지 않은 곳에서 흐름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설치하지만
미국에서는 생활권 도로, 주거지, 심지어 비교적 큰 교차로에도 좀 더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그래서 조금 더 자주 만나고 조금 더 큰 규모로 만나게 된다.
출퇴근 시간에는 round about 주위로 어떤 차선에는 긴 줄이 늘어서기도 한다.
round about에서의 순서란 꼭 먼저 온 사람이 빨리 가는 건 아닌 것이,
여러 갈래 길이 만나는 곳이라 내가 서 있는 줄이 길면 나는 좀 더 오래 기다려야 하고
다른 쪽 줄이 길어도 내가 서 있는 곳의 차가 나뿐이라면 더 일찍 지나갈 수도 있다.
그래서 여기서는 선착순의 정답이 조금 애매하다.
적당히 기다리면서 내 순서를 눈여겨보다가 지나가야 한다.
너무 양보하면 오히려 흐름을 망치게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내가 갈 수 있는 타이밍이 언제일까
조금 더 눈치 보는 상황 판단력을 더 요구한다.
미국에서 사는 건 어쩌면 어떤 부분에서는 꼭 round about을 닮았다.
눈치껏 상황 봐서 서로 양보하며 지나가는 것.
그건 꼭 온 순서와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아무도 완전히 밀려나지 않는 방식을 닮았다.
아들 수영 수업 코치를 바꾸려고 하던 참이었다.
뭐든 잘하지도 못하는 영어로 해야 하는 데다가 암묵적인 규칙도 모르니
미국에서 뭐든 새로운 걸 시작하면 하기도 전에 일단 마음이 곱절로 피로해진다.
일단 숨 한번 크게 들이쉬고 1:1 코치를 구한다는 내용을 담아
클럽담당자에게 신중하게 작성한 메일을 보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 답이 없다.
조급한 마음에 그룹 수업도 알아보니 한 자리가 남았다.
일단 그룹 수업에 냅다 등록하고 다시 클럽 담당자에게 메일을 보냈더니
코치가 곧 연락이 올 거라고 했다.
또다시 그로부터 며칠 뒤,
드디어 수영 코치에게 연락이 왔다.
다행히 그 뒤로는 일이 일사천리도 진행되었지만,
비슷한 시점에 보냈던 내 골프 레슨 문의는
몇 주가 지난 지금도 아직 답이 없다.
내가 질문을 너무 많이 했나?
꼬치꼬치 물어서 귀찮은 회원의 느낌을 준 건가?
아니면 내가 외국인이라서?
혹은 초보라서? 외국인 여자라서 배제되는 걸까?
한국에서의 수영 수업 등록은 어땠을까.
선착순으로 등록을 하고 대기가 생긴다면 번호가 정해진 대기표를 주었던 거 같다.
순서가 정해져 있고 명확한 대기.
암묵적이지만 아주 정확한 규칙이 있어서
틀리면 이의제기를 하기도 쉬운 구조.
여기서의 대기는 선착순이 아니었다.
가능한 사람 먼저, 적극적인 사람이 먼저.
혹은 덜 불편할 거 같은 사람이 먼저 일지도.
소송의 나라라고 했던가.
그래서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기도 한다지만,
빨리빨리의 선착순의 나라에서 온 나는 때로는
이 두루뭉술한 방법이 꼭 round about을 돌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신호등은 규칙을 명확하게 제공한다. 빨간불은 멈추고 초록불은 지나가기.
출퇴근시간에 길게 늘어져있던 신호대기 줄에, 누군가가 끼어들면 그렇게 짜증이 나곤 했다.
'나는 지킨 규칙을 왜 너는 지키지 않는가'에 대한 분노였던 거 같기도 하고
'나는 기다려온 시간을 너는 왜 기다리지 않았가'에 대한 억울함이었던 거 같기도 하고.
round about에서도 질주하는 차들도 있다.
거기서는 왠지 '아, 너무 급한 일이 있나 보다'라고 생각하게 된다.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기준을 받아들이는 유연함이라고 해야 할까.
round about의 공정함은 사실 모두가 같은 규칙을 지켜서 생긴 공정함이 아니라
나만 손해 본 느낌이 안 드는 것에서 오는 공정함일지도 모른다.
오늘은 내가 조금 많이 줄 서야 하지만, 내일은 내가 빨리 갈 수도 있는 구조.
기준이 흐릿한 대신, 억울함이 말랑하게 네 방향으로 흩어져간다.
그래서 누구 하나를 오래 미워하기 어렵다.
아니, 오래 붙잡고 있을 명분이 희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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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상하게도,
미국이라도 복잡한 도시로 갈수록 클락션은 늘어난다.
나라가 달라도, 환경이 바뀌면 소리는 비슷해진다.
어쩌면 태도는 미덕이 아니라 조건일지도 모른다.
혹시 결국 환경이 어떤 태도를 보상하느냐에 따라 사람이 바뀌는 건 아닐까.
양보는 미덕이라기보다, 그 사회에서 가정 덜 손해 보는 선택일 때, 작동하는 것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