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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설자 Jul 07. 2022

사랑을 담은 음식은

바베트의 만찬

           

 이사크 디네센의 <바베트의 만찬>은 노에미 비야무사가 그림을 그린 독특한 책이다. 이사크는 노르웨이 태생인데 덴마크 귀족과 결혼하여 아프리카 커피농장을 운영했다. 아프리카에 살면서 그녀의 삶과 인생에서 겪은 이야기와 거기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카렌 블릭센이란 이름으로 자전 소설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 녹여내었다. 그는 글을 쓸 때 아프리카에서 가져온 물건을 책상에 놓고 썼다. 헤밍웨이가 노벨상을 받을 때, "이 자리에 이 상을 받을 사람은 이사크 디네센"이라는 말을 했다 한다. 그가 수술 후유증으로 극심한 영양실조에 시달리다 죽던 해에 나는 태어났다. 그와 나는 100년의 간극이 있지만 어쩐지 그런 연유로 더 마음이 가는 작가다.



  몇 해 전 여름방학에 우리는 북유럽투어를 했다. 노르웨이 게이랑에르 피요르를 구비구비 돌아 꼭대기에 올라 굽어보던 일이 떠올랐다. 피요르 위를 그림자같이 흘러가는 유람선 안에서 보는 풍광은 이 세상이 아니었다. 잔잔한 바람에 흔들리는 작은 풀꽃들, 완벽하게 보존된 자연. 이 세상에 있는 고요는 모두 가져와 그곳에 둥지를 튼 것 같았던 곳. 빙하가 녹아내려 계곡에 만들어진 피요르 호수를 건너면서 어딘가에서 코가 긴 트롤 요정들이 나타날 것만 같았다.


 다녀온 곳이 소설의 무대이면 그 이야기는 급속도로 흡인력을 가진다.  마치 소설의 현장에 내가 서 있는 기분이 든다. ‘피요르를 건너왔다.’는 글을 읽을 때 태곳적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는 그곳이 그려졌다.  계곡 사이 호수, 낮은 구릉에 그림 같은 집들. 그 어느 소박한 작은 집에 검회색 옷을 입은 자매가 있었던 것만 같았다.


 목사인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자매는 종교의 가르침을 실천하며 극도로 금욕적이고 경건한 삶을 살았다. 어느 날 혁명을 피해 한 프랑스 여인이 그 집에 찾아들었다. 그녀는 요리를 잘해서 사람들이 모여 기도할 때 수프를 끓이고 소박한 음식을 만들었다.

12년이 흐르고 목사의 생신 백주년이 되는 날, 동네 사람들을 위한 만찬을 그녀가 준비하기로 한다. 그녀는 바다거북을 사고 최고급 포도주를 들여왔다. 난생처음 보는 아름다운 음식을 먹으며 그들은 이야기를 했다. 미워하는 마음, 서리가 내렸던 마음들이 녹아내렸다. 사랑하지만 숨기고 살아야 했던 이들도 사랑을 찾는다. 바베트는 만찬을 위해 무슨 일을 벌인 걸까?


 그의 음식은 예술이었다. 영혼의 음식이었고 그것을 먹은 이들은 모두 본성을 찾게 된 것이다. 바베트는 만찬을 통해 온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했다. 외로운 두 자매의 오랜 연인을 만나 영혼을 나누게 되었고, 미움 속에 마음을 잦아들게 하던 사람들에게 평화가 깃들게 했다.

 

 

 얇은 책을 읽고 한동안 다른 일을 할 수 없었다.  드러내지 않으면서 모든 걸 이야기하는 글. 슬픔을, 기쁨을, 아픔을, 분노를, 불안과 두려움 같은 것들이 글 사이에 숨었다가 독자가 읽을 때 살아 나와 향기가 나고, 말을 걸어오고, 숨어 있던 마음들이 선명하게 다가오는 글. 이 책은 그런 글이다.


 책을 읽고 영화도 보았다. 실제로 아름다운 음식들이 만들어져 눈앞에 펼쳐지니 화려함이 극치였다. 프랑스 요리사로 열연한 스테판 오드랑이 입은 라거펠트가 만든 옷도 유심히 보았다.




 음식을 할 때 화가 나면 음식을 하지 말라던 어른의 말씀을 들은 적이 있다. 음식을 만드는 사람의 화가 녹아들고 짜증이 버무려진 음식이 되어 먹는 사람은 몇 배의 독을 먹게 된다는 것이다. 식구들에게 음식을 매일 해 주면서 나는 얼마나 사랑을 담아 음식을 해 주고 있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아이들이 어릴  온갖 정성을 다해 좋은 음식을 먹이려 했다. 엄마가 아이들에게   있는 최선의 사랑을 주노라 좋은 재료에 정성과 사랑을 담았다. 어느 순간 음식 만들기가 귀찮아졌다.  빠지고 그저   때우고 마는 불량한 음식이 되고 말았다. 어떻게 하면 식구들의 입을 즐겁게 할까 고민하고 만든 음식이 얼마나 될까. 요즘처럼 더운 데다 재료도 마땅치 않으면 식사 준비가 짜증부터 난다.  이렇게  먹을 시간은 자주 돌아오는지. 결국 매식을 자주 하게 된다.

언젠가 아들이 그런 말을 했다.


“집에서 해 주는 음식은 온도가 달라요.”

 

 사랑과 애정이 녹아든 음식은 맛이 다를 수밖에 없다. 소스 하나를 만들더라도 재료를 소중하게 다루고 음식을 경건하게 대한다면 소박한 음식일지언정 먹는 사람을 감동시킬 것이다.


이런 음식은 아닐지라도…진관사 근처 음식점에서


 기껏해야 한 시간 내로 뚝딱 차려내는 음식이 기막힌 정성이 있을 수 없다. 마지못해 어쩔 수 없이 만들어낸다. 그러니 음식에 영혼은 무슨. 하품이나 푸념이 들어 있을 밖에. 그 음식을 먹은 식구들도 하품을 하고 푸념을 할 수밖에.


이런 음식은 더더욱 아닐지라도… 순천 하늘루


 매일 만찬을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무엇을 만든다는 일에 기쁨을 느끼고 자신이 해 준 음식을 누군가 맛나게 먹는 상상을 한다면 음식을 만드는 일이 예술이 될 수 있다. 음식으로 한순간 치유가 되었다면 그것은 예술의 경지라고 말할 수 있기에. 음식을 만드는 분들은 모두가 예술가다.


 바베트의 만찬.

아주 잘 먹었다. 그들과 함께 바다거북 수프와 영혼의 포도주를 마시고 새로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누군가를 위한 음식을 만들 때 기쁘게 만들 일이다. 사랑을 담은 음식은 예술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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