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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설자 Oct 08. 2020

한 사람이 간다는 것은

잘 가시게, 친구

    

  자녀들의 결혼 소식으로 가득하던 문자함에 다른 글이 떴다.

‘교대 동창 000 님이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작년 봄인가. 고향에 갔다가 서울로 오는 길이었다. 엄마를 보고 올 때마다 공항 구석 의자에 앉아 착잡한 마음을 노트북에 쓰면서 탑승 시간을 기다리곤 했다. 커피나 한 잔 하려고 사러 가는데 게이트로 밀려가는 행렬에서 누군가 멈춰 돌아봤다.

“오! 설자, 설자구나.”

“아, 오랜만이네...”

활짝 웃으며 내게 말을 거는 여인.  얼굴은 익숙했으나 얼른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다. 수십 년 만이었다. 워낙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데다 더구나 오랜만에 본 사람의 이름도 얼른 기억나지 않는 나이가 되어버린 나. 서글서글하게 큰 눈에 이국적인 얼굴로 푸짐하게 잘 웃던 그녀.


이름을 계속 떠올리려 했지만 머릿속에서 뱅글뱅글 돌기만 했다.

캐나다에 살지 않았니?

응, 왔다 갔다 하며 살아. 너는?

나 명퇴하고 여기저기 여행도 다니고 놀고 있지. 글도 쓰고.

아, 글 쓴다고 했지? 들었어.


그렇게 잘 지내라, 잘 가라 짧은 해후를 하고  우리는 헤어졌다.  바삐 게이트로 들어가는 그녀 뒷모습을 볼 때서야 이름이 떠올랐다. 아, 000.


 우리는 고등학교도 같이 다녔지만 다른 반이라 친하게 지낸 것도 아니었고 교대를 같이 다녔는데도 얼굴만 아는 정도였다. 교사를 하다가 캐나다로 중국으로 돌아다니면서 살았다고 한다.  그날 공항에서 만난 얼굴을 생각해보니 명랑하게 웃기는 했지만 안색이 그리 좋아 보이진 않았던 것 같다. 핏기도 없고...

아팠었구나.


 위암으로 계속 치료를 받다가 치료를 그만두고 올해는 진통제로 버텼다고 한다. 위암은 치료율이 높다고 하던데... 어쩌다 치료시기를 놓친 것일까. 통증이 계속되고 음식도 먹지 못하고 얼마나 괴로웠을까. 아이들은 분가도 시키고 잘 키웠으니... 그래도 떠나는 게 힘들었을 것이다.


  고등학교 동창 단톡 방에도 소식이 떴다. 느닷없는 부고에 덜컥했다며 기막혀했다. 우리가 부고를 받을 나이라는 것을 실감할 수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모두가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삶과 죽음이 ‘과’ 하나에 있는  얇은 차이. 생과 사의 경계가 창호지 문을 넘는 것과 같은 짧은 순간.


 언제 죽음이 올지 아무도 모른다. 소리 없이 조용히 와서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을 아무나 데려가는 너무도 폭력적인. 누구도 가리지 않고 데려가는. 아무도 막을 수 없는 두려운. 죽음.


 산책하면서도 동창의 죽음이 계속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우리사이에 오래도록 깊이 쌓은 우정은 없으나 영원히 떠나버린다는 것은 가슴이 저리는 일이다. ‘이제는 영원히 보지 못하는’ 것은... 노을에 수런대는 수크령도, 하얗게 피어나는 억새도 어제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들도 숙연해 보였다. 가을이 떠나는 계절이라더니... 이 계절과 함께 가려는 것이었을까.


 아직은 친구들의 부고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나이는 되지 않은 것 같은데. 글쎄, 자연스럽게 죽음을 받아들일 나이는 있는 것일까. 아마 의연하게 죽음을 받아들일 나이는 없을 것이다. 다만 더 이상 죽음을 미룰 수 없어 생을 포기하는 것일 뿐이다.




 한 사람이 간다는 것은 그가 살았던 모든 세계가 함께 가는 것이다. 자신이 살았던 모든 세계를 데리고 가버리는 것이다. 죽음보다 더 두려운 것은 잊히는 것이다. 그가 혹은 그녀가 존재했던 모든 세계가 잊히는 것이다.


 나도 가면 나를 모두 잊을 것이다. 어쩌면 글을 쓰는 것도 잊히지 않으려는 마음일 것이다. 좋아해서 쓰지만 그 근원을 따라가 보면  잊히기 싫은 것이다. 기억되고 싶은 것이다. 그러니 죽음이 가까이 오더라도, 다만 내가 글을 쓸 수 있게 고통스럽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누군가의 마음에 기억되는 한 나는 아직 사라진 것이 아니므로.


 그때, 공항에서 ㅇㅇ아,라고 불러주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막 헤어지고야  떠오른 이름. 마지막이 되었을 이름이란 걸 그때는 몰랐다. 모든 일이 그렇다. 지나고 나야 그때가 소중한 때임을 깨닫는다. 지나고 나서야 깨닫는 것들이 어디 한둘일까.




 “ㅇㅇ아”

이름 불러주지 못해 미안하네.

 친구야, 잘 가시게.

 그곳에서는 고통 없이 환하게 지내시길...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020. 10.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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