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으로 난 길
사람들은 자기들이 길을 만든 줄 알지만
길은 순순히 사람들의 뜻을 좇지는 않는다
사람을 끌고 가다가 문득
벼랑 앞에 세워 낭패시키는가 하면
큰 물에 우정 제 허리를 동강내어
사람이 부득이 저를 버리게 만들기도 한다
사람들은 이것이 다 사람들이 만든 길이
거꾸로 사람들한테 세상사는
슬기를 가르치는 거라고 말한다
길이 사람을 밖으로 불러내어
온갖 곳 온갖 사람살이를 구경시키는 것도
세상사는 이치를 가르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그래서 길의 뜻이 거기 있는 줄로만 알지
길이 사람을 안에서 밖으로 끌고 들어가
스스로를 깊이 들여다보게 한다는 것은 모른다
길이 밖으로가 아니라 안으로 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에게만 길은 고분고분해서
꽃으로 제 몸을 수놓아 향기를 더하기도 하고
그늘을 드리워 사람들이 땀을 식히게도 한다
그것을 알고 나서야 사람들은 비로소
자기들이 길을 만들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 신경림 <길> 전문
아이들을 키우며 자주 들려준 말이 있다.
“길이 아니면 가지를 말거라”
어린것들이 ‘길’이 의미하는 깊은 뜻을 알아들을 리 없겠지만 그래도 무슨 좌우명처럼 들려주곤 했다. 길이라는 말이 살아가면서 지켜야 할 옳은 마음이나 행동이라는 걸 어렴풋이 인식하고 있을 거라고 믿고 싶었다. 자라면서 그들 앞에 다가오는 어떤 순간에, 길인가 아닌가를 판단하는 멈춤이 오기를 바랐다. 그 말은 비단 아이들을 위한 말일뿐 아니라 부모인 우리를 향한 지침이기도 했다.
길을 잃은 사람은 빨리 달린다. 그럴수록 길은 더 오리무중으로 잃을 터이지만, 어딘가로 움직이는 동안 길을 잃었다는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여긴다. 길은 점점 더 멀어진다. 그렇더라도 걸어간 길은 다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
인생길은 언제나 편도이다. 그렇기에 이미 살아온 길을 되돌아 살 수 없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알지 못하는 인생길에서 뜻하지 않은 일들을 만난다. 멈출 수도 없고 그렇다고 계속 갈 수도 없는 길 위에서 우리는 갈팡질팡 헤맨다. 정답이 없는 인생을 살아가는 시간, 스스로 선택하여 가는 길. 내가 나아갈 길을 찾는다.
부지런히 길을 찾는 여정. 그게 '길의 뜻'이다. 길은 그래서 '온갖 시련으로 안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한다. 그러면 비로소 '인생길은 고분고분해질' 것이다.
이제야 겨우 '길은 밖으로가 아니라 안으로 나 있다'는 걸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