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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설자 Sep 29. 2019

<당신의 사전> 사인회 다녀왔어요.

김버금 작가 사인회

     

브런치에 김버금, <당신의 사전> 사인회가 있다는 글이 올라왔다. 김버금 작가의 글을 자주 읽었던 터라 가보고 싶었다. 신청을 하고 미리 책을 주문하여 읽었다.


브런치에서 읽었던 글이라 안 읽은 것 한 두 꼭지만 읽으려 했다. 하지만 나는 책을 붙들고 끝까지 다 읽고 말았다. 화면에서 보는 글과 활자화된 글은 달랐다. 읽은 글도 전혀 새로운 맛이었다. 이것이 활자의 힘이다.

     

  그녀의 글을 읽으면 나는 왠지 철렁하다. 갑작스러운 일도, 놀라운 일도, 가슴 아픈 일도 아니련만 철렁 내려앉는다. 마음 저 아래 두었다가 퍼올려  잘 다듬고, 만져준 생각들. 생각의 끄트머리를 잡고 끊임없이 내려가고 올라가고 거기서 건져올리는 마음들을 아주 세세하게 들여다본다. 그녀의 말을 빌리면 ‘까닭 없이 가라앉는 기분의 끝까지 내려 가보는 것’이 글의 힘이 되었을 거라고 한다.


그녀는 끊임없이 감정을 들여다보고 마주했다. 자신의 감정에 얼굴을 대고 감정이 무슨 말을 하는지 가만히 말을 걸었다. 그렇게 관찰하고 사유한 것들이 그녀의 글을 세심하게 만들었다. 촘촘하게 잘 엮어 있어서 틈이 없다. 그렇게 차분하고 정밀할 수가 없다.


그러면서도 건드리면 찢어질 듯 가냘픈 마음으로 읽힌다. 큰 소리라도 지르면 파르르 떨 것 같은 연약한 마음이 느껴지는 글이다. 글을 쓴 그녀의 마음은 투명한 잠자리 날개 같은 것은 아닐까. 촘촘한 사이마다 세밀한 언어들을 감추어 둔 듯한. 섬세하고도 여린 따듯한! 그녀의 글을 읽으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소중한 것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 세심한 마음이 읽어지기 때문이다.


그녀는 글을 참 곡진하게 쓴다. 이런 부분.


낡은 전기장판을 치우고 무릎을 굽혀 부스러기를 쓸었다. 힘을 주어 사탕을 떼어낸 자리에 사탕의 둥근 모양대로 누런 자국이 남아 있었다. 물티슈를 가져다 문지를수록 물기를 머금은 자국이 점점 더 선명해졌다. 이상하게도, 할머니 모습이 떠올랐다.           

<저미다> 중에서


갈라진 도자기를 빚으며 갈라진 마음을 빚는 어두운 밤을 떠올린다. 완벽에만 집착하느라 완벽하지 않은 것으로 폄하하였던, 나의 다친 마음들을 둥글게 헤아리는 시간을, 삶에서 생긴 실금은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에 대한 흔적이 아니라 완성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흔적이다. 완성은 완벽함이나 완전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든 무사히, 끝까지, 지켜내는 데 있으니까.      

<괜찮다> 중에서   



   

교보 사인회장에는 줄이 길게 서 있었다. 서명받으려 이렇게 줄 서서 오래 기다려 본 적이 없는 나는 참 낯설었다. 기다리는 것이 낯선 것이 아니라 나이 든 사람은 나뿐이어서 그랬다. 젊은 사람들 틈에 물 위 기름처럼 끼어 있는 내가 참 어색했다. 책을 보아도 휴대폰을 들여다보아도 머리에 들어오질 않았다.

 

사인회를 하는 작가님의 모습을 보기로 했다.

독자를 대하는 모습도 글을 쓰는 모습을 닮았다. 찬찬히 대화를 하고,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서명을 하고, 사진을 찍고...  독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하게 대하는 모습이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벌써 한 시간이 넘었는데, 화장실도 가고 싶을 텐데, 목도 아플 텐데, 참 작가 사인회도 쉬운 일이 아니구나, 얼굴을 맞대면 무슨 말을 해 줄까,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는데 내 차례가 왔다.

“오설자 선생님이시죠?”


그녀는 나를 첫눈에 알아보았다. 웃는 모습이 참 선하고 예뻤다. 우리는 한 번도 만난 적은 없었지만 브런치에서 만난 인연으로 마치 이웃처럼 익숙하고 친근하게 느껴졌다. 그녀는 긴 편지 같은 서명을 해 주었다. 축하한다는 말을 하고 정작 내가 해 주고 싶은 말은 반도 못 하고 말았다.

    

 


돌아오는 버스에서 사은품으로 준 포춘쿠키를 뜯었다. 그 속에 비밀처럼 하얀 아주 작은 쪽지가 들어 있었다.


“엄마보다도 어른이 되는 일. 나는 아직, 그 일이 무섭다.”

불안하다; 엄마보다도 어른이 되는 일.  

   

바사삭 과자를 먹으며 그 말을 새겨 보았다. 그녀가 두려워하는 ’엄마보다 더 어른’이 이미 된 나는 다른 것이 두렵다. 나는 매일 감성이 사라지는 것이 두렵다. 알지 못하는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 잊혀 가는, 사라져 가는, 예전과 같은 감성이 살아나지 않을 때...


이 문장이 좋았다.    

  

뒤돌아서는 모습이 처음의 모습과는 달리 쓸쓸해 보일지라도, 이대로 안녕을 말하는 것이 조금은 초라하게 느껴질지라도 “괜찮아, 그동안 수고했어.”, “축하해, 무사히 끝마쳤구나.” 하고 토닥여주는 포근한 수건이, 곁 가까이에 걸려 있으면 좋겠다.

<포근하다> 중에서      


그러다 차라리 단순한 게 나을 것 같아 감정의 수를 줄여보는 걸 실천하기도 했었다. 만사를 좋다, 싫다 정도로만 구분하여 산다면 내 마음이, 내 삶이 얼마나 명쾌하리만치 행복해질까 기대하며.
 그러나 그때마다 읽었던 건 순간의 감정만이 아니라 그 순간의 감정을 느껴야만 채울 수 있었던 내 삶의 수많은 조각들이었다. 백 가지의 조각으로 채워질 수 있는 삶을 다 두 가지의 감정으로만 비추어본다면 결국 잃는 것은 다른 수많은 조각으로 빛날 수 있었던 나 자신이었다.

<낯설다> 중에서   


   마음에 새길 문장들이 너무 많아 다 옮기지 못했을 뿐이다.


그러니 모든 마음에는 이름이 있는 것이다.

이 책, 참 좋다. 결국 작가는 책으로 말한다.

    

“김버금 작가님, 책 대박 나실 거예요. 앞으로도 좋은 책 쓰시고요. 이 말을 하고 싶었어요.

오늘 고생하셨어요. 일생에 각광받는 멋진 날, 다시 한번 축하드려요.”


이런 기회가 제게 온 것은 모두 브런치 덕분입니다. 브런치에게도 고마운 마음 가득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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