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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설자 Jan 27. 2021

내 곁에는

건배할 사람이 필요하다오, 그의 재킷을 가져다주세요

          

 신문을 펼치면 눈길이 오래 머무는 사진이 있다.


 이탈리아에 사는 올해 94세인 말라볼티 피오렌조 할아버지는 성탄절 날 볼로냐 베르가토 무장경찰대 중앙작전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당직병이 전화를 받았다.


“나는 말라볼티 피오렌조라고 하오. 아흔네 살인데 집에 혼자 있다오. 그저 크리스마스에 함께 건배를 할 사람이 필요하오. 시간을 낼 수 있는 경관이 있다면 10분만 와서 혼자 있는 나를 들여다봐줄 수 있겠소?”


자식들은 멀리 있고 우울하다는 노인의 전화를 받은 당직병은 누가 됐든지 금방 보내드리겠다며 노인을 다독였다. 잠시  경관  명이 할아버지 집을 방문하였고 샴페인 잔을 들어 올리며 크리스마스 건배를 하면서 사진을 찍었다. 그들은 흐뭇하게  잔을 즐겼고 할아버지가 친척들과 대화를 나눌  있도록 영상통화도 걸어줬다.

 (조선일보 ‘코로나 크리스마스의 온정’ 워싱턴=김진명 특파원, 김수경 기사 참조)


경관들과 건배를 하는 피오렌조 할아버지 ⓒ조선일보


 경찰들이  일이 마음을 따듯하게 했다. 할아버지가 무장 경찰에게 전화를  것이 재미있기도 하지만 얼마나 외로웠으면 그랬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짠했다. 경찰 또한  노망난 노인의 전화라고 무시하지 않고 친절하게 응대한 것이 흐뭇하게 다. 외로운 노인을 달래준 경찰이 고마웠다.  크리스마스 건배를 하는 할아버지도, 경관들도 행복해 보였다.

  



 

 

 이탈리아에 사는 올가와 빈센초 몰리노는 82세의 동갑내기 부부다. 그들은 지난 9월 26일 결혼 63주년을 맞았다. 금혼식을 맞고도 3년이나 더 해로했다.

그들에게 어느 날 열이 났다. 병원은 갈 수 없었다. 코로나로 의료대란 중이라 응급상황이 아니면 병원을 이용할 수 없었다. 일주일 만에 의사가 왔지만 단순 독감으로 진단하고 항생제 처방만 했다. 그들은 계속 고열에 시달렸고 응급실에 실려 간 후에야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았다. 각기 다른 병실에 있던 그들은 만날 수 없었다. 빈센초가 먼저 세상을 떠나고 한 시간 후에 올가도 떠났다. 올가는 죽기 전에 그렇게 말했다고 한다.


“남편이 가까이 있는 것처럼 느끼고 싶어요. 그의 재킷을 가져다주세요.”


(조선일보 손진석 기자 기사 참고)



올가와 빈센초 몰리노 부부 ⓒ 조선일보


 올가는 남편의 재킷을 손으로 지며 남편의 온기를 꼈고 편안하게 하늘로 갔을 것이다.  분은 코로나 없는 곳에서  아침마다 에스프레소를 모닝커피로 마시고 생전에 그랬던 것처럼 어깨를 두르고 동네 산책을  것이다.

 그들 손녀의 말에 따르면 외출도 자주 하지 않고 아파트에서 서로 의지하며 살았다고 한다. 이 시절이 그들을 데려갔지만, 언젠가 자연스럽게 그들에게 죽음이 와도 그렇게 함께 갔을지도 모른다.

   

 생전에 찍은 사진에 둘은 서재 앞에 서서 어깨를 안고  있다. 키가 크고 건강해 보이는 빈센초, 올가는 안경을 쓰고 파리한 얼굴이지만 둘은 건강해 보인다. 뒤로 많은 책들이 꽂아진 책장이 보인다. 어떤 상황에서 찍은 사진인지 모르지만 최근에 찍은 사진이었다. 옆에 누군가 같이 찍은 사진인 .

 올가와 빈센초 모두 유쾌한 표정은 아니다. 삶이 버거운 듯 힘든 얼굴이다. 우울하고 지쳐 보인다. 이 시대를 버텨내는 우리 모두의 얼굴이다. 우울한 그들의 얼굴이 곧 우리의 얼굴이란 생각이 들었다.


온 사랑이 들어 있는 말.

“그를 느낄 수 있게 재킷을 가져다주세요.”


그 말에 멈춘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우리도 동창 부부다. 내년이면 결혼 30주년을 맞는다. 그들처럼 63주년이 되려면 아직도 33년을 더 살아야 한다. 30년 후의 우리 모습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 그때까지 우리는 살아 있을까. 아침마다 나는 커피를 마시며, 안경을 쓰고 노트북을 열고 글을 쓰고 있을까, 그는 온몸에 하얗게 비누를 칠해 샤워를 할까. 그때까지  건강하게 걸어 다닐 수 있을까. 오후 네 시가 되면 오늘은 뭐 먹을까? 하다가 초밥집에 가서 늘 주문하는 스페셜과 메밀을 주문하여 호로록호로록 먹고 한강을 한 바퀴 돌고 올까.


 어쩌면 서울을 떠나 바닷바람 부는 어느 시골에 가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거기서 돌 틈에 난 잡초도 뽑고  들꽃들을 심고 소일하고 있을까. 손주들이 오는 주말을 기다리며 한가로이 나무 아래 탁자에서 커피도 마시며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 내 곁에는 그가 건강하게 서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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