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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설자 Oct 03. 2022

나의 냉장고

25년을 함께한 냉장고

                

 딸네와 아들네가 냉장고와 티브이를 새로 바꿔준다고 한다. 회갑 선물이란다. 티브이는 아빠에게, 냉장고는 엄마에게 주는 거란다. 넷플릭스 영상이 자주 끊길 때마다 바꿔야지 하다가 오늘날이 되었다.


 이사하며 냉장고를 바꾼다고 했더니 알고 지내던 혜란 씨가 냉장고는 월풀이라면서, 모델명까지 적어 주며 꼭 그걸 사라고 했다. 다른 곳과 비교도 하지 않고 백화점에 덜컥 계약했다. 한쪽 문 냉장고가 주류이던 그 시절에 양쪽 도어가 달린 커다란 냉장고였다. 한쪽은 냉장실, 한쪽은 냉동실이라 채우다가도 공간이 남아서 온갖 잡곡도 냉장고에 보관했다. 25년 전 이야기다.


오래 쓰다 보니 원래 아이보리 색으로 깨끗했던 냉장고 표면은 변색이 되었다. 그래도 귀차니즘으로 바꾸지 못했다. 군데군데 조금씩 흉터가 피어 나와 근사한 시트지로 앞면을 붙이고 또 몇 년을 썼다. 세탁기는 그 사이 벌써 세 번이나 바뀌었다. 하지만 냉장고는 끄떡없었다. 그로써 좋은 물건을 사라는 말은 충분히 검증한 셈이다.


 튼튼한 냉장고가 주방에 떡 버티고 있으니 든든했다. 묵직한 손잡이를 잡으면 손 안이 가득했다. 마치 내 삶이 가득해진 기분이었다. 무엇보다 정수기가 연결되어 있어서 디스펜서에 컵을 대면 반달 모양 얼음이 촤르르륵 떨어져서 정말 좋았다. 얼음을 두세 개 뽑고 바로 옆에 맑은 물을 조르륵 유리컵에 채워 마시며 나는 삶의 질이 달라진 것을 느끼곤 했다. 물건들이 바뀌니 삶도 한 단계 도약한 기분이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푸르기만 했다. 거실 가득 하늘이 쏟아져 들어왔다.




 뭔가 당장 먹지 않을 것들은 냉동실로 가곤 했다. 담을 때는 얼마 후에 꺼내 먹을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그렇지 못한 것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가끔 냉동실도 청소하고 분류를 하지만 남은 재료들이 날마다 냉동실로 직행하다 보니 냉동실은 숨 쉴 틈이 없었다.


 어느 날 퇴근하고 돌아와 보니 집안에 물이 흥건했다. 카펫이 둥둥 떠 있고 온통 거실이 물바다였다. 수도관이 터진 줄 알고 헐레벌떡 들어와 보니 수도는 멀쩡했다. 알고 보니 냉동실에 뭔가를 집어 놓고 문을 제대로 닫지 않았던 거였다. 냉동실 물건들이 녹아 물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제빙기가 컸는데 얼음도 다 녹고 만들어지면서 계속 녹아내렸던 것이다. 냉동실 문이 잘 닫히지 않을 만큼 뭔가를 쟁여 놓았으니 그런 사단이 생긴 것이었다. 카펫을 베란다로 꺼내고 쓰레받기로 물을 퍼냈다. 홍수가 따로 없었다. 그렇게 하루 종일 물에 잠기고 있었으니 나무로 깐 마루는 완전히 맛이 가고 말았다. 지금도 물바다 흔적으로 거실 바닥이 얼룩덜룩 남아 있다.


냉장고 안은  삶을 닮아갔다. 아이들이 자랄 때는 뭔가 먹을 것이 꽉꽉 들어차던 . 마음이 풍족하면 냉장고 속도 풍성했다. 망고, 체리, 아보카도 같은 비싼 이국의 과일들도  자리했고 인삼이나 생선이나 소고기 돼지고기도 육류 칸에 풍성했다. 신선한 야채가 반짝였다. 오이도 단단하고 쪽파도 파랗게 살아 있었다. 나의 삶이 상쾌하고 일이  풀릴 때는 냉장고 안에도 싱싱한 기운이 흘렀다.


 마음이 빈약하거나 관심이 밖에만 나가 있으면 냉장고가 제일 먼저 표가 났다. 시든 배추, 언제인지 모를 양념장, 먹다 남은 밑반찬, 고추 절임 위에는 하얀 골마지가 슬어 있기도 했다. 유통기한이 지난 모르는 소스들, 덤으로 받아온 양념들, 야채 무침을 담아 놓은 통은 무언지 알 수 없는 음식이 되기도 하고. 그렇게 냉장고는 어지러운 내 마음을 닮아갔다.


 어느 날 냉장고 문을 열고 보니 그 넓은 안이 텅 비어 있었다. 장을 본 지가 언제인지 모르게 싱싱한 야채라곤 없었다. 쪼그라진 사과 두세 개, 락앤락 통 한 두 개. 먹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살림이 눈에 들어오지 않던 때였다. 그렇게 한참 동안 냉장고 문을 열고 가만히 있었다. 텅 빈 냉장실에는 싸늘한 공기만 가득했다. 냉기가 얼굴을 덮쳤다. 내 삶에도 서리가 내리고 냉기만이 흐르던 때였다.




 새 냉장고가 온다고 하니 안에 있던 것들을 모두 꺼낸다. 가끔씩 정리를 했건만 정체를 알 수 없는 가루들,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소스들, 정체 모를 이상한 액체들, 고춧가루, 얼마나 지났는지 모를 얼린 떡, 냉동한 봄 야채, 밤과 옥수수, 호두와 잣 같은 것들, 마늘을 빻아 냉동한 것... 꺼내 놓으니 어마어마하다. 병에 담긴 액체들을 버리고 씻어 분리수거함에 버린다.

 

 오늘이 마지막으로 냉장고를 쓰는 날이니 오래된 친구와 헤어지는 것처럼 자꾸 돌아본다.

“냉장고랑 이별할래니 섭섭하네. 내 옆에 늘 있던 건데...”

 나에게 와서 25년을 함께 살았으니 이제 스물다섯 살이 되었다. 분가할 때도 되었다.


 문 위에 붙인 여행하며 사온 마그넷들, 크로아티아에서 산 병따개, 쉔부른 궁에서 산 한스 마카르트의 그림 마그넷, 호주에서 딸이 사 온 코알라 자석 인형, 싱싱마트 전화번호가 적힌 자석, 치킨 쿠폰... 계급장처럼 붙어 있다. 저것도 떼어내고 나면 훈장을 뗀 군복처럼 초라한 낡은 냉장고가 될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견고하고 속이 짱짱하니 겉만 손을 보고 새 옷을 입히면 또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을 터이다.


냉장고 안이 늘 이렇게 싱그럽기를..


 나의 냉장고. 나와 함께 늙어간 물건. 서른다섯에 만나 환갑이 될 때까지 같이 살았으니 물건이기보다 슬픔도 기쁨도 함께한 가족과 같다. 기분이 좋을 때 경쾌하게 냉장고를 열고 시원한 주스나 과일을 꺼내 먹었다. 기분이 상했을 때는 마치 냉장고 탓인듯 문을 열고 노려보다가 쾅 닫고는 했다. 그런 화풀이에도 말없이 입을 다물어 준 친구이기도 했다. 오래 같이한 것들에겐 영혼도 스며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손잡이를 잡으니 손안에 가득하다.

‘그동안 내 곁에 있어줘서 고마워.’

참 오래도 썼다. 오래 내 곁에 있던 차를 보낼 때도 이렇게 마음이 쓸쓸했다.

‘미안해. 거칠게 다뤄서. 새 옷 입고 잘 살아야 해.’

조금 시큰해져서 안에 있는 부속들을  닦고 디스펜서도 깨끗하게 닦는다.


 조금 후면 곧 반짝이는 냉장고가 들어온다. 그 안에 반짝이는 재료들을 담고 나의 삶은 또 한동안 반짝일 것이다. 딸 아들 사위 며느리가 사 줬으니 문을 열 때마다 그들의 마음을 생각할 것이다. 냉장실에 그들의 마음을 두고, 조금은 떼어 냉동실에 놓고 언제까지나 그들의 사랑을 저장해 놓으려 한다.


   


야코프 판 휠스동크 <레몬, 오렌지, 석류가 있는 정물>1620-4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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