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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설자 Aug 28. 2020

사과를 먹으며

역사적인 사과

   

 아침마다 아들을 깨우는 일이 전쟁이었다. 아이는 일어나기 힘들어했다. 청소년기 잠은 마약과 같았으니 잠에 취한 애를 깨우랴, 식구들 식사 준비 하랴, 출근 준비까지 매일 진이 빠졌다. 억지로 깨우면 기분이 나빠지고, 나빠진 기분으로는 그날 공부에 정신을 쏟지 못할까 봐 날마다 전전긍긍했다.

 

 생각다 못해 아침마다 사과 한 조각을 아들의 입에 물렸다. 사과를 좋아하는 아이는 입술을  움찔거리며 사과를 물고 눈감은 채 사과를 우적우적 씹으며 잠에서 깨곤 했다. 얼마 후 성질내지 않고 방에서 나왔다. 매일 아침 사과 한쪽을 먹이며 깨운 일은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이어졌다. 짜증 내지 않고 일어나는데 사과는 지대한 공헌을 한 셈이다.

 

 아들이 대학생이 되자 더 이상 깨우지 않아도 되었다! 드디어 나에게 해방이 왔다. 무거운 무엇을 내려놓은 듯 마음이 가벼웠다. 처음에는 더러 수업에 늦어도 일절 간섭하지 않았다. 속은 좀 문드러졌지만. 어느 순간 아이는 스스로 잘 일어났다. 예전에도 그랬으면 되었을까. 하지만 그때는 기다릴 마음의 여유가 내겐 없었다. 직장에 다니는 지금은 알람 소리에 스스로 깨어나지만, 아직도 제일 먼저 접시에 썰어 놓은 사과부터 먹고, 그다음 식사를 한다.


 아이들을 가르칠 때도 사과를 이용했다. 아침에 오는 아이들에게 얇은 사과 조각 하나씩 주면서 ‘마술 사과’라는 이름으로 최면을 걸었다. 학교생활을 조금 더 잘해주기를 바랐다. 동무들과 친하게 지내고 고운 마음으로 생활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마술을 걸었다. 큰 사과 하나면 얇게 열여덟 조각으로 썰 수 있었다. (우리 반이 18명이었다.) 아이들은 그 작은 한 조각을 먹으며 행복해했다. 집에서 먹는 사과와 학교에서 먹는 사과는 달랐다. 사과를 먹으며 아침에 엄마에게 야단맞아 언짢았던 기분도 달콤하게 변하고 빈 속으로 온 아이는 배고픈 생각도 잊었으리라. 작은 입을 오므리며 그 얇은 사과를 아주 조금씩 토끼처럼  뜯어먹으며 책장을 넘기는 모습을 보면 나도 흐뭇했다.




 인간의 역사에 사과처럼 많이 등장하는 과일도 많지 않다. 사과를 베어 문 최초의 입은 이브였다. 그녀는 금단의 사과를 베어 문 죄로 낙원에서 추방되고 편안하고 안락한 생활을 잃고 노동을 하고 아이를 낳아야 하는 여인만의 고통인 산통을 짊어져야 했다. 그때의 사과는 유혹의 상징이었고 인간의 인내를 시험하는 도구였다. 신으로부터 추방이기도 하지만  인간이 신으로부터 독립이기도 했다.


 트로이 전쟁은 사과로 시작되었다고도 말할 수 있다. 황금사과를 가진 사람이 최고의 미인을 얻을 것이라는 예언은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였다. 그는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를 데려갔고 그로 인해 10년 전쟁이 지루하게 이어진다. 결국 트로이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비운을 맞게 된다.



중학교 때 음악시간에 ‘윌리암 텔 서곡’을 배울 때였다. 음악 선생님이 들려준 ‘빌헬름 텔의 사과’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듣고 소름이 돋았다. 아이의 머리 위에 얹어져 있는 사과를 향해 날아가는 화살이 보이는 듯했다. 잘못 맞기라도 하여 그 어린 아들이 눈이 다치면 어떡하나, 죽기라도 하면 어떡하나, 하는 긴박한 마음으로 음악보다 이야기에 빼앗겼다. 머리 위에 사과를 얹어 쏘라고 지시하는 비열한 지도자의 탐욕으로 가득한 얼굴도 그려졌다. 결국 화살 맞은 사과는 정의를 되찾게 하는 도구가 되었다.


--이 이야기는‘1307년 11월 18일 스위스 알트도르프 마을 광장'이라고 역사적 장소를 명시하고 있지만 역사적 사실은 아니라고 한다. 북유럽을 중심으로 사냥꾼 사회의 전설처럼 내려오던 이야기를  프리드리히 실러가 희곡으로 만들고, 로시니가 오페라로 공연하면서 사실처럼 알려졌다. 하지만 스위스 국민의 대부분은 지금까지 실제 역사로 믿는다고 한다.--


 역사이든 허구이든 그렇게 이야기가 맺어져야 폭압자에 대한 멋진 항거가 된다. 그 음악을 떠올리면 아직도 뱅글뱅글 돌며 사과를 향해 날아가는 화살이 동영상으로 남아 있다.


 세월이 흐르고 오늘날 ‘한쪽을 먹어버린 사과’ 로고는 전 세계의 아이콘이 되었다. 그가 왜 사과를 선택했는지 분명하지 않지만, 분명한 것은 역사적 변혁의 장소에 사과는 등장하였고 그도 경이적인 문명의 변화 선상에 사과를 이용했던 것만은 같은 맥락일 것이라는 분석도 있었다. 그 ‘한 입 베어 먹은 사과’ 회사. 이제 주식 시가총액이 2조 달러를 넘었다고 한다.


역사적인 현장에 사과가 등장한 것은 사과가 흔하고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과일이다 보니 생긴 일이 아닐까. 사과의 붉은색과 유려한 곡선이 보여주는 감각적 인상이 빚어낸 결과이기도 할 것이다.  

 아들이 먹다 남은 사과를  한 조각 베어 물면서 드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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