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공허한 그 질문. 질문을 하는 이도, 받는 이도 모두 행복에 목마름이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질문이다.
'행복' 이라는 주제는 삶의 종착적인 목표로서 추구되어지고, 많은 철학자들에 의해 연구되어왔다. 그럼에도 '그래서 정말 행복하십니까?' 라는 질문은 참으로 우리를 괴롭힌다. 왜일까. 그건 아마도 우리가 쉽게 '네! 그렇습니다' 라고 대답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행복' 을 '행복감'을 느끼는 것이라고 정의하였을 때, 원래 인간은 행복감을 명확히 구체화하기 어렵도록 되어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은 스트레스 상황에 대해서는 상당히 명확하게 느끼고 예상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 어찌보면 생존에 유리한 메카니즘이다. 스트레스 상황은 생존을 위협하지만 행복한 상황은 생존과 대개 관계가 없으니까. 대부분은 자신이 정말 행복한 삶의 순간을 지나고 있을 때도 당시에는 모르다가,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그 때가 행복했음을 알게 된다.
원래 인간은 행복을 명확히 구체화하지 못한다. 대부분은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야 그 때가 행복했음을 알게 된다.
이 늦은 깨달음도 나쁘진 않지만, 우리가 현재에 행복감을 더욱 집중하여 느낀다면 삶을 더욱 풍성하고 영혼을 성장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행복감을 명확히 느끼기 어렵기 때문에, 경쟁과 성취가 삶에서 큰 부분을 차지 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사람들은 '성취감'을 행복감으로 착각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은 언제 가장 행복하였는가' 라는 질문에 자신이 얻은 가장 큰 성취 - 예를 들면 취업, 대학 합격, 큰 대회에서의 수상 등 -을 답하기도 한다. 이러한 성취감도 행복과 겹치는 부분이 있지만, 이러한 성취는 인생에 있어 매우 제한되어 있고 또한 그로인한 행복감 - 고양감 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지만 - 은 시기가 매우 짧다. 이러한고양감은 금새 식어버리고, 다시금 욕망에 의해 덮여져 더 높은 성취를 얻을 때까지 새로운 불안과 스트레스로 대체된다.
그렇다면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일까?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만드는 행복은, 추운 겨울 강렬하게 타오르는 모닥불 같은 것이라기 보다는, 따스한 햇볕이 정원을 잔잔하게 데우는 것 같은 것이다. 마라톤 시합을 하다가 시원한 물을 들이켰을 때 보다는, 아끼는 동료가 가져다 준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소탈히 웃을 때와 같은 것이다.보다 단순하게, 출퇴근길에 전철 밖으로 지나는 강이나 들의 풍경을 보면서도 잠깐씩의 행복을 느낄 수도 있다.
행복은 마라톤 시합을 하다가 시원한 물을 들이키는 순간보다는, 동료가 가져다 준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나누며 웃을 때와 같은 것.
이러한 행복감 - 작지만 길고, 자주 일어난 - 은 강렬한 성취감처럼 우리를 고양시킬 수는 없지만, 우리는 이를 늘 누릴 수 있으며 잔잔한 행복에 차츰 젖어드는 삶은 행복에 대한 물음에 공허감을 느끼지 않는다. 그저 그 질문의 답을 아직도 찾고 있는 사람에게 연민을 느낄 뿐.
잔잔한 행복을 이미 느끼고 있는 사람은 참으로 복받은 사람이다.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행복감을 느끼는 성향' 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큰 요소는 바로 유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처럼 쉽사리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는 부족한 유전자를 타고난 사람들은, 이러한 행복찾기에 약간의 훈련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