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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설자 Oct 22. 2020

어떤 재회

결정적 순간

        

 1961년 6월 10일 서울-경기 고등 군법회의 언도 공판이 열린 경기도청 회의실. 쿠데타 군부의 ‘혁명 재판소’에 시민 39명이 언도를 받기 위해 서 있었다.


 이 재판에 피의자로 선 한 여인을 찍은 사진. 여인은 약사법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되었다. 군사정부는 부정부패를 일소하겠다며 시민들을 혁명재판소의 법정에 세우던 시절이었다. (조선일보 2020. 9. <시대를 기록한 특종 사진들> 이태훈 기자 기사 참고)


죄수복을 입은 여인 뒤로 재판을 속기하는 직원 둘이 앉아 있고 그 뒤로 죄수들이, 아니 시민들이 두 손을 앞에 모으고 고개를 숙이고 있다. 막 판결을 내리는 순간인지 모르지만 고개를 푹 숙인 얼굴에는 눈물처럼 머리가 흘러내렸다.  막 언도를 받을 순간이었다.


 방청석에서 아장아장 걸어 나온 한 아기


 판사가 판결문을 낭독하려는 순간이었다. 힘없이 손을 늘어뜨린 절망적인 여인은 다가온 아기 손을 잡았다. 아기의 작은 손을 잡을 힘조차 없어 보인다. 기저귀를 찬 듯 엉덩이가 불룩한 흰 옷을 입은 아기. 서너 살쯤 되어 보이는 아기는 곧 울음을 터뜨릴 듯 영문을 모른 채, 모르는 사람들로 가득한 법정에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판사석을 보고 있다.


 아기의 눈을 따라가니 가슴이 쿵 내려앉는다. 아기는 왜 엄마가 거기 서 있는지 모른다. 이 모든 상황을 아기는 알지 못한다. 다만 엄마가 있어서, 거기 엄마가 있어서 걸어 나온 것이다.  엄마가 무엇을 기다리는지, 엄마는 왜 울고 있는지, 엄마는 왜 같이 집에 갈 수 없는 것인지... 왜 사람들이 고개를 숙이고 서 있는지 무엇을 기다리는지 아기는 모른다. 그래서 이 사진은 비극적이다. 엄마가 왜 법정에 서 있는지를 알고 울면서 재회를 했다면 이 사진은 다만 슬프고 애절한 사진이 되었을 것이다.

     

 벌써 며칠째 엄마를 찾는 아기에게 멀리서라도 엄마를 보여 주려고 누군가 아기를 데려왔을 것이다. 역사의 뒤안길에서 엄마가 어떤 일로 수모를 당했는지 기억하게 하고 싶었을 것이다. 어쩌면 더 오랫동안 엄마를 보지 못하게 될지도 몰라 아이가 걸어 나가는 것을 막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수감생활로 피폐해진 마음에 아기 얼굴을 보고 마음을 단단히 먹으라는 마음을 전해주고 싶었을 것이다.    

  

 엄마는 아기를 잡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내 아기. 아직 기저귀도 놓지 못한 내 아기를 떼어 놓고 다시 수감 생활을 해야 할지도 모른 절망의 순간에 그녀는 아기를 안을 힘조차 없어 보인다. 그저 무력하게 고개를 떨구고 있을 뿐이다. 사진에 찍히지 않았지만 그녀 가슴으로 흐르는 피눈물을 본다. 60대 중반이 되었을 '사진 속의 아이'는 이 사진을 보면 어떤 생각을 할까. 가슴에 단 죄수 번호가 흔들리며 눈물을 참는 터질 듯한 가슴을 부여잡고 있는 여인. 그날 39명의 시민 중 이 아기 엄마 혼자 무죄를 선고받았다고 한다.



정범태, <결정적 순간> (조선일보 )

    

 아기의 등장이 판결에 영향을 미쳤을까


 혹독한 ‘혁명정부’의 군사재판이었지만 그랬을 거라고 믿고 싶다. 그들도 인간으로서 저런 장면을 넘길 수 없었을 것이다. 부정부패라는 죄목으로 잡아들였지만 명분이 부족했을 것이다. 아기가 걸어 나와 엄마 손을 잡는 순간 판사는 판결을 내리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사진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가슴이 아프고 눈물이 났다. 아기를 키운 사람이라면 엄마 손을 잡은 아기의 체온이 전해지는 그 순간을 공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정범태는 시위 도중에 쓰러진 고려대 학생들을 찍은 사진을 실어 4,19의 불길을 일으키는 도화선이 되기도 했다고 한다. 그는 이 사진에 “결정적 순간”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결정적 순간”은 전설적인 사진작가 앙리 까르티에 브레송이 찍은 사진첩의 이름이다. 앙리 브레송은 순간적인 사진을 찍음으로써 결정적인 순간을 남겼다. 너무도 유명한 작품 <생 라자르 역 뒤에서>는 물 고인 길을 건너는 한 남자를 찍은 사진이다. 막 물을 건너려고 다리를 벌려 도약하는 장면은 배경에 함께 찍힌 포스터 속의 무희가 반대로 건너는 모습과 대조되게 찍었다.


앙리 브레송,  <생 라자르 역 뒤에서>



그의 사진은 모든 사진작가들의 모델이 되었다. 앙리 브레송의 묘비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사진은 영원을 밝혀준 그 순간을 영원히 포획하는 단두대.”     


지금도 어떤 순간은 흘러가고, 그 어느 순간이 우리 삶에  '결정적 순간'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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