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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설자 Mar 25. 2021

말없는 것들에게

내 몸아 고마워!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소리 내어 이 이름을 읽으면 의미심장하게 들리는. 사각이는 풀 먹인 명주 같은 이름. 만지면 삭 손에 베일 것 같은 억새풀을 만지는 듯한.  낮게 소리 내어 읽어본다.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그녀의 시 <일요일의 심장에게>는 이런 시다.   


  

고마워 내 심장

투덜거리지도 않고 소란 피우지도 않으며

타고난 근면함에 대해

어떤 칭찬도 보상도 요구하지 않아서

너는 1분에 70번의 공덕을 쌓고 있지.

나의 모든 수축과 이완은

세상을 두루 여행하라고

열린 바다로

조각배를 밀어 보내는 것과 같지.     

고마워 내 심장

매 순간순간마다

나를 남들과 구별되는 존재로 만들어 주어서.

꿈에서조차 독립된 존재로.     

너는 계속 확인해 주지.

내가 꿈속으로 영영 날아가 버리지 않도록,

날개가 필요 없는 마지막 비상 때까지는,

고마워 내 심장

나를 다시 잠에서 깨어나게 해 주어서,

비록 오늘은 일요일,

안식을 위해 만들어진 날이지만

내 갈비뼈 바로 아래에서는

영원한 휴식 전의 분주한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지.


         

<마음 챙김의 시> 류시화 엮음

 

단 한 번도 내 심장에게 고맙다는 생각을 해 보지 못했다.

 나를 매일 일으키고 나를 매일  쉬게 하고, 글을 쓰게 하고 책을 읽게 하고, 사랑하는 사람 곁에서 웃을  있게 하는  심장. 그저  몸이 매일 살아나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아침이면 해가 뜨고 세상이 밝아지는 것처럼, 눈을 뜨고 세상을   있고, 어디든   있고, 톡톡 뛰는 심장은 당연히 혈액을 받아들이고 내보내며 자신의  일을, 당연히  일을 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아니 아예 그들의 일을 생각해보지도 않았다.


 고마워 내 심장. 잠을 자는 순간에도 ‘영원한 휴식 전의 분주한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지’ 그런 내 심장이 있어 나는 오늘도 일어나 이 글을 쓰고 있다. 말없이 나를 위해 움직이는 것들이 심장뿐일까.


제주 신촌 앞바다



  

 시각 장애 청년이 안내견을 데리고 외출을 하는 것을 따라가며 찍은 영상을 보았다. 안내견은 계단에서 멈칫하고 계단임을 알렸다. 계단을 내려가고 지하철을 타는 것은 그나마 나았다.   출구인지 점자도 없고 음성 인식도 되지 않았다. 지하철  안이 너무도 소란하여 원하는 음성을 들을 수가 없었다. 결국 아무 출구로 나와 사람들에게 물어본다. 버스를 타야 하는데 정류장까지 보도 블록이 되어 있지 않다. 있다 하더라도 킥보드와 오토바이가 아무렇게나 방치되어 있어 그에게는 무수한 장애물의 연속이었다. 버스 정류장 안에만 있는 안내 블록은 소용이 없었다.


 장애를 가진 사람의 입장에서 만들어 놓지 않는 안내는 소용이 없었다.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기둥이나 출구 입구 같은 곳에 점자 안내가 있어야 하는데도 그저 막연하게 형식적인 안내로 인해 시각장애인들은 혼란에 빠지고 만다. 빙빙 돌다가 겨우 찾은 버스 정류장에 버스들이 수시로 오는데 몇 번 버스인지 알 길이 없다. 일일이 기사에게 물어보고 탄다.


우여곡절 끝에 외출을 하고 돌아오는 길 또한 막막한 고행길이다. 그래도 그 청년이 아주 밝은 얼굴로 말하는 모습에 마음이 놓인다. 정비가 잘 되어 있지 않는 시설들이 마치 나의 잘못처럼 미안해진다.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나서서 갈 수 있는 잠깐의 외출도 장애인들에게는 고통의 연속이었다. 구르고 깨지고 넘어지고 멍들고 한 번의 외출이 지난한 전투와 같다고 했다.


 그의 외출을 영상으로 보면서 뭔가를 볼 수 있는 내 눈이 그렇게 다행일 수가 없었다. 남의 어려움을 보고 나의 상황에 안도하는 지극히 아메바적 사고다.  보이는 것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진지하게 스며들었다. 보지 못한다면 그 암흑의 세계를 어떻게 이겨낼까.



이 찬란한 봄을 오감으로 보는 산책길에서

 

 산책할 때 오 햇빛이 내리쬐는 넓은 한강 광장에 들어서면, 가끔 눈을 감고 스무 걸음 걸어본다.  걸음을 걸어도  만큼 아무것도 없는   곳이라 마음 놓아도  곳이다. 눈을 감고 자신 있게 걷는다.  걸음은 힘차게 걷는다. 열여섯 보만 걸어도  앞에 자전거나 기둥이나 어떤 장애물이 바로 눈앞에 다가오는 것만 같아 보폭이 작아지고 발걸음이 느려진다. 앞으로 나가는 것을 저어하게 된다. 결국 스무 걸음을  걷지 못하고 눈을 뜨고 만다.


 당연히 눈앞은   공간에 내가  있다. 그럼에도 눈을 감았을 때는 뭔가 시커멓게 다가오는 느낌이 어 눈을 뜨고 만다. 다시 눈을 감고 스무 걸음을 걸어본다. 여전히 넓은 광장에는 아무도 없건만 스무 걸음을  걷지 못하고  눈을 뜨고 만다. 눈을 감으니 전혀 공간과 거리 감각을  수가 없는 것이다. 바로 눈앞으로 자전거를  사람이나 애벌레 건물을 받치고 있는 거대한 기둥이 내게 다가와 이마에 부딪칠 것만 같아 보폭이 작아지고 자신 있게 발을 내디딜 수가 없는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곳인데도 그렇게 두려움에 휩싸이는데, 도로가 일정하지 않고 오르락내리락해야 하고 온갖 시설물들이 눈앞을 가리고 있는 거리에서, 혼란스러운 생활 속에서 시각장애인들이 겪을 어려움이 감히 상상이 되지 않았다.




 아직도 나는 돋보기를 쓰지 않고 글을 읽는다. 컴퓨터를 할 때나 티비를 볼 때만 안경을 쓴다. 근시여서 노안이 더디게 오는 것이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다. 얼룽거리지 않고 작은 글씨도 읽을 수 있다는 것이 그저 고마울 뿐이다.


 매번 고마운 마음은 가지지 못하더라도 내 몸이 안전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커서 매일 눈 운동을 한다. 손을 스무 번 비벼 따뜻해진 손을 눈 위에 대고 좌우로 열 번씩 눈동자를 돌리며 눈 근육 운동을 한다. 따스한 손의 열기를 받은 눈동자를 크게 원을 그리면서 여러 번 돌린다.


 책을 읽다가 글자가 흐려지면 책을 내려놓고 산책을 간다. 밖을 돌고 오면 다시 글이 선명하게 보인다. 혹사하지 말고 오래오래 고마운 마음으로 써야겠다.


 내 심장, 내 눈, 내 손, 내 다리….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있을 때는 얼마나 소중한지 모른다. 그것이 내 곁을 떠나거나 원래의 모습이 아닐 때 그때서야 비로소 소중하고 귀한 것을 안다. 뒤늦게 깨닫는 것이 우리가 가진 맹점.


내 몸뿐만 아니라 주변에 고마움을 모르고 지난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말없는 것들이어서 고마움을 모르고 지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말없이 고마운 것들에 사랑을 주고 소중하게 지키는 일. 그것이 내 몸에 감사하고 나를 사랑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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