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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설자 Dec 22. 2019

나를 가련히 여긴 어떤 이가 기별도 없이 보내  준..

내 꿈 내 희망


 딸이 집에 오는 날이다. 직장 때문에 주말에만 온다. 딸이 좋아하는 토마토 스파게티를 준비했다. 큼직한 토마토 여러 개와 온갖 해물, 양송이, 브로콜리를 넣고 푹 끓여 뭉근하게 소스를 만들었다. 딸이 좋아하는 새우는 더 많이 넣었다. 치즈를 얹은 스파게티를 젓가락에 돌돌 말아먹는 딸 앞에 앉았다.


 딸은 아주 지쳐 있었다. 얼굴에 뾰루지는 더 많아지고 푸석해졌다. 그녀는 회사에 다니는 것이 힘들다고 한다. 그렇게 말하는 모습이, 늘어진 스프링이 너덜거리는 기계처럼 곧 해체되어버릴 것만 같았다. 그녀는 방학이 있고 제때 퇴근하는 예전의 ‘엄마 직장’을 부러워한다. 요즘같이 취직이 힘든 때, 덜컥 일을 그만둔다고 할까 봐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그래도 한 십 년은 다녀야….’하려다 삼킨다.


 우리는 소파에 앉아 밀린 이야기를 한다. 나는 딸과 이야기하는 것이 참 좋다. 그동안 생긴 일을 말하다 보면 졸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도 모른다. 딸은 내리누르는 눈꺼풀을 억지로 들어 올리며 대답을 한다.

 

 우리는 가끔 영화를 같이 본다. 그녀는 미래 영화를 좋아한다. 가까운 미래에 곧 일어날 것 같은 일들을 소재로 만든 영화들. 나는 주로 과거에 벌어진 실화 위주의 영화를 좋아한다.  변화를 두려워하는 과거에 붙들려 있는 나보다 미래로 나가는 성향이 딸에게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렸을 때부터 딸은 남보다 잘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유치원에서 졸업장을 받는 연습을 하던 날, 엄마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현관에 들어선 나를 보고 딸이 달려오며 소리쳤다.  


“엄마, 나 1등 했어.”


제일 먼저 이름이 불렸기 때문이었다. 김치를 담그고 있으면 ‘내가 할게, 내가 할게.’하고 그 조그만 손으로 김치를 들고 나를 돕는다고 엉덩이를 쳐들던 노랑 병아리 같은 딸.


 딸을 볼 때마다 참 많이 미안하다.  잘 키우려는 마음에 어설픈 훈육으로 아이 마음에 상처를 준 일. 매일 그 어린것에게 1번부터 8번까지 할 일을 잔뜩 적어 놓고 하게 한 일, 여덟 살인, 누나라고 동생을 병원에 데려갔다 오고 약 먹이고 돌보게 한 일,  다행히 동생은 누나의 말을 잘 따랐지만. 폐렴으로 입원하여 링거를 매달고 누운 열 살 짜리를  병원에 두고 출근하던 엄마를 애써 울지 않고 보내는 안쓰럽던 딸의 얼굴이 잊히지 않는다. (당시 나도 가습기 메이트를 썼는데 뿜어져 나오는 습기를 목에 대게도 했던 무지렁이 엄마였다. 그것으로 생긴 병이었을까. )큰아이라고 늘 지나친 부담만 준 것 같아 미안해진다.

  

 딸이 대학에 합격한 일은  인생의 특별한  분이었다. ‘합격이라는  떨리는  글자는 그동안의 어렵고 힘들고 지쳤던 모든 것들을 순간에 날아가게 했다. 어깨에 잔뜩 뭉쳐있던 근육이 말랑해지기까지 했다. 그리고 몇년 후, 길었던 해의 종지부를 찍어  것은 딸의 입사 소식이었다. 어쩌면 그녀는 내가 가장 힘들었을 때마다 나를 살아나게 하는 힘이 되었다.      


 드디어 사회인이 되던 날. 대견하고 자랑스러운 마음이 크나, 한편으로는 이제 자신의 삶을 개척하는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딸이 나를 떠나가는 것이 아쉬웠다. 집에서 사랑받듯이 직장에서도 인정받으면서 자신의 일을 충실히 잘해주기를 빌었다.   

    

 달마다 때가 되면 우리 부부 앞에 봉투를 내민다. 앞면에는 ‘평생 효도’ 뒷면에는 ‘약속 지키겠습니다’라는 문구가 써져 있는 빨간 봉투. 이만큼 키워 주었는데 당연한 것이라고 말하면서. 나도 어쩔 수 없는 자식 자랑하는 팔불출이 되고 만다. 나는 그것을 차마 쓰지 못하여 줄 때마다 봉투 겉면에 간단한 메모를 쓰고 작은 상자에 모아 두고 있다. 나중에 결혼을 하고 손주들을 데리고 올 때마다 하나씩 줄 생각이다.


 계획을 세워  단계  단계 이뤄 나가는 딸이 고맙기만 하다. 항상 때에 따라 해야  매뉴얼을 정해놓고 차근차근 이루며 인생을 설계하는 힘을 나는 오히려 딸에게서 배운다.  그리 가르치지 못한  같은데 어떻게 그리 계획적이고 자기 주도적일  있는지 기특하기만 하다. 나도 어쩔 수 없는 딸바보. 화장도 하고, 하이힐도 신고, 예쁜 옷도 입고 다녔으면 좋겠지만 딸은 편하면 됐지, 하며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는다.


 집에 왔다 갈 때마다 딸은 현관에서 외친다.

"나 갈게~"

그 말이 나에겐 '나 안아 줘.'로 들린다. 설거지를 하다가 고무장갑을 벗고 달려가 딸을 안아준다.

     

 얼마 전 딸과 짧은 여행을 했다. 바다도 실컷 보고, 맛집을 찾아 처음 보는 음식도 먹고, 골목을 걸으며 못다 한 이야기도 하고 낯선 곳으로 스며들기를 했다. 너무 많이 걸어서 힘든 날, 일찍 호텔로 돌아와 뒹굴거리기로 했다. 딸은 친구와 오면 서로 배려하느라 신경이 쓰이는데, 엄마와 오니까 편해서 좋다며 아이처럼 통통거리고 다녔다. 우리는 눈같이 흰 이불에 파묻혀 느긋한 시간을 만끽했다.  

    

“엄마, 오늘 투어 어땠어? 좋았어?”

“응, 아주 좋았어.”

“뭐가 좋았어?”

“음, 딸이랑 이야기하며 루스키 섬 흙길 걸은 게 좋았어.”

조용히 듣고 있는 딸의 생각도 궁금했다.

“너는?”


“난 엄마가 좋았어.”  

   

그 말에 난 가슴이 갑자기 뭉클해졌다. 뭔가 가슴에 가득 차올라 한동안 가슴속에 고여 사라지지 않았다.

부모는 자식을 키우면서 많이 준다고 하건만, 나는 딸에게 너무나 많은 행복을 받고 있다.


어느 시인이 ‘시는 나를 가련히 여긴 어떤 이가 기별도 없이 보내준 소포 같은 것’이라고 노래했다. 나는 그 시에다 내 딸을 넣어본다.


  딸은 나를 가련히 여긴 어떤 이가
 기별도 없이 보내준 소포 같은      


내 딸이 그렇다.

‘내 꿈 내 희망’은 내 휴대폰에 저장된 딸의 애칭이다. 딸이 잘 자라는 것이 내 꿈이고 희망이었기에 지은 이름이다.


그날 그 꿈이 이루어진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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