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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설자 May 03. 2021

내 생애의 책

내게 다가온 책들

    

<내 인생을 바꾼 한 권의 책>을 읽었다. 잭 캔필드와 게이 헨드릭스가 마흔여덟 명의 명사들이 인생에 영향을 끼친 책에 대해 쓴 것이다. 그중에 내가 읽은 책이라곤 <연금술사>, <죽음의 포로수용소에서>, <성공하는 사람들의 일곱 가지 습관>, <부서진 사월>, <나를 있게 한 모든 것들>, <앵무새 죽이기> 정도다. <죽음의 포로수용소에서>와 <성공하는 사람들의 일곱 가지 습관>은 두 명씩 추천했다.


 ‘명사들이 인생을 바꾼 책’이라는 명분을 달고 나온 책은 많지만, 이 책에 소개되는 글들은 어떻게 자신을 변화시켰는지 분명하게 밝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러저러해서 좋았다’는 소개를 넘어 한 편 한 편이 잘 쓴 에세이여서 무척 감동적이었다.


살면서 읽은 수많은 책들 중에서 인생 최애 책을 고르는 일은 쉽지 않다. 인생을 확 바꿔버릴 만한 책이 기억나지 않고 당연히 내 인생이 확 바뀐 적도 없었다. 내 인생의 책은 그때그때 달랐다.




다섯 살, 도배하기 전 마루 벽에 바른 신문을 읽으며 아버지께 글을 배웠다. 집에 뒹구는 활자로 된 거라면 뭐든지 읽었다. 입학하자 동네 만화방이 생기면서 <행복한 왕자>는 만화로 먼저 읽었다. 원문에 꽤 충실한 내용이 많은 만화였다. 왕자의 부탁을 들어주느라 제비가 쓰러져 죽을 때는 그 착한 마음에 눈물이 났다. <해저 2만 리>라는 공상 과학 만화는 오빠가 좋아했지만 그다지 내 마음을 끌어당기지는 않았다.  <전우치전> 같은 전래동화, <안데르센 동화집> 같은 책들과 학교 교무실에 있는 몇 권 안 되는 동화책을 읽고 또 읽었다.


육영재단이 만든 <어깨동무>라는 어린이 잡지가 있었다. 학교로 몇 부가 배달되었는데 아주 잘 만든 잡지였다. 독재자의 부인이 한 일 중에 가장 자애로운 사업이 아니었을까. 그 책을 보려면 선생님께 허락을 받고 빌려와야 했다. 아이들이 볼 책을 교무실 책장에 왜 가둬 놓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내가 제일 먼저 교무실에 가서 빌려왔고, 줄 선 아이들을 순서를 매겨 주며 뻐기곤 했다. ‘어깨동무’ 잡지 이름이 참 다정하게 느껴졌다. 어깨동무를 한 모습. 사랑스러웠다. 거기엔 경쟁도 없고 질투도 미움도 거짓도 없는 순수한 아이들이 팔을 걸고 있는 말이었다. 다음 달에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한 달을 손꼽아 기다리곤 했다.


 다른 책들도 교무실 책장에 있었기에 선생님께 책을 빌려 읽어야 했다.  에드몬드 데 아미치스의 <엄마 찾아 삼만리>. 제노바에서 아르헨티나로 간 엄마를 찾아 떠난 아이 이야기나,  주워온 아이 레미에 대한 이야기인 엑토르 말로의 <집 없는 천사>는 그냥 너무 슬펐다는 생각밖에 나지 않는다. 책을 읽으며 엄청 울었다. 나는 집 없는 아이가 아니라서, 엄마와 살아서 너무나 다행이었지만 레미가 너무나 불쌍했다.


 3학년 때 읽은  아미치스 작품 중에 <사랑의 학교 Cuore>는 특별했다. 이탈리아라는 나라가 지도상에 어디에 붙었는지도 몰랐지만 나는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엔리코는 어느 추운 날 밤중에 아버지 몰래 일어나 아버지가 하는 일을 대신한다. 작은 불빛 아래서 곱은 손으로 잉크를 적셔 봉투에 글씨를 쓰는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마 내가 엔리코와 비슷한 나이여서 더 마음이 통했을 것이다. 우리와는 많이 다른 환경이 나오는 글이지만 왠지 동시대적인 마음을 느꼈던 것 같다. (성인이 되어 읽어 보니 그때의 강렬한 느낌과는 달랐다. 지나치게 교훈적이었다.)


 4학년이 되자 나는 <괴도 루팡>이나 <셜록 홈스> 같은 탐정소설에 빠졌다. 중학년은 추리소설에 흥미를 느끼는 시기이기도 하다. 추리소설이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사건이 벌어지고 조그만 단서를 찾아 범인을 찾아내는 일은 짜릿하게 했다. 수업시간에도 교과서 안에 놓고 읽다가 선생님의 기습 질문에 임기응변으로 대답하곤 하면서 책 읽기에 몰두했다. 오죽하면 5학년 선생님이 ‘만화에 탐독하여 경쟁자들에게 성적이 뒤지고 있다’는 말을 통지표에 적었을 정도였다. 중학생 오빠 국어 교과서에는 좋은 글들이 많았다. 김소운의 <가난한 날의 행복>이나 피천득의 <인연>은 그중에 가장 생각나는 이야기다. 아사꼬가 내 이름 유끼꼬와 비슷해서 더 마음에 남았다. 오빠가 쓰고 버린 국어나 도덕 교과서를 읽고 또 읽었다.   


어느 날은 나도 책을 사 보고 싶었다. 엄마에게 조르고 졸라 용돈을 타내어 모슬포 서점에 갔다. 책꽂이에 가득 꽂아진 책들을 보며 무엇을 고를까 망설였다. 그 순간이 참 좋았다. 내 앞에 선택할 책들이 즐비한 것은 모두 내 책 같았다. 나를 뽑아달라고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노을이 창가를 지나 서가에 비추는 곳에 눈에 들어오는 책이 있었다. 프랑소와즈 사강의 <어떤 미소>. 들어본 적 없는 먼 나라에 사는 사강이 어떤 작가인지도 몰랐고 제목이 끌린 것도 아닌데 그것을 골랐다. 버스를 타고 집에 오면서 설레었다. 어서 읽고 싶었다. 까뮈가 <섬>을 안고 올 때의 흥분처럼 나도 그랬다. 그런데 읽어도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사랑을 이해하기에 너무 어렸다.


국민학교를 졸업한 겨울 방학 때 오빠가 자취하는 집에 간 적이 있었다. 보충수업을 하는 오빠에게 밥도 해주고 시내 체험?을 하고 오라는 엄마의 배려? 였다. 오빠가 학교에 가고 자취방을 정리하고 방학숙제를 하고 나면 할 일이 없었다. 무료해지면 주변에 시선이 가게 마련이다. 그때 오빠 책상 위에 있는 한국 단편문학전집이 눈에 들어왔다.


 책상에 꽂아진 책이라곤 고등학교 교과서 몇 권과 노란 금박으로 글씨가 새겨진 열두 권으로 된 단편문학전집이 전부였다. 오빠가 월부로 산 책이었다. 케이스에서 꺼내 책을 펼치면 노란 가름끈이 출판할 때 그대로 책 사이에 에스자로 꼬부라져 동글납작하게 들어 있었다. 오빠는 단 한 권도 읽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읽지도 않으면서 왜 샀나 모르지만 전집 한 질이 있어서 학생 책상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었다. 번호대로 꺼내어 읽기 시작했다. 새 책에서 나는 책 냄새가 좋았다. 나는 급속도로 책에 빠져들었다.


계용묵의 <백치 아다다>, 나도향의 작품이 특히 기억에 남았다. <그믐밤>, 전영택의 <화수분> 같은 작품을 읽을 때는 눈 위에서 얼어 죽는 모녀가 그려져 눈물을 흘리며 읽었다.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도 기억에 남는다. 제발 술 먹지 말고 집으로 곧장 가길 그렇게 기도했건만 기어이 그렇게 선술집에 들리고 그에게 그토록 ‘운수 좋은 날’이 비극으로 바뀌고 마는 장면에서 나는 너무나 안타까웠다. <표본실의 청개구리>는 읽다가 재미가 없어서 그냥 넘겼다. 그해 독후감 방학숙제는 <그믐밤>으로 썼다.


그렇게 단편들을 읽다 보면 어느새 창밖은 노을이 졌고. 오빠가 학교에서 올 때쯤 밥을 하고, 어묵을 썰어 넣어 김치찌개를 끓여 놓곤 했다.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몰랐다. 그 방학 동안 문학전집을 다 읽고 나니 내가 조금 자란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책에서 읽은 이야기들로 해서 마치 내가 어른들의 세계를 다녀오고 온갖 세상사를 경험한 듯했다. 사춘기를 넘기고 있던 나에게 당시 책들은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했다. 만일 그때 세계문학전집까지 있었더라면 나는 정말 굉장한 독서를 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쉽기만 하다.


고등학생이 되었다. 교과서에 나온 한국문학은 모두 눈에 들어왔다. 이미 읽은 책들이니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하는 말이 귀에 속속 들어왔다. 중학생 때 그 책을 정말 잘 읽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어시간이 너무 좋았다. 많은 책을 읽어야 할 고등학교 때는 책을 많이 읽지 못했다. 교과서나 보조 교과서, 도서실에서 읽은 책이 전부였다. 교과서의 글이 좋았다.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은 몇 번을 읽었다.


그때 누가 인상 깊게 읽은 책을 물어보면 헤르만 헤세를 꼽았다. 잘 이해하지도 못했으면서 <지와 사랑>으로 번역된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를 읽고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떠들고 다니면서 책을 많이 읽는 척했다. 감수성이 최고인 그때 책을 많이 읽었더라면 지금의 나는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었을 것이다. 사유의 깊이는 많이 읽고 많은 생각 속에 나오는 것이기에.

지문을 읽는 것으로 독서를 대신하곤 했다. 영어 참고서나 문제집에 나온 지문들이 정말 좋았다. 성문종합영어나 1200 제라는 영어 문제집에는 영문학 작품에서 발췌된 것들이 많았다. 비록 부분이긴 했지만 내 상상력을 자극했다. 어떤 지문은 책으로 연결되기도 했다.


대학 때는 이념 서적을 많이 읽었다. 서슬 퍼렇던 시절 81학번인 나는 어쩌다 다른 대학 연합동아리 이념서클에 들어가게 되었다. 선배들이 읽으라는 책들을 읽고 엠티에 가서 그들이 하는 말을 들으니 온통 사회가 부조리했다. 불합리하고 불평등했다. 빈부 격차와 권력과 소외, 사회주의와 민주주의 같은 이슈들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역사란 무엇인가>, <전환시대의 논리>, <중국의 붉은 별>, <해방 전후사의 인식>... 이제까지 알던 세상과는 너무도 달랐다. 부조리와 권력, 정치의 메커니즘 같은 것들. 틈틈이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보긴 했지만 연애하고, 연극에, 서클활동에 바쁘기만 했다.




2년의 짧은 대학생활을 마감하고 교사로 발령이 났다. 당장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쳐야 하는데 나는 막막했다. 어떻게 해야 훌륭한 교사가 되는지 아무도 가르쳐준 사람이 없었다. 대학에서 배운 것은 기억이 없었고 그다지 쓸모 있지도 않았다. <아동심리>를 가르치던 교수는 교재를 읽어나가기만 했다. 아이들의 심리를 사례를 들어 케이스 바이 케이스가 절실했다. 나는 갈증이 났다.


그때 학교마다 돌아다니는 월부 책장수가 있었다. 새로 발령받은 신삥아리들은 아주 잘 먹혔기에 그들에게 호구였다. 열정이 있었기에 그 책만 읽으면 모든 것을 해결하고 훌륭한 선생이 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손바닥 책처럼 작은 크기의 <교육총서 시리즈>인데 30권이 넘었다. 당시 내 한 달 월급이 30만 원 정도 했는데 거의 월급과 맞먹었다. <교사와 학생 사이>, <부모와 자녀 사이>, 같은 것들부터 최고의 수업을 하기 위한 좋은 책들이 있었다. 그것을 월부로 사 한 권씩 핸드백에 넣고 다니면서 읽었다. 얼마나 읽었는지 모르지만 세로 읽기로 된 그 책을 교실에 쌓아 놓고 책부자가 된 것처럼 흐뭇해했다. 한 권씩 골라 읽는 재미를 누렸다. 


읽어야 할 책이 참 많았다. 교과용 지도서도 과목별로 읽어야 하고, 새교실이나  교육자료도 읽어야 했다. 필요에 의해 읽어야 하니 재미는 없었다. 재미까지 더해지면 정말 좋을 텐데. 이제 돈을 벌고 있으니 내 마음대로 책을 사 볼 수 있게 되었다. 영희 언니와 서귀포에 나들이할 때는 책방에 들러 꼭 두 세 권씩 샀다. 그때도 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 마음에 와 닿았다.


아마 그때부터 글을 조금씩 썼던  같다. 제주시에서 근무할 때는' 사인자'라는 책방에 자주 갔다. 사회, 인간, 자연을 줄인 말인데 책방 이름이 의식이 있어서 나는 그곳을 사랑했다. 금남 언니와 다니면서 매주  아름씩 책을 사들고 왔다. 언니가 추천한 책들은 모두 내게 건너와 자리를 잡곤 했다. 특히 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줬다. 언니는 방대한 독서력으로 나를 압도했다. 언니와 함께 근무한 2 동안 우리는 책을 읽고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책으로  풍덩 빠진 시간이었다.


 직장에 다니면서 마음껏 책을 읽으니 정말 행복했다. 아이들을 가르쳐야 하니 동화책과 그림책도 많이 읽어야 했다. 황선미의 동화는 다 좋았는데 특히 그녀는 선생님에 대해 이렇게 정의한 것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선생님이란, 무엇을 가르치는 분이면서 아이가 무엇이 될 수 있도록 씨앗을 심어주는 사람”


나는 부지런히 책에서 씨앗을 주워 아이들에게 실어 날랐다. 그것들이 무엇이 될 수 있도록.


 결혼을 하고 아기가 태어나기 전까지 남는 시간에 책을 읽었다. 방학 때는 온종일 집에서 책만 읽었다. 태교서, 육아서, 위인들의 이야기, <닥터 노먼 베쑨> 같은 자서전... 그런 책을 읽으면서 우리 아이들이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공헌하는 위대한 사람이 되길 원했다. (아기를 가진 엄마들은 그런 엄청난 열망을 가진다. 진짜 그렇게 될 것만 같다. ^^)


서점에 가면 육아 책 한 권, 내가 읽을 책 한 권, 아이들 책 여러 권 샀다. 살림에 치이며 오래도록 책을 읽을 시간이 없어 아쉽기만 했다. 아기를 포대기로 업고 재우면서 <토지>를 읽었다. 대하소설을 읽으며 인간들의 삶을 생각하게 되었다. 내 삶을 꾸려가면서 소소한 인간사에, 인간의 심리에 대해 조금씩 깊어지고 싶었다. 생활비를 쪼개 책을 샀다. 도서관에서 빌려 와서 읽으면 버스가 지나가버리듯 머릿속에 남지 않았다. 책에 마구 밑줄을 긋고 메모해 놓으며 읽어야 읽은 것 같았다. 그래서 읽고 싶은 책은 꼭 샀다. 좋지 않은 습관이었다.




그 후로도 많은 책을 읽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늘 책과 함께 살았다. 사람들의 이야기가 좋았다. 언젠가는 나도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지 않을까 싶었다. 결국 그런 글을 쓰게 되었다.


일을 그만두고 지금은 온종일 책만 읽어도 되는 시간이 내 앞에 펼쳐져 있다. 새로 나온 책들, 누군가 추천한 책들, 책에 거론된 책들... 수없이 사 놓고 읽는다. 소파 옆에는 내가 읽는 책들로 늘 어지럽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읽어도 돌아서면 잊지만, 그래도 또 읽는다.


 돌아보니 시기마다 읽어야 하는 책들을 읽지 못한 것은 참 안타깝다. <작은 아씨들>, <키다리 아저씨>,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같은 책들을 어른이 되어서야 읽었다. 물론 그때도 좋았지만 소녀적에 읽었더라면 더 풍부한 감수성을 키울 수 있었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나는 아직도 책읽기가 너무나 부족하고 읽어야 할 책들이 많다는 것이다. 책을 어마어마하게 읽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어디서 ‘책을 읽었다’라는 말도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가령 장석주 작가나 윤성근 작가 같은 분! 장석주 님은 노자를 150번 읽었다 하고, 윤성근 님은 열 번 이상 백 번 이상 읽은 책이 수도 없다. 그 정도는 되어야 책을 ‘읽었다’라고 말할 수 있다. 나는 그저 책을 ‘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요즘 나는 고전과 현대를 오가며 읽고 있다. 서너 권을 옆에 놓고 교차로 읽는다. 딱 맞는 단어를 고집하는 플로베르와, 이슬아와 제임스 설터와 메리 올리버를 놓고 손에 잡히는 대로 번갈아 읽고 있다. 되도록 철학도 인문학도 같이 읽으려 한다. 그동안 못 읽은 책들을 읽는게 즐겁다. 필요에 의해서 읽기도 하지만 그보다 재미가 함께 하기 때문에 읽는게 즐겁다. 


내 인생의 책은 무엇인가. 고르기가 힘들다. <혼불>을 읽을 때는 그것이 가장 좋고, <여덟 계단>을 읽을 때는 그것이 가장 좋고, <안나 까레니나>를 읽을 때는 또 그 책이 가장 좋았다. 어쩌면 내 인생의 책은 아직 내게 오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오빠 방에서 하루 종일 읽은 한국 단편 문학선은 내 인생의 책 목록 중에 앞자리에 차지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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