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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설자 Nov 01. 2020

초등학교 1학년 담임의 어느 하루

1학년 교실은 예측불허의 드라마가 펼쳐지는 곳


어린이들과 함께 했던 한 때를 쓴 글입니다.



        

 어린이들이 오기 전, 창문을 활짝 열고 대걸레로 교실을 닦는다. 아이들과 함께 방방 뛰던  먼지가 밤새 내려앉았다가 걸레에 묻어난다. 물기를 꼭 짠 수건을 개켜서 책상도 닦는다. 윤이 난 책상 위에 남은 비누향기. 아이들의 젖 냄새 같다. 청소를 마칠 때쯤 아이들이 한두 명씩 교실로 들어온다. 태경이가 다가와 배꼽인사를 하며 자랑한다.

 “어제 받아쓰기 공책 샀다요.”

 오는 순서대로 얇게 썬 사과 한쪽씩 나눠 준다.

 “선생님이 마술을 건 사과야. 이걸 먹으면 똑똑해지고 멋지게 공부할 수 있어. 오늘 사과는 어떤 요술을 부릴까?”

 언제나 요술 사과만 주는 것은 아니다. 어떤 때는 ‘요술 배’, ‘똑똑 콩’, ‘천재 멸치’를 주기도 한다. 제비 새끼처럼 사과 한 조각을 입에 물고 오물거리며 책장을 넘기는 모습이 진짜 마법에 걸린 듯하다.     

 

 시작종이 울린다. 학급회장이 없는 1학년이라 돌아가면서 인사를 한다. 오늘은 종화 차례다.

 “차렷!”

 종화가 크게 외치면 모두 ‘차렷’을 따라 한다. 그때서야 자동차 책에 빠져 있던 대희도 손가락에 자를 끼워 돌리던 찬우도 지우개에 연필 두 개를 끼워 총을 만들던 승구도 차렷을 외치며 나를 쳐다본다.

 “선생님께 인사!”  

 “선생님,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다른 사람 방해하지 않고 딴짓 안 하고 집중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가르친 인사다.

 나도 인사하며 화답한다.

 “네, 열심히 가르칠게요.”  

 그 말을 할 때마다 나는 좀 찔린다. 열심히 못 가르친 날이 많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그 순간 마음을 다잡고 열심히 가르치겠다고 어린이들과 약속을 한다. 우리 반은 매일 아침 네 가지 약속을 다짐한다.

‘사이좋게 지내요.’ ‘발표를 잘해요.’ ‘열심히 공부해요.’ ‘줄을 잘 서요.’

“잘 지킬 수 있는 사람?”

 모두 손을 번쩍 든다. 태경이는 두 팔을 다 올린다. 이 약속 덕분인지 싸우지 않고 잘 지낸다. 다행히 올해는 하루 종일 큰 소리로 울어대거나 교실 바닥을 기어 다니는 아이가 없다. 그런 아이가 있으면 에너지를 골고루 나누어 주기도 전에 지쳐 버린다. 공부를 시작하자마자 주민이가 나온다. 잘 씻은 얼굴. 코가 반짝거린다. 아랫도리를 잡고 다리를 배배 꼰다. 얼른 화장실에 다녀오게 한다.     

 

  일기를 읽어줄 시간이다. 나는 어린이들의 순수한 세계가 열리는 이 시간을 좋아한다.

  “오늘은 얼마나 재미난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을까요?”

  어린이들의 일기를 실물화상기에 놓고 읽어주면서 별표를 쳐 준다. 멋진 문장에는 물결선도 그려 준다. 어린이들은 동무들이 무슨 내용을 어떻게 썼는지 보다 제 일기에 별을 몇 개 받을지가 더 궁금하다.

 집에 가는 길에 본 죽은 새끼 고양이가 불쌍했다는 이야기, 아빠가 치킨을 사 온 이야기, 운동장에서 공을 주운 이야기도 있다. 누나가 키우는 새 파롱이와 포롱이가 싸워서 파롱이가 피가 났고 파롱이 다리에 깁스를 했다는 대희의 그림일기는 제법 세밀하다. 동생이 머리를 잘라서 도토리 같았는데, 거울을 보니 더 큰 도토리가 있더라는 유수의 일기가 오늘 가장 많은 별을 받았다.    

 다음은 오늘의 이야기를 들려줄 차례다. 매일 아침 해 주는 일종의 인성교육 훈화다. 제목이 뭐냐고 성화다. 타인을 배려한다는 맹인의 등불 이야기를 해 준다. 이야기를 듣자마자 승구가 손을 번쩍 든다.

“승구가 먼저 해볼래?”

“네, 선생님”

 이름을 부르면 꼭 그렇게 대답하도록 한다. 제대로 대답하는 데서 교육은 시작된다. 승구는 의자를 소리 없이 밀어놓고 반짝거리는 눈동자를 굴리며 또박또박 말한다.

 “다른 사람을 배려해 주며언~ 그 사람도 기쁘지만 자기는 더어~ 행복해져요.”

 승구의 멋진 발표에 푸짐한 칭찬을 해주고 다 같이 칭찬 박수를 쳐준다. 열네 명 정도 발표를 하고 나면 국어 교과서를 공부할 시간이 부족하다. 그러나 개의치 않는다. 이게 진짜 공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1교시가 끝나면 우유를 마신다. 무용 수업을 받으러 5층 꼭대기에 있는 특별실까지 가야 하기에 오늘은 우유를 급하게 먹인다. 무용시간에 어린이들은 남생이 놀이를 지치도록 했다. 교실에 오자마자 난리가 난다.

 “선생님, 지훈이가 토했어요.”

 지훈이 자리로 가 보니 책상 위, 교과서, 티셔츠와 바지 할 것 없이 토사물 범벅이다. 눈치 빠른 현이가 휴지를 갖다 대고 걸레를 가져온다. 함께  몰려온 아이들이 코를 막는다. 이 아비규환을 빨리 수습해야 한다. 토사물을 닦아내고 창문을 열어 놓은 후 화장실로 아이를 데리고 간다. 바지를 벗기고 씻긴다. 아직 온수가 나오지 않아 아이 입술이 파래진다. 여섯 번이나 전화를 하고 있지만 아이 엄마도 아빠도 받지 않는다. 아이들은 복도로 뛰어나오고, 화장실까지 쫓아오고, 교실에선 한여름 매미처럼 왱왱거린다. 자리에 앉혀 ‘얼음’으로 만들어놓고 급한 대로 자료실에 있는 무용복 바지를 가져다 입힌다.     

 

 간신히 아이 엄마와 통화하고 한숨을 돌리고 나니 쉬는 시간이다. 날아가 버린 한 시간. 꼭두각시 바지를 입은 아이는 해맑은 얼굴로 놀고 있다. 역시 1학년이다. 태경이가 갑자기 내게 달려온다.

 “선생님, 화분이 배탈 났어요.”

 “응?”

 지완이가 물을 준 화분에 정안이가 또 주고, 태경이가 또 주었으니 배탈이 날 만하다. 책가방이 배고프다고 책을 잔뜩 담고 다니는 아이. 태경이는 시인이다.

 어린이들은 물을 줄 때마다 화초가 자란다고 생각한다. 물을 많이 먹으면 뿌리가 썩어 죽는다고 백번도 넘게 일렀건만. 화분은 매일 어항이 되고 화초는 흥건한 물속에서 헤엄친다. 그러나 화초는 죽지 않고 잘도 자란다. 화초도 어린이들의 넘치는 사랑을 안다. 어린이들도 화초처럼 모르는 사이에 자란다. 화분을 기울여 물을 버리고 물뿌리개를 감춰놓는다. 내일 또 누군가 찾아 놓을 테지만.

 물을 한 잔 마시고 잠시 의자에 앉는다. 그 새 어린이들이 몰려와 누가 복도에서 뛰었어요, 물어보지 않고 내 물건 썼어요, 이르는 얼굴이 바로 내 눈앞이다. 껍질을 벗긴 삶은 계란 얼굴에 돋아난 보송한 털, 반짝이는 눈동자, 가늘게 말려 올라간 속눈썹, 빠진 이에 말하는 입술은 삐삐 인형 같다. 그 모습을 보느라 어린이들이 한 말을 하나도 못 듣는다. 이런 때 나는 딴 나라에 가 있곤 한다.          

 수학 시간. 수학책에 해마 그림이 나와 있다. 나는 또 호기심이 발동한다.

“누가 해마 자랑 좀 해볼래요?”

“해마는 수컷이 새끼를 낳아요.”

“해마는 자신의 몸을 잘 숨겨요.”

“해마는 변신을 잘해요.”

 서로 아는 것을 말한다고 아우성이다. 어린이들은 동식물에 대해 해박하다. 호기심 천국이다. 세상이 다 궁금한 것들이다. 질문에 대답하고 대답에 또 질문하고. 그러다가 미국 사람의 젓가락은 몇 개일까, 까지 나온다. 질문하다 보면 또 시간이 부족하지만 이런 시간이 필요하다. 질문이 죽은 나무에서는 창의성이 꽃필 수 없다. 

 우리는 얼마간 동물농장에서 놀다가 다시 수학으로 돌아온다. 받아 올림이 있는 덧셈에 꼭 필요한 10 만들기 공부를 한다.

 “10이 되는 짝,

  1의 짝은 9,

  2의 짝은 8

 ……

  9의 짝은 1,

  10이 되는 짝 다 찾았다.”

어린이들은 신나게 숫자 랩을 외친다. 나는 이렇게 어린이들하고 논다. 놀면서 나도 그 순간마다 초등학교 1학년이 된다.   

 

 4교시가 끝날 즈음이면 급식도우미 어르신들이 급식 왜건을 밀고 오신다.

 “벌써 점심시간이에요?”

 “그러네, 벌써 그렇게 됐네. 이제 알림장 쓸까요?”

 “네, 와! 정말 빠르다. 공부가 이렇게 재미있는 줄 몰랐어요.”

 현서가 큰소리로 말한다. 이 어린이들은 커서도 공부가 끔찍한 짐이 되지 않길 잠시 속으로 빌어본다.

 재빠르게 알림장을 쓰고 앞에 선 유수 뒤로 어린이들이 길게 줄을 선다. 알림장 ‘예쁜 손’ 칸에는 읽은 책이름과 쪽수를, ‘착한 손’ 칸에는 착한 일을 매일 써 오게 했다. 예쁜 손에는 ‘선인장 호텔 1쪽-25쪽’ ‘장수풍뎅이’ ‘팥죽 할머니와 호랑이’를, 착한 손에는 ‘숟가락을 놓았어요’라든가 ‘안마를 했어요’ ‘금붕어 먹이를 주었어요’ ‘동생과 놀아 주었어요’ 같은 내용이 쓰여 있다. 알림장에 적어 온 것을 읽고 있으면 말썽쟁이들과 씨름하며 혈압이 오르던 일들도 다 씻겨 내려가고  교실에서 벌어진 난리 부르스는 어느새 스르르 녹는다.    


급식시간. 어린이들이 싫어하는 브로콜리가 나왔다. 나는 보자마자 하나를 슥 집어 입에 넣으며 큰 소리로 말한다.

 “으~음, 완전 맛있다. 난 브로콜리가 매일 나왔으면 좋겠어.”

 “선생님, 전 브로콜리 좋아해요.”

 “나도, 나도”

“그래, 브로콜리나 야채를 좋아하는 사람은 천재가 된대.”

 슬쩍 보았더니 유빈이가 하나를 입에 넣는다. 오늘 작전 성공. 플라스틱 주스 뚜껑을 열기가 만만치 않다. 너도나도 열어달라고 들고 나온다. 다 따주고 대충 밥을 먹은 후, 밥을 놓고 기도하는 다섯 명의 어린이들 밥 먹이기에 돌입한다. 

  지완이는 고기를 잘 먹지 않는다. 숟가락에 밥과 고기를 얹어 주자 앞니 빠진 입을 ‘아’하고 벌린다. 알림장에 붙일 칭찬표가 콧등과 볼 이마에 붙어 있다. 연지 곤지 찍은 얼굴을 바라보는 나에게 알림장을 집에 놓고 왔어요, 한다. 농부가 되고 싶다는 귀여운 얼굴을 한참 본다. 뒤에 앉은 은서도 꼬무락거리며 밥알을 세고 있다. 지완이 한번 먹이고, 은서 한번 먹이고. 기범이는 앞 뒤 사방을 참여하느라 밥은 뒷전이다.

 “기범이가 오늘은 밥을 다 먹으려나 봐. 다 먹으면 칭찬표가 다섯 갠데”

 그때서야 먹은 밥을 삼키지도 않은 채, 볼이 터지게 다시 욱여넣는다. 찬우가 오더니 “그만 먹을래요.” 한다. 음식이 반도 넘게 남았는데도 말이다.

 “찬우는 다섯 번 더 먹자.”

 아이는 들어가 다섯 번을 세면서 먹는다. 

 돌봄 교실에 남아있는 어린이들은 다섯 시나 되어야 집으로 가기에 어떻게든 점심은 잘 먹여야 하지만 급식도우미 어르신은 교실 앞문에 서서 뚱한 얼굴로 어린이들을 채근한다. 더 기다려주지 않는 게 야속하다.          

 집으로 가기 전에 또 인사를 한다. 늘 웃는 예준이 차례다.

 “오늘 학교에서 재미있었어요?”

어린이들은 네, 하고 이구동성으로 대답한다. 재미있게 학교를 다니는 것만으로도 절반은 성공한 것이다. 옷을 입던 대희가 지퍼가 꼈다고 낑낑대며 나온다. 천이 한참 먹혀 들어간 지퍼는 꽉 다문 입을 열 줄 모른다. 힘써 겨우 내린다.

“와, 선생님이 금방 고쳤어.”

 그제야 아이 얼굴이 밝아진다. 1학년 담임선생님은 슈퍼맨이거나 슈퍼우먼이어야 한다.

 예준이가 얼른 가방을 메고 차렷을 외친다. 블록을 가지고 놀던 아이, 색종이 접기를 하던 아이, 찰흙을 만지던 아이들도 따라 외치며 자기 자리로 돌아온다. 

“선생님, 사랑합니다!”

 나도 대답한다.

“사랑합니다!”

 짝끼리 마주 보며 인사를 한다.

“친구야, 사랑해”

 자리를 잘 정돈 한 어린이들은 복도에 나가 줄을 선다. 하영이는 제일 앞에 서려고 책상을 정리하고, 떨어진 휴지와 색연필을 줍고, 쓰다 남은 종이는 재활용 상자인 ‘또또 상자’에 넣고, 아직도 가방을 못 챙긴 짝을 도와주고 자기네 모둠을 바람처럼 정리한다.

 서로 선생님 손을 잡으려고 앞자리 다툼을 하기 때문에 매일 번갈아 손을 잡고 교문까지 바래다준다. 내 손에 꼭 잡힌 작은 손을 타고 아이의 심장에서 흐르는 맑은 물소리가 들려온다. 빠진 이 사이로 새어 나오는 맑은 웃음이 나를 올려다볼 때 북새통 같은 하루를 말끔히 잊고 만다.

 

 어린이들이 빠져나간 빈 교실. 옷걸이에 주인을 잃은 주민이 옷만 덩그러니 걸려 있다. 지우개 가루, 흘린 밥알, 먼지를 쓸어내고 교실을 정리한다.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어린이들이 내고 간 학습지와 수학익힘책을 채점한다.

‘미숙이네 할아버지의 연세는 여든이고, 철희네 할머니의 연세는 예순아홉입니다. 누가 나이가 더 많을까요?’

‘우리 할아버지가 더 마나요’

승구가 자랑스럽게 써 놓았다. 얼마나 고민하며 썼을까. 채점하다 나는 정신 나간 여자처럼 깔깔거린다.    

 문득 이 어린이들이 그대로 자라나면 얼마나 세상이 맑아질까 생각한다. 왜 어른이 되면 이토록 해맑았던 시절을 다 잃어버리는 걸까. 나는 잠시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다.

 옆 반 선생님과 이야기할 틈도 없었네. 컴퓨터에 읽지 않은 한 꾸러미의 메신저가 깜박거린다. 휴, 또 몇 개의 공문이 와 있을까. 재미없는 사무가 날 기다린다. 나는 컴퓨터에 껌처럼 달라붙는다. 자라목을 하고 모니터에 빠져 있는데 정안이가 머리를 팔랑이며 들어온다. 방과 후 요리교실에서 만든 동그란 쿠키를 내 손에 올려놓는다. 따뜻하다.

“선생님이에요”

‘히’ 웃으며 건네 준 큰 단추만 한 쿠키엔 까만 눈동자와 빨간 입술이 선명하다. 아이는 커다란 보물을 내게 건네고 으쓱해한다. 차마 먹기 아까워 작은 상자를 꺼내 담아 둔다.      

 

 1학년 어린이들은 매일매일 새로운 드라마를 연출한다. 그들은 주연이고 나는 조연이다. 매일매일 어린이들에게는 신세계가 열리고 나에겐 예측불허의 드라마가 펼쳐진다. 내일은 또 어떤 드라마가 이어질까. 은근히 기대하며 교실 문을 닫을 때, 나의 기나긴 하루도 ‘멋진 엔딩’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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