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준 사랑은 진짜 무조건이었을까?

나는 사랑을 주는 중인데, 혹시 조건이 붙었을까

by 박하린


어른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는 아이의 간절함이 참 애틋하다.


나의 네 살 아이는 혼나고 난 뒤 나에게 종종 미안하다는 사과를 건넨다.

엄마가 웃으면 자기도 배시시 웃는 그 모습이 귀엽고 애틋하다.


부모에게 기대어 살아야 하는 삶.

어딘가 본능적으로 아이는 부모의 기대에 맞추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걸 알 것이다.

그래서 훈육도 가능하고 사회화도 가능하겠지만,

난 부모로서의 내 기대를 ‘무’로 만들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한다.


부모가 어느 정도의 보살핌을 주는 것은 당연하니까,

보살핌에 어떤 대가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정말 아무 기대가 없을까!

밥은 얼마큼 먹었으면 좋겠고,

잠은 언제 자면 좋겠고 부터 시작해서

여섯 살인데 글은 언제 읽나 싶은 순간까지.

어디 그뿐이랴. 아들의 미래까지 그리다 보면,

때로는 우리 엄마도 바랐고 남들이 다 바라는 그 평범한 삶

어느 지점이 행복에 닿기 쉬운 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어쩔 때는 내 결핍이 알아차리지도 못한 채 아이에게 흘러가 버리기도 하고.


그럴 때마다 아이가 원하는 행복은 무엇일까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너의 목소리를 듣고, 너의 마음을 듣고, 그 너머를 헤아려 보려 애써 본다.


그래도 완벽한 부모는 되지 못할 테고, 어느 생채기를 마음에 남길 수도 있겠지.

그렇다 하더라도 그 정도쯤은 어렵지 않게, 쉬이 용서할 수 있을 만한 사랑을 퍼부어 주고 싶다.

내가 너에게 받은 과분한 사랑을 갚을 수 있도록, 햇살이 쏟아져 내리듯 사랑 샤워를 퍼부어 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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