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니까

by 박하린


아이가 투정을 부렸다.

어린이집에서 소풍을 다녀온 날이라 새벽부터 일어나 아이가 좋아할걸 생각하며 부지런히 도시락을 쌌던 날이었다.

‘오늘 엄마 하나도 안 보고 싶었어! 어린이집 너무 재미있었어’

얼굴을 보자마자 내뱉는 그 말에 샐쭉 삐죽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고도 계속 엄마는 보고 싶지 않았다며 집에 가지 않겠다고 우기는 통에 겨우 반을 나서서 복도를 가는 내내 툴툴 심술을 부리는 아이.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라는 말이 머릿속을 가득 메운다.

내가 왜 아침부터 일어나 도시락을 쌌는데?

그런 내가 왜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는데?


가득한 머릿속 안개 사이로 이유가 슬며시 튀어나온다.

어른이니까.

어른.

내가 더 나이가 많으니까,

내가 더 성숙해야 하니까,

내가 어른이니까 그렇게 하기로 한다.


어른

1. 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

2. 나이나 지위나 항렬이 높은 윗사람

3. 결혼을 한 사람


굳이 사전을 찾아보니 세 개 다 해당 안 되는 곳이 없다. 40 언저리 즈음 되니 어른이 아니라고 우기기도 좀 머쓱하다. 아이는 5살이니, 이리 봐도 저리 봐도 내가 더 성숙해야 하는 어른인 건 확실하다.


확실한데, 이상하게 어른이 되고 나서도 내내 내 마음속엔 아이도 함께 산다. 10대 혹은 20대..

아직 단체 속에서 늘 막내이고 아이였을 그 시절이 마음 한편에 있다.


자식이 내는 생채기가 제법 상처가 된다.

그래도 나는 나 스스로 내 상처를 어루만져야 하고 아이의 상처도 내가 어루만져줘야 한다는 사실을 겨우겨우 떠올리고 엄마가 보고 싶지 않았다는 말을 그만큼 오늘 하루가 즐거웠다는 말이었으리라고 생각하기로 한다. 그래도 그렇게 말하는 건 엄마가 너무 섭섭하고 슬프다고는 이야기해 줘야지.



"엄마가 보고 싶지 않았다는 말이 엄마는 무척 섭섭했어. 하지만 그 말은 그만큼 오늘 하루가 즐거웠다는 뜻이지? 엄마는 아침부터 일찍 일어나 도시락을 싸면서 너의 하루가 즐겁기를 바랐어. 소풍이 즐거웠다니 너무 좋지만 그래도 엄마는 엄마를 보고 싶지 않았다고 하니 섭섭해. 나는 네가 많이 보고 싶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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