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들의 물장구
아침부터 내리던 비가 잦아든다. 은행에 일을 보러 우산을 들고 나선다. 빗방울이 나뭇잎에 떨어질 때마다 휘청 아래로 휜다. 빗물에 젖은 새로 나온 여린 잎은 무게를 견디지 못해 늘어져 있다.
어린이집 앞을 지나는데 작은 놀이터에 아이들이 나와 놀고 있다. 나뭇잎을 건드려 물방울을 떨어트리며 깔깔거린다. 비옷을 입고 옹기종기 모여 노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길을 건너자 세 살 네 살 유아들이 길에 나와 물장난을 하고 있다. 평소에는 줄을 서서 영화 <메들라인>에 나오는 아이들처럼 짝의 손을 잡고 동네 산책을 하는데 오늘은 빗물이 고인 넓은 공터에서 아가들이 놀고 있다.
병아리들처럼 모자 달린 노란 비옷을 입고 장화를 신은 아이들이 첨벙거리며 팔짝인다. 물장구치는 모습이 귀여워 가던 걸음을 멈춘다. 장화를 신은 그 작은 발로 물 고인 길바닥 위를 팔짝팔짝 튀며 물을 튀긴다. 한 발로 튀기다가 엇갈려 튀기기도 하고 모둠발로 뛰어오르며 찰방이는 아이도 있다. 첨벙일 때마다 아가들 웃음소리가 왁자하게 반짝이며 튀어 오른다. 어떤 아가는 아예 바닥에 엎드려 파닥이고 있다.
이미 선생님들은 ‘내일 물장구 시간이 있으니 여벌 옷을 넣어 보내주세요.’라고 알렸겠지. 빗물에서 놀고 뒷수습이 얼마나 번거로우랴. 아가들에게 그런 시간을 만들어준 선생님들이 문득 고마워진다.
한참을 아이들 노는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한 여자아이가 웃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다 손을 내민다. 나도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어준다. 빗방울이 동글동글 맺힌 비옷을 입은 채 놀고 있는 아이들이 물방울이 묻은 갓 피어난 꽃 같다. 보기만 해도 입꼬리가 올라간다.
나도 저런 시기를 지나왔겠지. 그런 때가 있었지. 어린 날 비 오는 길을 걸어 흠뻑 비를 맞고 학교에서 오다가 잔디밭에 고인 물을 찰방거리며 그리스인 조르바처럼 미친 듯이 춤을 추곤 했었지. 온몸을 훑고 지나는 즐거움. 그게 자유로운 해방의 느낌이라는 걸 나중에야 알았지.
빗물에 젖은 풀잎이 싱그럽다. 아가들이 저 풀잎처럼 싱그럽게 자랄 것이다. 귀여운 아가들을 본 오늘 하루 종일 기분이 좋을 것만 같다.
종일 비가 온다고 하니 이따 오후가 되면 우산을 쓰고 걸을까. 아무도 없는 길을 우산을 쓰고 걷다 보면 우산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듣기 좋을 것이다. 아가들 웃음소리도 섞여 들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