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설자 Jun 19. 2024

짧은 시, 긴 이야기

바쇼의 하이쿠를 읽다가

         

 일본 작가의 책을 즐겨 읽는 편은 아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이나 아사다 지로의 철도원 정도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우리나라에 선풍을 일으켰을 때도 관심이 없었다. 일본 작가가 싫다기보다 일본어 이름이나 지명이 다가오지 않아서였다. 아버지가 식민지 신민으로 일본어를 배울 적 이야기를 할 때마다 일본 순사 선생에게 감시받았다는 서늘함이 내 안에 고여 있었는지도 모른다. 동네 사람들이 일본에 사는 친적들에게 보내는 소식을 아버지께 부탁하여 편지를 쓸 때마다 아버지가 쓰는 일본어가 무척 신기하게 보이기는 했다. 아버지는 왜 나에게 일본어를 가르쳐주지 않았던 걸까. 식민교육이라고 생각하셨던 걸까.


배우려고 했다면 기회는 있었다. 대학시절 지도교수가 일본어를 배우면 좋다고 우리에게 가르치려 했지만 교수님이 가르쳐준 가타카나와 히라가나를 쓰고 외우는 척만 하고 귓등으로 들었다. 그때 배워두었으면 하이쿠를 읽을 수 있을지도.


어느 날, 아는 작가가 들려주는 일본 작가들 이야기에 물들어 어느새 나도 일본 작가들의 책을 찾아 읽게 되었다. 마쓰모토 세이쵸의 <푸른 묘점>과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 소설도 읽게 되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전집과 <작가의 마감> 같은 작가 시리즈를 읽게 되었고 최근에는 마스다 미리의 에세이를 전작주의자처럼 읽게 되면서 어느덧 일본 작가들 이름이 입에 붙기 시작했다.


이렇듯 나는 주변에 어떤 사람과 어울리면서 금세 물이 들고 그 성향에 스며들고 만다. 누군가 우러러 보이면 그가 하는 것을 닮고 싶은 유아기적 취향이 내게 남아 있다. 그가 좋아하는 책을 따라 읽고 그가 말하는 것들을 따라 하며 앞 뒤 가리지 않고 무의식적으로 닮아간다. 좋아하는 사람의 글씨도 닮으려 비슷하게 쓰고 그의 말투조차 닮아간다. 한때 금남 언니가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이 너무나 근사해서 따라 하곤 했다. 글쓰기도 그렇다. 레이먼드 카버를 읽으면 그를 닮고 싶고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를 읽으면 또 그쪽으로 기울다가 김달님을 읽으면 그를 향하게 된다.


이렇게 닮으려는 성향은 양면적이다. 어떤 상황이든 적응하여 배우고, 쉽게 사귀며, 낯선 환경에도 주눅 들지 않고 활발하게 생활한다. 반면 잘잘못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고 분위기에 휩쓸려 물들어버리기도 한다. 남의 이야기에 혹하는 성향은 은사시 잎들이 뒤집히듯 팔랑거린다. 그런 성향임에도 성장기에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있어 엇나가지 않을 수 있었다.

 

바쇼 시 전집도 그렇게 읽게 된 책이다.  바쇼의 1100편의 하이쿠 중에서 350편을 류시화가 선정하여 묶은 책이다. 하이쿠는 5.7.5의 열일곱 자 안에 언어와 풍경이 만나는 짧지만 깊은 성찰이 들어 있는 글이다. 마쓰오 바쇼는 하이쿠의 성인으로 불린다. 언어유희에 가까운 기존의 하이쿠를 바쇼에 이르러 예술의 위치로 끌어올렸다고 평가받는다. 30대 중반에 이미 이름을 날리고 하이쿠 문하생들을 거느렸으나 에도 변두리 오두막에서 돌연 은둔을 시작한다. 그러다 방랑길에 올랐고 결국 길 위에서 세상을 마감한다.  


“대상과 하나가 될 때 시는 저절로 흘러나온다. 그 대상을 깊이 들여다보고, 그 안에 감추어져 희미하게 빛나고 있는 것을 발견할 때 그 일이 일어난다... 대상과 분리되어 있다면, 그때 그대의 시는 진정한 시가 아니라 단지 주관적인 위조풍에 지나지 않는다.”


바쇼는 파초라는 의미. 바람에 잘 찢기는 넓은 잎을 가진 파초가 자신을 닮았다고 여겨 지은 이름이다.

      

파초에는 태풍 불고

대야에 빗물 소리

듣는 밤이여   

  

파초암, 즉 ‘바쇼안’이라 부르던 파초가 있는 오두막에서 지은 하이쿠다. 바람에 찢겨 갈래갈래 늘어진 잎이 누렇게 말라 말총 같던 파초 잎을 기억한다. 외할머니 올레에도 있던 파초. 짧은 시이지만 긴 이야기를 생각하게 한다. 좋은 책은 언제나 마음을 들뜨게 한다.  


하이쿠를 읽어 보니 한 편이 열일곱자에 지나지 않으니 아무 데나 펼쳐도 읽는데 부담 없는 책이다. 류시화 시인의 해설이 좋다. 어려운 파울 첼란을 읽을 때보다 즐겁다. 하이쿠를 읽을 때 나기철의 시가 떠오른다. 가지를 다 쳐버리고 줄기만 남은 시. 한 면에 실린 두 편의 하이쿠를 읽고 생각을 메모해 놓는다. 때로 그림도 그려놓는다.

      

꽃 아래서도

열 수 없어 슬프다

시의 주머니   

  

세상 모든 꽃은 시심을 일으키지만 시의 주머니는 아무 때나 흘러나와 열리지 않는다. 작가의 치열함이 느껴진다.  


내리는 소리

귀도 시큼해지는

매실 장맛비    

 

매실이 열려 익어가는데 내리는 비에 귀도 시큼해진다는 표현이 마음에 닿는다. 하이쿠를 읽는 순간 빗소리가 들리면서 매실에 떨어져 빗방울이 방울방울 맺히는 모습이 보인다. 새콤달콤한 매실 맛이 입에 남아 벌써 침이 고인다. 대상과 나를 온전히 일치한 듯.

    

너무 울어

텅 비어 버렸는가

매미 허물은   

  

이 시를 읽자 생각이 많아진다.

2학기가 되어 개학하면 여름의 끝물이 운동장에 남아 있었다. 1학년 아이들이 나무 아래에서 놀다가 매미 허물을 조심조심 뜯어 교실로 뛰어왔다. 작은 손바닥에 올려놓은 매미허물을 내게 내밀며 매미 다섯 마리 잡았다고 자랑하느라 볼이 발갛게 온통 흥분으로 가득했다. 진짜 매미가 살아 돌아올 것처럼 옷을 벗고 가버린 매미를 생각하는 마음이 얼굴에 번지곤 했다.


“너무 울어 비었네... ”

정말 탁월한 비유다. 노래로 꽉 차 있던 매미 몸은 노래가 다 날아가고. 음표는 날아가고 오선지에 매미 옷이 걸려 있는지. 매미가 울던 때 우리는 만나 한강 길을 걸었는데. 걷다가 커다란 성당 나무 그늘 아래서 쉬면서 매미 노랫소리를 들었는데... 만나면 쌓인 이야기를 풀어놓느라 언제나 시간이 짧았다. 선배 언니는 지금 하늘에서 매미 노래를 듣고 있겠지.


 

언니는 코로나가 번지던 11월에 허리디스크 신경 성형술을 받았다. 남편분이 디스크 수술을 먼저 했고 그게 많이 나아지니 언니가 아프기 시작했다. 언젠가 전화를 했을 때 언니 목소리는 복잡했다.


“이제 내가 안 좋네. 누워만 있으니까. 여자들이 해야 할 일이 있잖아. 집안이 엉망이고. 디스크 시술을 하면 낳는 것은 아닌데 통증 때문에. 완치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 마음이 걸리긴 하지만 너무 아프니까. 통증이라도 없게…. 의사는 강하게 권하지는 않지만 너무 아프니까. 일단 예약은 했어.”


언니는 말끝을 흐렸다. 전화 속 목소리에서도 통증이 느껴질 정도로 아픈 기운이 건너왔다. 낫는 것은 아니지만, 너무 아프니까, 의사가 주저하지만, 그런 말들이 이상하게 마음에 남은 것은 예고였던 걸까.


언니와 같은 학교에 근무할 때 동학년을 한 적이 있다. 교실이 언제나 정갈했다. 창가에 작은 화분들을 옹기종기 모여놓고 아름답게 꾸며 놓곤했다. 작은 것들을 장소에 따라 옮겨 멋스럽게 배치했다. 수업이 끝나면 언니 교실에 가서 수업을 의논하면서 재주가 많은 언니에게 배우곤 했다. 두 살 위 언니는 늘 삶의 지혜를 얹어주었다. 아이들에게 다친 마음에 신소리를 하면 같이 응대해 주며 엄청난 공감으로 응원해 주곤 했다.


언니와 나는 같은 해에 명퇴를 했다. 다른 학교에 있을 때는 만나기 힘들었지만 명퇴하고서는 자주 만날 수 있었다.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를 읽고 너무 좋아서 언니에게 선물로 보냈더니 활짝 웃는 이모티콘과 함께 그림이 정겨워 힐링하고 있다는 말을 보내왔다. 한동안 교육에 관한 책을 공저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여 동네 카페에서 일주일에 한 번 만나 원고를 쓰고 다듬곤 했다.


 그리고 우리는 격리의 시절을 맞았다. 전화를 해도 연락이 되지 않았다. 그렇게 해를 넘겼다.

“언니, 어디 아픈 거예요? 전화도 안 되고.....”     

그날 저녁 장문의 톡이 왔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큰아들입니다.

경황이 없어 뒤늦게 소식드립니다.

어머니가 지금 병원에 입원해 계십니다....


이게 뭔 소린가. 허리디스크 신경성형술을 받으시고 깨어나고 30분 정도 뒤에 갑자기 심정지가 왔다. 급하게 소생술을 하고 맥박은 돌아왔는데, 뇌 쪽으로 저혈류가 발생했는지 저산소성 뇌손상을 일부 입었고 중환자실에 입원 중이라는 내용이 이어졌다. 면회도 할 수 없었다.


봄이 다시 왔다.

그리고 언니는 가셨다.

3개월 동안 뇌경련과 싸우다가 가셨다. 너무나 젊은 나이에.


영안실 입구에 작은 언니 사진이 붙어 있었다. 그 아래 고인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 '故 이나경'. 이름을 보는 순간 눈물이 콱 솟았다. 붉은색 체크무늬 남방을 입은 언니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지나치게 행복한 얼굴이 영정 사진이 되면 남은 사람들에게는 더 큰 아픔이 되기에 해마다 영정사진을 찍는다는 지인의 말이 떠올랐다. 언니는 너무도 환하게 웃고 있었다.


49제 날. 언니를 이승에서 완전히 보내드리는 날. 어딘가에 언니 영혼은 이 지상을 떠나지 못해 가족들의 곁에서 맴돌고 있을 것이다. 차례로 절을 하고 마지막으로 가는 언니에게 술을 올렸다. 언니 잘 가요. 그곳에서는 아프지 말아요.


서늘한 봉안당에는 언니 사진과 공무원증 같은 것들이 놓여 있었다. 젊은 언니와 가족이 학교 운동회 때 찍은 사진, 아들이 쓴 편지, 아들들과 찍은 가족사진과 언니가 초등학교 입학하며 엄마와 찍은 사진 할아버지 사진이 유골함 옆에 세워 있었다.




문득문득 다정했던 언니가 떠오를 때가 있다. 작은 체구에서 쏟아지는 말을 들으며 우리 함께 웃던 시간들이 생각난다. 한 번은 슈퍼에 두부를 사러 가다가 양산을 들고 오는 한 여인을 보고 깜짝 놀랐다. 쇼트커트의 머리에 가느다란 몸이 완전히 언니였다. 가슴이 덜컹하고 가까이 보니 아니었다. 당연히 아니지. 언니와 너무도 흡사해서 살아 돌아온 것만 같았다. 뛰어가 "언니!" 하고 부를 뻔했다.


     

여름 방학 동안 아이를 뛰게 한 매미 노랫소리

운동장 나무에 붙은 매미 옷 다섯 개

손 위에 올려놓고

내게 가져와 얼굴 앞에 내민다

옷 벗어놓고 간 매미가 춥지나 않을지


그 여름 성당 마당 덮는 느티나무 그늘에서

매미 소리 아래 같이 앉아  

파란 하늘 올려다보던 언니는

하늘에서 매미소리 듣고 있겠지


'너무 울어 비어버린 매미 옷'

음표는 날아가고 가지에 매달린 오선지에

언니가 주고 간 바스러진 허물이 걸려 있다.



故 이나경 선배님의 명복을 빕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담쟁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