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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설자 Aug 10. 2022

소리 없이 오는 변화

기후 변화를 생각하며


 단 이틀 쏟아부은 비로 서울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아직도 300밀리가 넘는 비가 더 올 거라는 예보에 그저 피해가 없기만을 빌어본다. 반면 남쪽 지방은 폭염주의보로 몸살을 앓고 있다. 온 지구가 이상기온으로 난리를 겪고 있다.


 <이 한 장의 디자인>이란 코너에 실린 사진이 기억난다. 핀란드의 신문사 헬싱긴 사노마트에서 발표한 ‘기후 변화 글꼴’은 녹아내리는 북극 빙산의 변화를 획의 디자인으로 형상화해 온난화 위기를 경고하기 위해 만든 디자인이다.


가장 굵은 획은 위성 관측이 시작된 1979년의 빙산 면적, 가장 가는 획은 그 30% 정도에 불과한 2050년 예상치를 나타낸다. 보통 글꼴은 글자 모양을 유지하면서 획의 굵기만 달리하지만, 이 글꼴은 획이 가늘어질수록 녹아내리는 얼음을 닮게 디자인했다.(조선일보 채민기 기자. 2021.4. 6. 참조)


심각한 표정을 한, 어쩌면 슬픔에 빠진, 조금은 분노심이 어린것도 같은, 어린 여자 아이는 금방이라도 입을 열고 항변하고 싶은 얼굴이다. ‘그러니 당신들은 무엇을 한 거죠? 왜 이 지경이 되도록 내버려 두신 거죠?’라고 질책하는 듯한 눈빛이다. 그 얼굴 가득 새겨진 글씨


WHEN I GROW UP I WANT TO BE A MAM.


 맨 위 이마에 새겨진 견고한 글씨는 조금씩 깨지고,

 I WANT TO BE는

얼음을 만져 잘록하게 녹아내려 가늘어진 글씨다.

입술 아래 새긴

A MAM은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녹아내려 겨우 지탱하고 있다.


WHEN I는 1979년의 빙산 면적을 나타내고, 

A MAM는 30% 정도에 불과한 2050년 예상치


를 나타낸 것이라고 한다.  ‘나는 아빠가 되고 싶어요’라는 다른 버전도 있다고 한다. 마지막 A MAM에 가서 제대로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녹아내린 글씨를 보자 가슴이 철렁했다.





 코로나 바이러스 위기로 전 세계 항공기가 발이 묶이는 바람에 탄소 배출량이 일시적으로 줄었다. 하늘이 얼마나 맑은지 몰랐다. 매일 밖으로 나가 걸으면서 그토록 맑은 하늘을 보며 고마운 마음이었다. 몸은 마스크 안에 갇혀 갑갑하고 여행을 하지 못해 답답한 날들이었지만 매일 창문을 활짝 열어 놓고 마음껏 숨을 쉴 수 있으니 다행이었다. 하늘에는 금방 빨아버린 구름이 걸렸고 멀리 남산도 가까이 보였다. 날마다 쾌청하고 신선한 공기는 마시며 행복했다. 어쩌면 신이 그동안 오만했던 인간을 경고하려고 온 세상을 바이러스로 뒤덮었는지도 모른다.


 온실 기체인 이산화탄소는 지구가 내뿜는 열을 가둬 기온을 높인다. 지구의 온도가 높아지면 상상할 수 없는 재앙을 초래한다. 북극이 녹아내린다. 수천 년 덮였던 빙하가 녹아내리면 전 세계 해수면이 상승한다. 섬들이 물에 잠기고 국토가 물에 잠긴다.  2050년 저렇게 녹아내리면 해수면이 1미터 이상 높아진다는 시나리오도 있다. 게다가 오랜 세월 빙하에 가두어졌던 바이러스가 지구를 오염시킬 가능성도 있다.


 태평양 한가운데 있는 투발루라는 나라는 이미 국토의 많은 부분이 바닷속에 가라앉았다고 한다. <투발루를 구해 주세요>를 읽으며 그들이 걱정되었다. 작은 섬나라가 야자수 몇 그루만 바닷물 위로 올라와 저곳이 사람들이 살았던 땅이었다는 것을 말해줄 것이다. 더 시간이 흐르면 그것조차 바닷물에 잠겨 아예 흔적을 찾아보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저 사진 속에만 존재하는 과거의 땅이 되고 말 것이다. 사람들은 점점 더 높은 곳으로 옮기지만 항공사진에는 벌써 많은 땅이 물속에 잠겨 있다. 아직은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데 섬 가운데 짧은 활주로가 위태롭기만 해 보인다. 천혜의 자연을 자랑하는 제주도나 신혼여행지로 유명한 몰디브도 해수면이 상승했다고 한다.


불어난 물에 표지판 꼭지만 보인다. 어제 한강 모습

 


내 고향 제주가 잠긴다는 생각을 하면 무섭다. 그 아름다운 해안선이 물속에 잠기고 내가 나고 자란 우리 집도 물속 땅이 되는 상상을 하니 끔찍해진다. 한라산이나 무인도로 남아 있을 것인가. 그렇게 바닷속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곳들이 세계 곳곳에 있는 것이다.


 기후 변화 징후는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중국에선 5백 년 만에 호수가 바닥을 드러내는 지독한 가뭄이 계속되고 있다. 또 파키스탄에선 3개월째 쏟아지는 폭우로 성서에나 나올 법한 홍수라고  BBC가 보도하기도 했다.


우리나라도 탄소를 줄인다는 선언에 참여했다. 태양열을 이용한다면서 곳곳에 숲을 밀어내고 태양열 패널을 덮어 놓았다. 그 일 때문에 여름에 많은 비가 왔을 때, 시설물이 있던 아래 마을에는 산사태 피해를 입어 수십 년 살던 삶의 터전을 잃어버리기도 했다. 졸속으로 환경영향평가가 이뤄졌고, 95% 이상이 이상 없음이나 적합으로 판결이 났다고 한다. 무분별한 태양광 시설로 숲을 무너뜨리는 일은 환경 변화에 속도를 더하는 일이다. 변화는 늦게 드러나므로 그 결과에 대해 책임질 사람은 없다. 어느 것이 맞는 일일까.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라산에 군락지를 이루고  있는 구상나무가 죽어가고 있다. 푸른 숲에서 구상나무만 하얗게 고사목으로 팔을 뻗고 죽은 채 서 있거나 하얗게 쓰러져 있다. 죽어가는 나무는 구상나무뿐만이 아니었다. 소나무 재선충으로 수백만 그루를 잘라냈다. 양배추가 속이 물러 쓸모없는 양배추가 되고 말았다. 더위에 속이 다 썩어 문드러지는 무름병에 걸린 것이다. 양배추를 뽑아내는 농부의 얼굴이 흙색보다 더 어두웠다. 한라산에는 베트남이나 라오스 캄보디아 등지 같은 더운 지방에서 자라는 풀고사리가 1650미터에 자라고 있다고 한다. 갈수록 개체수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라산의 기온이 올랐다는 증거다. 이 모든 것이 지구온난화 때문이다.  


 지구 온난화는 교과서에서만 알던 말이었다. 북극이 녹아내리고 북극곰이 살 곳을 잃어버린다고 해도 그저 먼 이야기로 알고 있었다. 멀리 작은 섬나라가 바다 수면이 상승하여 국토가 가라앉는다고 하여도 실감 나지 않았다. 그런데 기후변화 징후가 우리 앞에 성큼 다가와 이미 그 위력을 떨치고 있다. 또 다른 한쪽에서는 가뭄으로 타들어가고 화재로 최악의 산불을 겪기도 한다. 달아오른 지구는 식을 줄 모른다.


  내가 함부로 버리는 것들이 우리가 사는 지구의 온도를 올리는 일이라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이런 사실들을 보면서 내 생활태도를 돌아보았다. 음식을 남겨 버리는 일, 쓰레기를 마구 만들어낸 일, 물자를 낭비하여 쓰는 일... 음식 재료를 살 때마다 비닐에 담고 온다. 음식 쓰레기를 비닐에 버린다. 비닐을 버릴 때마다 옳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습관적으로 버리게 된다.

 먹는 것도 그렇다. 고기를 자주 먹는다. 소는 네 번의 소화 과정을 거치면서 많은 이산화탄소를 내보낸다고 한다. 그러니 고기를 많이 먹는 우리는 모르는 사이에 온실 가스를 배출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동조하고 있는 것이다.  지구 온난화를 앞당기는 일을 내가 하고 있는 것이다. 비닐 사용도 줄이고 고기 요리도 조금씩 줄여 나가기로 했다. 작은 실천이지만 모두가 조금씩만 노력하면 훨씬 좋아질 것이다.


사람들은 복잡하고 장기적인 문제는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눈앞에 당장 어떤 위기를 보여 주지 않기에 안심하고 별로 위기를 느끼지 않는다. 불편한 사실을 외면하고 싶은 것이다. 먼 미래에 다가올 위기나 천천히 오는 위험에는 경각심이 적은 법이다.


 소리 없이 오는 변화. 이미 재앙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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