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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설자 Jun 27. 2020

신문에 실렸어요

존셈; 자잘한 정, 세심하고 다정한 마음 씀씀이  

 

 올해 보던 신문을 바꿨어요. 인터넷 뉴스보다 아직도 종이로 읽는 게 편한 1인입니다.

매주 수요일에 실리는 <말모이 코너>가 참 좋았습니다. 독자들이 사랑한 말도 향수를 불러일으켰지만, 명사들이 쓴, 사랑한 낱말에 대한 짧은 에세이가 곡진하고 참 좋았습니다. 마침 제주어 수필을 기획하느라 써 놓은 것이 여러 편 있어서 하나 골라,  줄이고 줄여 천 자 글로 완성하여 보냈습니다.  


좋은 글은 더하기보다 빼기라는데, 빼기가 참 힘들었습니다. 한 달이 넘어도 실리지 않길래 포기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문화부 기자님이 전화가 왔어요. 다음날 글이 실린다고요. 좀 얼떨떨했습니다. 좋기도 했고요.


다음날 새벽부터 제주도에서 전화가 왔어요. 오랜만에 들어보는 사랑하는 말이라면서  다정하고 정겨운 한순간이 되어 흐뭇했다는 지인들의 문자가 쇄도했습니다.


축강(부두)에서 놀던 어린 시절이 그립다, 따뜻하게 해 줘서 고맙다, 옛 생각나서 눈물이 핑 돌았다, 셋거는 패라와도 존셈이신 아이였주 (둘째는 까탈스러워도 잔정이 많은 아이였지.)를 늘 할머니에게 들었던 생각이 난다, 돌아가신 선친 생각에 사무친다....


 누군가에게 따듯한 마음을 주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이 글로 조금 따듯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서로에게 존셈을 베푸는 하루이길 바라겠습니다.


 존셈

시댁에서 내가 할 일은 시어머니 말씀을 들어드리는 일이다. '6·25로 시작하여 감나무로 끝나는' 말씀을 풀어놓을 때는, 어머니 주름진 얼굴에 생기가 피어나고 목소리마저 커진다.

어느 날 고양이들이 마당 끝에 모여 울고 있어 가보니 새끼 고양이가 변소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더란다. 어머니는 막대기에 줄을 묶어 간신히 건져내고 오물 범벅인 고양이를 씻겨주었다. 그러자 한참을 고맙다고 야옹거리더란다.

이야기는 성격이 급했던 아버님으로 이어졌다. 적당히 맞춰 주면 되지만 그 시절 어머니는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밭에서부터 산기가 있었지만 해가 져서야 집에 돌아와 지푸라기 깔아 놓은 방에서 핏덩이를 낳고, 탯줄을 끊고, 몸조리도 못하고 또 밭으로 나가야 했던 어머니. 그렇게 사 남매를 낳아 키우셨다. 고단한 생활은 암으로 왔고, 어머니는 절망에 빠졌다.

밭에서 일하다 풀 냄새 묻은 몸으로 병문안을 온 아버님은 파리하게 누워 있는 어머니를 내려다보다 두 손을 잡으셨다. 두 눈 맞추며 서로를 바라볼 새도 없이 살아온 세월이었다.

 "내가 너무 힘들게 해서 당신을 아프게 했어. 미안허여."

그 한마디에 그만 가슴에 맺힌 돌덩어리가 쑥 내려가더란다. 정작 당신은 혼자서 병을 키우다가 먼저 가셨다고 어머니는 울먹이셨다.

"촘 부지런허곡 존셈이신 어른이었져. 먹엄직헌거 이시민 꼭 나 주쟁 했져. 축강에 강 밤 근무허당 왕, 요 동고리라도 솔째기 왕 머리맡디 놔 가곡 해서."

조용히 문 열고 사탕을 놓고 가는 아버님 마음이 다가온다. 어쩌면 어머니는 고양이보다 아버님 이야기를 더 하고 싶으셨나 보다. 어머니가 8년 동안 우리 아이들을 정성으로 키워 주신 일이 떠오른다. 서로에게 베푼 존샘은 좋은 추억이고 그리움으로 남는다. 존셈은 잔정이란 뜻의 제주 방언으로, 작지만 다정한 마음 씀씀이를 뜻한다. '존셈'으로 발음한다.

꿈에 아버님이 와서 이불을 덮어주고 갔다며 어머니는 밖을 내다보셨다. 이불을 여며 주며 가만히 어머니 얼굴을 내려 보시는 존셈 많은 아버님. 하늘에서도 살아서 못다 한 애정을 어머니께 쏟으시는 것이 틀림이 없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6/24/202006240027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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