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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설자 Jan 03. 2020

나도 꽃처럼

꽃이 보이는 나이

                                 



 몇 년 전 일입니다. 교실에 들어섰더니 바람결이 실어온 듯 은근한 난향이 코밑으로 다가왔습니다. 교무실에서 가져다 키우는 난이었는데 잎을 닦아주고 곁에서 돌본 덕인지 피우기 쉽지 않은 동양란이 연 노란 꽃을 세 송이나 피웠습니다.

 

 “오십이 넘어야 꽃이 보인다네요.”


마침 교감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오면서 난꽃 앞에 서 있던 나에게 한마디 했습니다. 오십이 넘어야 주변의 작은 것들이 들어온다는 의미일까요. 젊었을 때야 아이들 키우고 사는 것에 바쁘고 관계에 집중하느라 주변을 살필 여유가 많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꽃이 잘 보일 때’가 아니어도 나는 좋아하는 꽃이 많았습니다.


 대학 다닐 때, 친구 따라 이웃대학교로 청강을 간 적이 있습니다. 정문에서 본관으로 이어지는 기다란 길 양쪽으로 치자꽃이 만발하였습니다. 길에는 온통 치자 꽃향기가 진동했습니다. 스펀지 같은 하얀 꽃잎이 폭신하게 여러 겹으로 고고하게 피어있는 꽃. 달콤한 꽃향기가 ‘스위트’라는 단어에 딱 어울렸습니다. 꽃잎을 따서 향기를 훔치고는 주머니에 넣곤 하였지요. 글을 쓰고 있으니 어디선가 치자꽃 냄새가 나는 듯하네요. 세월이 흘러도 기억 속의 감각은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인가 봅니다.

     

 치자꽃을 보면 고갱이 그린 타이티 섬의 처녀들이 떠오릅니다. 붉은 갈색으로 그을린 건강한 얼굴, 풍성한 긴 머리에 꽂은 하얀 꽃이 치자꽃일 거라고 상상했습니다.(타이티 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으로 치자꽃을 닮은 꽃이 있네요. 티아레타이티라는 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모노이’라고 부르기도 한답니다.) 우아한 꽃이 꽃말처럼 순수한 처녀와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태리의 어느 오래된 도시 교외에 살고 있을 적에 나는 집으로 돌아올 때마다 포석이 고르지 못하며 매우 높은 두 개의 담장 사이에 끼여 있는 좁은 골목을 지나곤 했다. 때는 사월이나 오월쯤이었다. 내가 그 골목의 직각으로 꺾이는 지점에 이를 때면 강렬한 재스민과 리라꽃 냄새가 내 머리 위로 밀어닥치곤 했다. 꽃들은 담장 너머에 가려져 있어서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꽃 내음을 맡기 위하여 오랫동안 발걸음을 멈춘 채 서 있었고 나의 밤은 향기로 물들었다.  


 장 그르니에의 <섬>에 나온 글입니다. 그 글을 읽을 때 리라꽃 향기가 날개를 달아 머리 위로 날아다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리라꽃, 라일락, 수수꽃다리는 모두 같은 꽃입니다. 수수꽃다리를 미국에 가져가 개량한 꽃이 라일락이고요.) 꽃향기를 맡으려 발돋움을 하고 서 있는 모습도 보이고요.  세로로 길게 끼워 박은 돌로 만든 이태리 어느 골목길을 걷는 모습도 떠오르고요.  재스민과 라일락꽃 향기. 꽃 이름만 들어도 향기가 코앞을 스치는 듯합니다.   

   

 향기로 치자면 라일락이나 프리지어도 치자꽃 못지않습니다. 하지만 더 은근하면서도 깊은 향이 나는 것이 수수꽃다리입니다. '봄에 피는 꽃'을 가르칠 때 아이들과 화단에 가서 수수꽃다리를 보여 주면서 연한 하트 모양의 잎을 만지곤 하였습니다. 착한 아이들 머리를 쓰다듬듯이 말이죠. 어느 날 연보랏빛으로 무리 지어 핀 수수꽃다리. 그 향에 취하고 말았습니다.


 나는 프리지어도 무척 좋아합니다. 은은한 향기와 함께 이른 봄을 데리고 오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퇴근하고 왔더니 화장대 위에 프리지어 한 다발이 꽃병에 꽂혀 있었습니다. 옆에는 아들이 쓴 카드가 얌전히 놓여 있었고요. 그 전날, 내가 가장 아끼는 커다란 디너 접시를 깨트린 아들에게 무척 화를 냈거든요. 아들이 꽃으로 엄마 마음을 풀어주고 싶었나 봅니다. 뜻밖에 좋아하는 꽃을 만나고 나는 봄을 미리 선물 받은 기분이었습니다. 기대하지 않은 기쁨은 더 큰 법입니다. 꽃은 그렇게 사람을 낭만적으로 만들어 놓습니다.

    

  언젠가 박완서 님이 쓰신 산문에서 부겐빌레아에 대한 글을 읽었습니다. ‘부겐빌레아’. 가만히 중얼거렸습니다.  이름이   속에 고이는  같았습니다.  꽃을 모를 때였어요. 타국을 여행하며  꽃을 다시 만날 때마다 친구를 만난  반가웠습니다. 터키 케코바에 갔을 , 무너진 성벽에 분홍의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습니다. 사실 진짜 꽃은 분홍  속에 하얗게 올라온 작은 꽃입니다. 햇빛에 부서지는 쪽빛 지중해를 배경으로 허물어진 붉은 벽돌을 타고 피어난 진분홍의 꽃이 어찌나 처연하던지요. 영화로운 도시는 가고  흔적만 화려했습니다. 더운 지방 어디를 가든 쉽게   있는 꽃이지만 폐허에서 피어난 부겐빌레아가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그러나 이른  피는 수선화나 길가의 제비꽃, 가을이면 지천으로 피어나는 쑥부쟁이, 벌개미취.. 수수하고 아기자기한 우리 들꽃과는 견줄  없습니다. 그중에도 수선화는 내게 특별한 꽃입니다.


리시안셔스와 개망초

수선화는 눈 속에서도 피는 꽃입니다. 한겨울 추위를 견뎌내며 피워내서 그럴까요. 그 향기가 진하면서도 은은히 퍼집니다. 수선화는 어릴 때부터 내 마음에 담은 꽃입니다. 할머니네 집 긴 올레에서 피고 지던 꽃이기 때문입니다. 내게 수선화는 할머니의 다른 이름입니다. 수선화를 떠올리면 할머니가 보이고, 할머니를 생각하면 수선화가 피어납니다.     

 

 내게도 그런 꽃이 있긴 있었습니다. 책방에  같이 다니던 친한 선배가 서울로  내게 보내  편지마다 나를 코스모스라고 부르곤 했습니다.  말을 하면 다들 코웃음을 칠지 모릅니다. 아무래도 지금은 코스모스가 주는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나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하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냥 들판 돌담 가장자리에 아무렇게나 피어나는 풀꽃이어도. 그런  하나쯤 나를 대신할  있으면 황홀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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