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 앞에서

그냥 그렇게

by 박하린



미국 워싱턴의 에어 앤 스페이스(Air and Space) 박물관에 갔다. 플라네타리움의 거대한 돔 넓게 펼쳐진 천장 위로 별빛이 쏟아져 내렸다.

멀리 뻗어가는 시선을 따라 태양계 밖 별을 탐험하고자 하는 다양한 가능성이 펼쳐졌다.


별들이 가득한 아주 까맣고 까마득하게 넓은 우주. 내가 사는 지구도 나보다는 훨씬 넓고 큰데,

태양계보다 더 넓고 큰,

그런 세상을 나는 감히 가늠이나 해볼 수 있을까.


태양계 너머의 가장 가까운 별이라는 ‘프록시마 센터우리 b’라는 행성에 가려면 빛의 속도로 4년이 걸린다고 했다.


현재 기술로는 비행기는 오백만 년,

스포츠카로는 이천 이백만 년을 꼬박 달려야 닿을 수 있는 거리. 인간의 생애를 수만 번 포개어도 닿지 못할 시간이다.


내가 지금 당장 우주선을 타고 출발해도

평생 우주선에서 살게 될 수백 세대 이후 도착하게 될 생명이 살 수 있을지도,

그렇지 않을지도 모르는 그 행성을 떠올리니

나는 마치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다고 해서

그 행성이 꼭 더 위대한 존재였던가.

다만, 가늠 안 되는 숫자와 찰나의 탄식에 머리가 아득해졌을 뿐.

프록시마 센터우라 b가 생겨난 것이나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나 막상 크게 다른 일은 아니다.


그저 우주 에너지가 거듭한 우연의 파편들로

어쩌다 존재가 생겨난 것일 뿐.

감히 헤아릴 수 조차 없는 우연의 소용돌이가,

우주의 에너지들이 빛처럼 순간에 날아드는 장면을,

그 순간을 향한 수많은 우연들을 헤아려본다.


어쩌면

삶은 온통 내 선택이 아닌 것으로 버무려진 것이다. 아이의 탄생도 그랬다.

우리 아이는 40주가 넘어도 나올 기미가 없었다.

배가 점점 불러오는 채로 유도분만을 하기로 했는데 하룻밤이 꼬박 지나도 또 나올 기미가 없었다.

그렇게 자연분만을 꿈꾸던 엄마가 진통을 조금 더 참지 못해서, 의사 선생님의 빠른 집도로,

아이의 태어나는 날과 시간이 정해졌다.


내 탄생 시간이야 내가 정할 수 없었을지 몰라도

내 아이의 탄생의 시간은 예상한 범위에 있을 줄 알았다.

본디 삶이란 것이 원하던 데로 흘러가지 않는 것을 몰랐던 것도 아니면서,

탄생의 시간을 가늠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니.

내가 힘주며 노력하면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니.


나는 저 먼 별에도 갈 수 없고 내일 날씨도 정할 수가 없다.

나는 여기 숨 쉬며 살아 있을 뿐, 나 또한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행성과 크게 다르지 않다.

태양은 빛을 뿜고, 지구는 돌고, 달은 그 주위를 돈다. 모든 행성이 항성이 될 필요는 없다.


드디어 봄이 오고 있나 보다.

푸르른 바람이 나를 스친다. 초록 물결이 가득 찬다. 나도 같이 초록 물결에 실려 바람을 탄다.

꽃이 피면 나도 같이 꽃이 될 준비를 한다.

그냥 그렇게 산다. 오늘도 커피가 참 맛있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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