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졸업하던 해, 나는 운이 좋았다.
지방 국공립대를 나와, 지역에서 그래도 이름이
알려진 중견기업에 바로 입사할 수 있었다.
그때만 해도 취업의 문이 지금처럼 좁지는 않았다.
주변 친구들도 대부분 각자의 자리에서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고 있었다.
신입사원 연수를 마치던 날, 나는 생각했다.
“나도 드디어 직장인이 되는구나.”
정장을 차려입고 첫 출근하던 아침,
나는 약간의 두려움과 설렘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그 설렘은 팀장님의 한마디로
순식간에 현실이 되었다.
"내일부터는 정장 안 입고 와도 돼"
내가 배치받은 곳은 생산관리부서였다.
현장관리를 주로 담당하는 부서였기에
굳이 불편한 정장을 입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대신 내 책상 자리 위에는,
TV 속에서만 보던 작업복 두세 벌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내가 그리던 ‘회사생활의 이미지’는
이곳과는 조금 다를지도 모른다는 것을.
같은 부서에 배치된 동기는 현장에 한 번
나가본 뒤 바로 사직서를 냈다.
그리고 다음 날, 그 동기의 자리는 비어 있었다.
그렇다.
나는 이 회사가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
이 부서가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맡는지도
모른 채, 그저 ‘취업’이라는 목표 하나로 이곳에
들어온 것이었다.
출근 첫날부터 쏟아지는 일거리,
생각보다 훨씬 거친 분위기,
그리고 멈출 틈 없이 돌아가는 현장의 속도..
그토록 바라던 ‘회사생활의 로망’은
단 하루 만에 무너져 내렸다.
서류 복사부터 커피 심부름, 회의 준비까지.
선임 네 분 밑에서 막내로 지내던 시절,
온갖 잡일을 도맡아 처리해도 늘 시간이 부족했다.
야근은 일상이었고, 회사 불빛이
꺼질 때까지 남아 있는 날이 많았다.
주말도 예외가 아니었다.
한 달에 고작 한두 번 쉬는 것이 전부였다.
그래도 “신입은 다 그런가 보다.”
그렇게 스스로를 달래며 버텼다.
처음에는 그래도 일이 재미있었다.
도면을 보고, 그것이 실제 제품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지켜보는 일은 신기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마음 한편이
점점 무거워졌다.
내가 원하는 일이 과연 이게 맞을까?
그 의문이 서서히 커져갔다...
그래도 나는 그 시절을 버텨냈다.
주어진 일이라면 책임감 있게 끝내야 한다는
마음 하나로.
그때의 나는 아직 세상을 잘 몰랐고,
“열심히 하면 언젠가는 나에게 다 도움이 되겠지.”
그 믿음 하나로 하루하루를 견뎠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시절의 나는 참 순수했다.
불평하지 않고, 주어진 일에 몰두했던 그 시간들이
결국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믿고 있다.
그때의 야근, 잡일, 그리고 스트레스가
그 당시에는 그저 고단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 모든 순간이
내 마음의 근육을 단련시켜 준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