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편지
편지를 모아 놓은 파일을 정리하다가 한 장씩 읽어본다.
제주에서 근무하다 서울로 왔을 때 존경하는 선배의 편지도 있고 제자들 편지도 있다.
정리는 물 건너가고 주저앉아 파일 안에 담긴 편지를 읽는다.
맨 뒤쪽에 누런 종이.
오래전 아버지가 보내주신 고풍스런 편지다.
아이들은 어렸고 집을 장만하느라 어려운 시절이었다.
치기 어린 생각으로 아들들만 챙긴다고 엄마에게 전화해서 불평을 했었나.
며칠 후, 아버지가 내게 편지를 보내오셨다.
늘 오른쪽 어깨가 올라가는 글씨.
긴 편지를 읽다가 베란다로 들고 가 울면서 읽었다.
누렇게 변한 그때 흘린 눈물자국이 그날로 돌아가게 한다.
그때 아버지는 갓 육십을 넘기셨고 나는 삼십 대 초반이었다.
아버지는 지금 이렇게 힘찬 필체로 쓰지 못하신다.
농협에서 준 가계부에
'흐림 비, 북동풍' 같은 날씨와 먹은 약 이름,
시계 약을 갈아 넣었다거나,
손톱을 깎았다거나,
자식들 문안 전화 왔다거나
하루 한 일을 가느다란 실 같은 글씨로 쓰실 뿐이다.
그렇더라도 오래 오래 쓰시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