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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설자 Nov 20. 2018

부모의 마음 1

아버지가 보내신 귤

 며칠 전, 아버지가 귤을 보내오셨어요. 늘 그렇듯  ‘앞으로 나란히’ 줄을 세워 빽빽하게 담으셨어요. 한 개라도 더 주고 싶으셨겠죠. 조금 꺼내 먹고 다른 곳에 옮겨야지 해놓곤, 이런저런 세상사에 허둥대다 베란다 한 쪽에 둔 귤 상자는 까맣게 잊고 있었네요.  

    

 오늘 아침 상자를 정리하려고 보았더니 아래쪽 한 칸은 벌써 모두 썩어가고 있었지 뭐예요. 귤은 한 개만 터져도 주변을 다 적셔 썩게 하거든요. 무른 것을 도려내고 괜찮은 부분만 떼어내도 큰 그릇에 넘쳤어요. 미리 상자에서 꺼내어 놓지 못한 것을 자책하면서 주스로 만들어 식구들과 먹었어요. 더러는 잼도 만들고요. 그렇게라도 해야 할 것 같았어요.  

   

 언젠가 콩잎이 먹고 싶어 아버지께 전화했더니 한 상자를 따서 보내셨어요. 어서 씻어서 삼겹살에 싸 먹을 생각에 상자를 풀면서 군침이 돌았지요. 고소한 삼겹살에 비릿한 콩잎이 정말 잘 어울리거든요. 그런데 상자를 열어보니 콩잎은 솥에 푹 찐 것처럼 뭉그러져 단 한 장도 성한 것이 없었어요. 켜켜이 많이 넣은 데다 한여름 달아오른 날씨에 여린 이파리들이 견디질 못했던 거예요. 따가운 햇살 맞으며 연한 것만 고르느라 무성한 콩잎을 헤쳤을 아버지 모습만 가득했어요. 차마 그 말씀은 못 드리고 맛있게 잘 먹었다고 했던 일이 생각나네요.

    

 언제나 그랬어요. 뭘 보내셔도 상자 옆구리가 불룩하니 금방 터질듯 꽉 차게 담으셨어요. 그것이 부모의 마음이겠지요. 이 아침, 썩은 것을 버리며 죄지은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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