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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설자 May 11. 2024

골목길 걷기

기웃거리며

         

 약속장소로 가는 길. 큰길을 마다하고 골목을 돈다. 차소리 오토바이 경적소리가 들리지 않아 조용하다. 일이 있어 집을 나설 때, 여유가 있으면 골목길로 돌아간다. 큰길에 나가면 갑자기 홀로 내동댕이쳐진 것 같은데 골목으로 들어서면 나를 감싸주는 포근한 손길이 느껴진다. 골목길 양쪽으로 들어선 다세대 건물들이 다정하다. 때론 질서 없이 비죽비죽 나와 있거나 낡은 건물이 손질되지 않아도 세월을 간직한 그 건물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골목길에는 정겨운 풍경이 펼쳐진다. 세탁물을 문 밖 높은 곳에 걸어놓은 세탁소, 과일을 몇 단 피라미드로 잘 쌓아 늘어놓은 작은 채소가게, 어르신들이 마실 와 모여 노는 미용실, 리폼 수선을 한다고 작은 문을 열어 놓은 가게, 세탁기 여러 대와 작은 탁자와 의자가 놓인 무인 세탁방, 샐러드를 파는 집, 부동산과 아이스크림 가게, 의자 두세 개 놓은 테이블 두 개 있는 작은 카페, 하얀 샬랄라 커튼을 내린 분홍빛 마사지 샵도 있고, 편의점, 다세대 건물 사이로 작은 가게들이 들어서 있다. 오전 열 시면 고소한 냄새를 풍기며 빵을 구워 따끈한 식빵을 내놓는 빵집 앞에서는 기어이 발길이 머물고 만다.


 골목은 각기 다른 모양을 한 집들이 모여 다양한 얼굴을 이룬다. 이전에는 다세대 건물이 벽으로 막혀 있었는데 골목을 향하여 문을 내고 다양한 가게가 들어서면서 골목이 환해졌다. 골목이 직선으로 이어지지 않은 것도 골목의 매력이다. 이리저리 구불구불 가다 보면 한참을 돌아가야 골목을 빠져나올 수 있다. 언제나 골목을 걸을 때마다 그 골목 안에 작은 책방 하나 있으면 어떨까 생각하곤 한다.


 과외나 주택 매매를 알리는 전단지가 붙은 전봇대 아래는 작은 쓰레기봉투가 몇 개 놓여 있다. 전단지를 보면 사람들에게 알리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진짜 들린다. 쓰레기 함부로 버리지 말라고 그 옆으로 지나는 내게 경고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울타리 사이로 비어져 나오려 고개를 내밀고 있는 나무에는 송송 매화가 달려 있다. 화분에 심은 꽃들도 봄을 밀어 올리고 있다. 아이들이 놀아야 할 골목에는 피아노 교습소에서 나오는 띵똥거리는 연습소리가 들려온다. 하늘을 가까이 이고 있는 골목은 정겹다.

 

  골목길엔 집들이 얽혀 있다. 나무가 없는 대신 작은 화분들이 곳곳에 있다. 그렇게나마 풀을 본다. 초가집 뒤로 바람을 막아줄 키 큰 나무들이 둘러 있고 길가에도 삼나무가 늘어서 있던 어린 시절의 길을 도시의 골목길에서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길을 걷다가 골목이 나오면 바로 꺾어 들어가고 싶어진다. 골목에는 내가 모르는 어떤 이야기가 있을 것만 같다. 골목골목 이야기가 숨어 있는 골목을 가지지 못한 나는 무엇을 하나 잃어버리고 없는 것처럼 서운한 마음이 되곤 한다.


 빨간 대문 집 아이, 파란 대문 집 아이, 기와지붕 집 아이, 같은 것을 책에서 읽을 때마다 작은 골목 안에서 만나 놀고 골목을 기대어 자라는 아이들이 골목 담장에 낙서 하고 혼나기도 하면서, 골목 안에서 고무줄 땅따먹기도 하면서 자란 어린 시절을 가진 이들이 부러워지곤 했다. 누구나 가진 연필을 혼자만 없는 아이처럼 서운해진다. (그런 골목에서 자란 사람들은 들로 산으로 돌아다니면서 자라는 어린 시절을 동경하겠지?)


 골목이라고 하기엔 좀 그런 긴 길이 있긴 했다. 그 안에 다섯 명의 또래 남자아이들이 있었고 여자는 나 혼자였다. 그들과 노느라 남자들 놀이를 했다. 딱지치고 구슬치고 숨바꼭질하고 나무에 오르고 작대기 치며 놀고 동산에서 연 날리며 뛰어다녔다. 작은 묘지를 둘러싼 산담 위에서 놀고  누군가 죽어 누워 있는 봉분은 미끄럼을 타는 놀이터가 되곤 했다.


 세월이 흘러 어른이 되어 그 길을 걸어보지만 어린 시절 목소리는 어디에도 없다. 하늘을 가리던 나무도 키가 낮아 보이고 동무들이 살던 집은 허물어져 과수원으로 변하고 말았다.   

 




아제르바이잔 바쿠의 골목들


포르투갈 아베이루의 참 예쁜 골목



‘플라노’란 뒷골목을 산책하고 구경하는 거리를 배회하는 산책자, 골목을 거닐며 풍경을 감상하는 행위라고 한다. 박진배는 이것을 두고 ‘뒷골목의 겸손한 생활을 보고 내면의 깊이를 찾는 작업’이라고 표현한다. 도시를 보는 최고의 방식이라는 거다. 발바닥을 직접 땅에 대고 걸으면서 발바닥이 닿은 흔적을 느끼면서 그곳의 바람을 마시고 골목에서 흘러나오는 음식 냄새와 소리들을 들으며 걷는 것이 진짜 여행이다. 다른 나라의 골목은 왜 그리도 예쁘게 꾸며 놓았는지. 자꾸만 뒤돌아보게 한다.

 

 골목이 나오면 들어가고 그렇게 걷다가 가능하면 천천히 기웃거리며 걷는다. 작은 어떤 물건에도 담장을 둘러친 벽에서 그 아래 자라고 있는 화분에도 시멘트 사이로 솟아 나온 풀 한 포기에도 어떤 다정한 이야기가 숨어 있을 것만 같아 걸음이 느려진다. 그들의 얼굴을 보고 가까이하여 숨소리를 듣고 싶어 천천히 걷는다. 그래야 비로소 내밀한 그곳의 풍경들이 들어온다.


 그러니까 나는 골목길을 천천히 산보하고 있다. 산보는 흩어지는 발걸음이란 뜻이다. 산책보다 더 가벼운 공기가 느껴진다. 산책은 사유하며 걷는 그림이 떠오르고 산보는 꽃향기 날리는 길을 걷는 상쾌한 기분이 든다. 그래서 산보는 봄에 어울리고 산책은 가을에 어울린다.


어디를 가든 골목길 걷는 일이 참 좋다. 아마 골목마다 숨은 그 틈을 좋아하는 것인지도.


 조용한 골목에 공기를 밀어내고 한 할머니가 보행기에 기역자로 꺾인 허리를 기대고 천천히 걸어오고 있다. 곧 허리가 꺾일 듯 위태로워 보인다. 할머니가 지나실 때까지 서서 바라본다.


 골목을 걷고 있으면 생각이 많아진다. 보이는 것들은 또 다른 상념을 일으키고 만다.




오비두스의 골목, 저 끝을 돌면 다시 예쁜 골목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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