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궁화호를 타고 찰랑찰랑 홍성, 장항, 익산
몇 년 전부터 뚜벅이를 시작했다.
꽃피는 봄이 되자 느린 여행을 하기로 한다. 매번 가까운 강가 산책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배낭 하나 달랑 메고 차없이 다니기에 2박 3일이나 3박 4일 정도가 좋다. 가는 곳도 한 두 곳이 좋다.
그 첫 여정은 홍성을 거쳐 장항 익산으로 정한다. 무궁화호를 타고 철거덕철거덕 흔들리며 간다. 모르는 동네에 내려 느리게 걷는다. 낯선 곳과 친해지는 제일 좋은 방법이 그곳을 걷는 일이다. 걷다 보면 어지러운 생각이 한 줄로 세워지고 맑은 생각이 솟아 나온다. 강이나 호수를 만나면 마음이 평온해진다. 물멍을 하며 나를 비워 본다. 걸으며 생각한 것만 가치가 있다는 니체의 말을 실천하는 중이다.
“낯선 도시와 친해지는 데 걷기보다 더 좋은 방식은 없다... 여행의 본질은 자기에게서 떠나 되도록 자기를 멀리 벗어남에 있다. 자기에게서 해방되어 비로소 자기를 만나는 것이 여행의 보람이다. 가장 가까운 나를 만나려고 가장 먼 곳으로 떠난다.” - 장석주 <가만히 혼자 웃고 싶은 오후>
딱 맞는 말이다. 지금 나는 '해방된 자기를 만나러' 가고 있다.
계획은 거창하지만 있으나마나. 그야말로 발길 닿는 대로 걷는다. 샛길이 나오면 바로 한눈을 판다. 그런 일은 뜻밖의 기쁨을 데려온다. 길섶의 꽃다지가 살랑이고 민들레 홀씨가 날리는 호젓한 길이 선물처럼 펼쳐진다. 뻐꾸기가 먼 데서 부르고 찔레꽃 향기가 날아온다. 오솔길을 지나면 이백 년이 넘은 품절남 느티나무가 반기고 벽화가 그려진 다정한 골목이 발길을 멈추게 한다. 완두콩 밭을 매는 아저씨도 만나고 오이와 애호박을 소쿠리에 담아 이른 여름을 파는 아주머니도 만난다.
아직은 쌀쌀한 3월. 급식 시간을 기다리며 복도를 기웃거리는 아이들처럼 서둘러 개나리와 목련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창밖을 보는 그도 나도 살짝 들뜬 마음.
홍주라 불렸던 홍성의 여행은 역사길 걷기로 시작한다. 시민의 모금으로 세워진 김좌진 장군 동상 앞에서 청산리 전투 이야기를 읽고 월계천을 건너 의병들을 모신 홍주 의총으로 간다. 잔디를 밟는 바삭이는 소리만 들린다. 매봉재 가는 길로 올라서니 언덕에 버려진 집 한 채. 허물어진 마당에는 개나리만 활짝 피어 처연하다. 고즈넉한 들길을 지나 진한 솔향기를 맡으며 매봉재를 넘는다. 곳곳에 수선화가 바람에 흔들리고 어디선가 매화 향도 난다. 벚꽃은 아직 몽우리만 있다.
어린 강아지가 우리를 쫓아온다.
‘너도 뚜벅이 가니?’
시금치를 막 캐서 수레에 싣고 오는 어르신도 지난다. 시금치가 곧 일어날 듯 싱싱하다. 골목 벽화도 정겹다. 수선화가 여기저기에서 바람에 흔들린다.
한용운 독립 시비 앞에 서서 소리 내어 읽는다.
“오등은 자에 아 조선이 독립국임을 선언하노라. 이에 세계만방에 ~”
“고등학생 때는 독립선언서를 다 외웠는데….”
홍성 시장 안에 가서 푸짐한 저녁을 먹고 쉰다. 하얀 이불에 앉아 나는 글을 쓰고 그는 가져온 아이패드로 만화를 본다. 그렇게 홍성이 밤이 깊어간다.
향미미션도 하고
다음날, 장항으로 가는 길.
멀리서 분홍빛이 안개처럼 어른거린다. 이삼일 후면 꽃나라가 될 것이다. 장항역 바로 앞이 국립생태원. ‘향미 미션’에 참가하려면 그곳 관람권이 있어야 할인을 받을 수 있다.
습지에 만든 생태원 호수 주변으로 난 ‘바람길’, ‘생태길’. 새와 나무와 바람만 있는 꽃 핀 길을 느릿느릿 걷는다. 이렇게 훌륭한 습지가 있다니. 근처에 있으면 매일 와도 좋을듯하다. 바삭거리는 흙길을 밟으며 걷는 우리 등을 봄 햇살이 다독여준다. 바람길 언덕에 월든 호숫가에 살았던 소로의 오두막이 있다. 그야말로 최소한의 것만 가지고 살아간 삶. 그렇게 살 수 있을까.
향미 미션을 예약했기에 두빛나래 카페에 가야 한다. 한 시간 이십 분 동안 길을 걸어가며 보니 찻길이 직선으로 잘 정비된 것이 눈에 띈다. 일제가 주둔할 때 산을 깎아 갯벌을 메워 도시를 만들었고 제련소에서 금과 동을 제련하면서 수송 목적으로 만든 도로를 지금도 사용하고 있다.
향미 미션은 지역을 알리는 재미있는 프로그램이다. 두빛나래 젊은 주인장이 향미 미션을 기획하고 총괄한다. 아로마에센스에 글리세린을 넣어 소독제 만드는 체험을 하고 탐험지도를 들고 맛나로를 지나 도시탐사장항화물역까지 가는 길에 장항의 역사를 들으며 금궤 찾기 탐험을 한다. 금궤는 장난감 주화로 기념품과 교환한다.
예전에 쓰던 화물역사는 기념관과 카페로 잘 꾸며놓았다. 제련소는 광양에 합병되고 제련하면서 나오는 아황산가스나 유해 가스를 최대한 고공으로 보내려고 세운 엄청나게 높은 굴뚝만 바위산에 외롭다. 한때 10만이 넘는 인구가 살 정도로 장항은 흥청거렸다. 제련소가 없어지면서 많은 사람들도 함께 빠져나가고 이제는 조용한 도시가 되었다고 해설사분은 아쉬워한다.
가자미 비슷한 납작한 박대를 연탄불에 굽는 체험도 한다. 살을 발라 먹으니 짭조름하다. 철길에 빼곡한 장미가 피는 오뉴월이면 더 예쁜 동네가 될 것이다. 구도심 한 바퀴를 돌고 카페로 왔더니 달달한 음료를 준다.
달고나 만들기. 어린 시절 오빠 옆에서 갈색으로 변하는 설탕을 보며 침 고이던 생각. 설탕이 끓기 시작하면 가성소다를 조금 놓고 젓는다. 거품이 일면 깔아놓은 쟁반에 부어 굳기 전에 모양 틀로 누른다. 스페이드 모양이 깨지고 말았지만 어린아이들처럼 흥분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이렇게 다양한 아이디어로 장항을 알리고 많은 시민들이 도시를 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니 장항의 앞날은 밝을 것이다.
고마운 아저씨
장항 삼림욕장 솔밭에는 맥문동이 드넓다. 여름철 맥문동이 꽃피면 보랏빛으로 덮인 소나무 숲이 아름다울 것이다. 스카이워크에서 노을까지 보려 했지만 추워서 돌아 나온다. 한적한 길을 한 시간 정도 걷고 막 마을로 들어서 길 옆에서 차를 닦고 계신 아저씨.
“죄송한데요, 여기서 터미널이 어느 방향이죠?”
“터미널은 한창 가야 해요. 어디 가시려고요?”
“익산이요.”
“익산은 이제 차가 떨어졌고요. 역전 가시는 게 좋을걸요.”
“아, 그렇군요. 고맙습니다.”
막 돌아서려는데 “제가 모셔다 드릴게요.” 한다.
그는 제지회사에 다닌다면서 “아침에 어부인을 농공단지에 모셔가고 다섯 시 퇴근하면 모셔오지요.” 사람 좋은 얼굴로 말한다. 우리처럼 이렇게 걸어가는 사람이 있으면 데려다주기도 한단다. 차비를 드리려는데 하도 만류해서 서천 상품권 두 장 있길래 드린다. 또 이렇게 길 위에서 고마운 인연을 만난다.
복 받으실 거예요.
백여사 백반집
익산까지는 한 시간. 객차에는 사람이 별로 없다. 단 한 사람이 이용하더라도 실핏줄 같은 이런 열차가 사라지면 안 된다. 어둠이 내리는 익산역에는 고요한 불빛이 흐른다. 여덟 시 밖에 안 되었는데도 한밤중 같다. 늦은 저녁을 먹기 위해 동네 밥집을 찾아 ‘백여사 백반집’으로. 종업원이 나가면서 다 끝났다고 한다. 실망한 우리는 망연히 서 있는데 안에서 어르신이 손짓한다. 젊은 종업원은 문을 나서며 주방을 향해 소리 지른다.
“이모! 두 상이요!”
우리 두 사람만 있는 식당. 어르신이 부지런히 반찬을 나르는데 눈이 휘둥그레진다. 식탁 빈자리가 없다. 된장찌개에 게장과 조기 네 마리에 반찬이 열 가지도 넘는다. 누룽지까지 준다. 찌개와 반찬도 삭 비우고 숭늉까지 비우니 일어날 수 없다.
우리 두 사람만 있는 식당. 어르신이 부지런히 반찬을 나르는데 눈이 휘둥그레진다. 식탁 빈자리가 없다. 된장찌개에 게장과 조기 네 마리에 반찬이 열 가지도 넘는다. 누룽지까지 준다. 찌개와 반찬도 삭 비우고 숭늉까지 비우니 일어날 수 없다.
미륵이 사는 곳
다음 날, 그는 벌써 일어나 커피를 마신다.
우리는 익산 문화의 거리를 한 바퀴 돌아본다. 아직도 운영 중인 양복점도 있고 백화점이었던 건물도 있다. 수탈한 일제의 흔적을 이제는 신기한 구경거리가 되다니 역사의 아이러니다.
미륵사지로 가는 버스는 한 시간을 가야 한다. 나이 든 손님들이 많고 학생도 한두 명 있다. 한 중년의 아주머니가 탄다.
“얼마예요?”
“1600원”
“100원이 모자라네... 1500원만 받아요.”
미안하다는 부탁이 아니라 이미 타놓고 당당하게 요구한다. 기사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당연히 타는 아주머니나 으레 태워주는 기사나 모두 정다운 풍경이다. 미륵이 사는 곳이라 그런가.
시내를 지나는 길에 ‘순식간에 삭 비어’라는 간판이 보인다. 맥줏집 간판으로 딱 어울린다. 라면 먹을까? 편의점에 들어갔더니 아주머니가 해설사처럼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선물이라면서 물도 한 병 주신다. 미륵이 사는 곳은 역시 다르다.
미륵사지는 세계문화유산 유적이니 단장을 잘해놓았다. 따스한 봄 햇살을 맞으며 미륵사지 한 바퀴. 평야 같은 절터에 서니 가슴이 확 터진다. 7세기 무왕의 안녕을 바라며 지었다는 백제의 유물. 1383년이나 된 절. 10만 평의 이 땅에 절이 들어서 있었다는 것을 감히 상상할 수 없다. 미륵산 쪽으로 점점 높아지는 지세에 지은 미륵의 터전. 광활한 터에 멀리 보이는 두 개의 탑. 양쪽에 버드나무가 늘어진 연못에는 탑이 비춘다. 당간지주가 90미터 간격으로 나란히 선 기품 있는 기둥. 연등이 달리면 이곳이 극락이리라. 미륵사지 9층탑이 벼락을 맞아 무너지자 조선총독부가 무너진 자리에 시멘트로 발라놓아 부식이 심했는데 20년의 공사 끝에 거의 복원해 놓은 상태다. 치과 기공사들이 쓰는 재료로 세척해서 국사책에서 본 거무스름한 탑 사진은 이제 없고 새것처럼 하얀 탑으로 돌아왔다.
가까이 갈수록 그 규모가 거대해진다. 수학여행으로 왔을 때는 어린이들 건사하느라 제대로 느끼지 못했는데 이제야 제대로 눈에 들어온다. 한 농부가 동탑의 흔적을 발견했고, 그 자리에 서탑을 근거로 같은 탑을 재현해 놓은 동탑이 있다. 시멘트 부분을 원래 모습대로 복원해 놓은 서탑은 백제 시대 모습이 남아 있다. 두 탑 가운데 거대한 목탑이 있었다는 사실도 발견하게 되어 발굴팀이 가드레일을 치고 발굴하고 있다. 두 손을 모은 석인상이 1400년의 세월을 견디고 있다.
초등학생 십여 명이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길래 우리도 옆에 서서 듣는다.
“이게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석탑이에요. 이제 나무 탑이 발굴되어 복원되면 저 미륵산의 산세와 똑같은 형태의 탑이 만들어질 거예요.”
“일제가 무너뜨렸대요”
누군가 끼어든다. 5, 6학년이라는데. 이렇게 견학 와서 실물을 보면서 공부하고 참 좋은 동네에 산다. 우리는 역사책 사진으로만 배웠는데... 몇 어린이는 집중해서 들었지만 대부분이 어린이들이 비비 꼬고 딴청을 피운다. 어서 끝나고 잔디밭에서 뛰고 싶겠지. 이렇게 잘 관리된 절터에서 뛰는 아이들을 미륵도 흐뭇하게 볼 것이다. 그러실 거죠? 미륵님.
딸기여사를 만나고
미륵사지 둘레길을 걷고 금마 호수를 돌아 익산역으로 갈 예정이다. 연초록 나무들이 산을 물들인 미륵의 터전. 고즈넉한 길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말없이 걷는다. ‘아름다운 구룡마을’이라는 표지판을 따라가니 커다란 느티나무가 나온다. 수령이 3백 년이 넘는 보호수다. 나무 아래 평상과 빗자루도 하나 세워져 있다. 동네 어른들이 마실 오면 쓸고 앉고 하겠지.
대나무숲이 방풍림으로 둘러싸여 아늑하다.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나무 아래 널따란 평상에 누워 하늘을 올려다본다. 나뭇가지 사이로 하늘이 쏟아진다. 아직은 잎이 많이 돋지 않은 가지가 예술적으로 얽힌 모습. 이런 하늘을 만나려 온 거다.
샛길 입구에 ‘대나무숲길’이라는 작은 표지판이 있다. 이런 세상에! 여기 있었네! 방금 대나무 숲길을 찾고 있었는데. 역시 샛길은 우연한 발견의 기쁨을 준다. 참 아름다운 길. 대나무 숲길은 굉장히 빽빽하고 깊어 담양 대숲길과는 느낌이 다르다.
대숲은 5만 평방미터나 되는 사유지다. 주인은 여기다 왜 대숲을 만들었을까. 남몰래 이곳에 와서 풀어놓을 엄청난 비밀을 가지고 있던 걸까. 때때로 여기 와서 어마어마한 비밀을 털어놓고 가는 걸까. 대나무 뿌리가 푸른 정맥처럼 구불구불 나와 있어 뱀들이 엉킨 것 같다. 밟고 지나는데 살짝 소름이 돋는다.
미륵사지 뒷산을 지나 대숲을 걷고 한참을 내려가니 딸기농장이 있다. 문득, 다른 나라 여행길에서 2유로에 한 봉지 가득 담아준 체리를 먹으며 걷던 생각에 대뜸 농장으로 들어선다.
“안녕하세요? 딸기 조금 살 수 있어요?”
장작불이 이글거리는 커다란 가마솥에 무언가를 끓이며 주걱으로 젓다가 어르신이 고개를 든다. 김이 펑펑 나는 가마솥에는 진분홍빛 거품이 흘러나온다.
“어디서 왔능가?”
“서울이요.”
“땅 보러 오셨어요? 저분이 땅부자세요.”
옆에 서 있던 젊은 여인이 내게 소곤거린다.
“아고, 들어와, 이거 먹고 가. 서울서 왔다자녀?”
어르신은 하우스 안으로 들어가더니 오라고 손짓을 하며 양푼에 담긴 딸기를 내놓으신다. 시루떡도 꺼내 가위로 잘라 담고 대추차도 따라 준다. 딸기를 채 삼키기도 전에 떡 한 조각을 물고 우물거린다.
“뭐 끓이셔요?”
“잼 만드는 거여. 이렇게 끓이다가 설탕 놓고 저스면 되. 내가 이렇게 끓여. 딸기만 갖고 헝게. 딴 거 안 놓고”
“얼마나 끓여야 해요?”
“저렇게 여서 일곱 시간 끓여. 코리나 때문에 안 나가더니 요새 또 나가대.”
명함을 달라고 하였더니 가지러 안으로 들어가신다.
“그리어, 인연이 따로 없는 거여. 이렇게 보다 보믄 인연이 되는 것이제.”
장화를 벗어던지고는 이리 와 봐, 하면서 커다란 냉장고 문을 연다. 빨간 통들이 탑처럼 쌓여 있다.
가까이서 어르신 얼굴을 보니 속눈썹이 길다. 입안에 물었던 떡을 꿀꺽 삼킨다.
“어머나, 여사님 눈썹도 하셨네. 멋쟁이시네요오! 딸기같이 이쁘시네.”
얼마 전 생일에 샵을 하는 딸이 해 줬다며 웃는데 기다란 속눈썹이 반달로 걸린다. 어르신은 동네 아낙에게 소리친다.
“야, 니넨 몰랐지? 눈썹 한 거어! 봐라, 댕겨도 헛댕겼다. 서울 널븐디서 옹께 알아불지 않냐?”
“아, 문신도 했으면서 뭔 눈썹까지 붙이고 야단이여어?”
동네 아낙이 흘긴다. 그러거나 말거나 어르신은 상추 뜯는 아낙에게 소리친다.
“거시기헌 거 말고 존 놈 가꼬 가.”
남편이 주걱을 받아 부글부글 끓는 잼을 휘젓는다.
상추 아낙이 가고 우리만 남는다. 차 없이 다닌다고 했더니 갸우뚱하신다.
“걸어서 댕기면 다리가 을매나 아퍼. 뭐덜라고 그 고생을 혀? 원 참.”
그러게요. 뭐덜라고 그 고생일까요. 동네가 예쁘다고 했더니, 자고 가라는 농에 우리는 발을 떼지 못한다.
“나~가 열여덟에 시집와서….”
아직도 팔팔한 칠십육 세 딸기 여사의 인생 고갯길이 구만리다. 아이들 넷을 키우고 농장을 일구고…. 30년 전 돌아가신 아저씨 이별 고개를 넘을 때는 얼굴을 숙이고 목소리도 힘이 빠진다. 구만리 사연을 들으며 우리도 천 리쯤은 그와 함께 간다. 아니, 만 리쯤 되려나. 봉지에 담아준 딸기를 들고 걸으며 자꾸 뒤돌아본다.
조용한 길을 한참 걸었지만 호수가 나오지 않는다. 지도에는 가까운데? 반대쪽으로 가야 할걸 잘못 간 거다. 터벅터벅 시골길을 걷다가 허기를 채우기로 한다. 인상 좋은 아주머니가 맞아준다. 깨끗한 식당에는 우리뿐이다.
“아무거나 주문하세요. 달라는 대로 드릴게.”
“갈비탕 하고 청국장 주세요.”
보건소에 갈 시간이지만 배고픈 우리를 위해 마음 좋게 음식을 내주신다. 미륵이 사는 동네잖아요.
딸기와 떡을 먹은 배는 어디로 가고. 그는 와작와작 갈비탕을 먹고 나는 후룩후룩 청국장을 먹는다.
아주머니가 우리 식탁 옆으로 오신다.
“어디서 왔어요?”
“서울이요.”
“한동안 안 오더니 요새 좀 오네요. 어제도 서울손님 오시고... 저도 서울 살았어요.”
"나는 음성이 고향이야."
방금 딸기 여사님 한 인생을 보따리에 싸고 왔는데 여기서 또 다른 인생 보따리를 만난다.
연애 반 소개 반 알게 된 남자를 만나 시집와서 울기도 많이 울었지. 울다가 신랑이 올 때가 되면 안 운 척하고 기다리곤 했어. 큰집 아이들 형제가 있었어. 아빠는 술에 절어 살고 엄마는 집에 들어오지 않아 아이들을 돌보지 않았어. 그 아이들이 언제나 우리 집에 와서 밥을 먹었어. 시부모 모시고 조카들까지 거둬 먹이느라 80킬로 한 가마 쌀로 한 달을 버티질 못했지. 둘째 아주버님이 결혼하고 아기를 낳았는데, 글쎄 채 40일이 되지 않은 아기를 새벽에 식당 마루에 놓고 가버렸어.
“그 어린것을 키울 때 아기만 맛있는 거 준다고, 우리 아들이 자기는 주지 않는다고 울고 그랬어. 그 조카 지금은 스물다섯이 되었어. 직장에도 다니고 착하게 살아. 키워준 보람이 있지. 올 때마다 매번 고맙다고 선물 사고 인사 와."
“정말 복을 많이 지으셨네요. 조카님이 착하게 클 수밖에 없었겠네요.”
그도 나도 먹는 속도가 느려진다. 아주머니 이야기는 끝날 줄 모른다. 때로는 노여운 듯 한이 서린 목소리로 말할 때는 떨리기까지 한다. 수십 년의 한이 얼마나 쌓였으면 울먹거리기까지 한다. 그런 마음으로 조카를 돌보았으니 착하게 자랐을 거다.
어른들이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지 말라’는 말을 하지만 다 그렇진 않다. 조카가 부모님처럼 키워준 은혜를 기억하여 찾아오는 그림이 다가와 괜스레 울컥해진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우리에게 이야기하면서 그분의 가슴에 맺힌 한이 조금 풀렸기를.
이분을 만나게 하려고 길 잃고 여기로 오게 한 것만 같다.
금마 호수에서
식당에서 가까운 숲길을 지나니 금마호수다. 잠깐 의자에 앉아 쉬는데 한 무리 고등학생들이 온다. 서로 재잘거리면서 가는 모습을 한참 바라본다.
‘참 좋은 때다.’
내가 그만한 시절에 어른들이 그랬다. 그때는 몰랐다. 지날 때는 좋은지 모르고 행복한지 모르고 아름다운 시절의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는지를 모른다. 다 지나야 안다. 지금 이 순간도 지나고 나면 또 ‘좋은 때’가 될 것이다. 그게 인생이다.
서동공원은 서동이 노래를 퍼트려 선화를 만나 무왕이 되는 설화의 무대이다. 서동과 선화를 뽑아 축제를 한다고 한다. 금마 호수 위로 긴 다리를 만들어 연꽃을 볼 수 있게 했지만, 연은 아직 초록 이파리가 없다. 멀리 호수 건너편에 버드나무가 연둣빛으로 안개처럼 피어나고 우리가 지나올 때 본 호숫가 작은 집이 그림 같다. 그 풍경이 오스트리아의 할슈타트 못지않다.
공원을 걷고 버스 타는 곳까지 걷기로 한다. 한참 버스정류장으로 가고 있는데 흰 승용차 문이 열리며 젊은이가 묻는다.
“저희가 버스 정류장 저 아래서 보았는데요. 모셔다 드릴까요?”
조금 전에 시원히 대답해 주지 못한 것 같아 차로 답사하고 다시 되돌아온 것이다.
진짜 미륵이 사는 동네가 맞네요.
남도삼백리길
다음 날, 우리는 예정에 없는 순천으로 간다. 원래 샛길로 새야 재미있는 법이다.
남도삼백리길 과거관문길을 걷자. 사람들이 타고 내리고... 차에는 우리만 남는다. 산속 공기가 차다.
동천을 따라 걷는 길.
멀리 산벚꽃이 군데군데 연분홍 안개로 떠 있다.
걷고 걷고 또 걷고.
어디서 늦잠 잔 닭 우는 소리가 들린다.
오솔길이 나오자 바로 들어선다. 봇짐을 진 갓 쓰고 도포를 입은 사람이 좁은 길 벽에 그려져 있다. 선비는 과거를 보러 서울로 가는 중이다. 우리도 과거 보러 가는 선비처럼 같이 걷고 있다.
강물 따라 걷다 보니 어느 순간 마르고 물이 없다가도 어느 순간 물이 많아지고 강물이 넓어진다. 우리 인생의 폭도 어느 순간 조여들다가 또 조금 수월해지기도 하는 법이려니. 그런 과정들을 지나며 익어가는 것이려니. 조용한 마을길을 느릿느릿 걷는다. 봄 햇살이 온 산천을 점령하고 이제 막 솟아오르는 연두 잎들이 가슴을 물들인다.
봄이 막 기지개를 켜는 둑방길을 15킬로 넘게 걸어서 지본을 지나고 분기점까지 오자 강이 넓어진다. 데크길을 지나자 벚꽃길이 이어지고. 꽃길 따라 동천변을 걸으며 벚꽃마중을 한다.
꽃봉오리 맺힐 때 내려와서 폭죽처럼 벚꽃이 화사한 길을 하염없이 걷고 또 걷고.
꽃비 맞은 향긋함이 사라지기 전에 서울로 오는 버스를 탄다.
여행에서 돌아온 주말, 딸기잼을 주문하려 전화했더니 어르신은 그날의 낭랑한 목소리다.
“아이고, 서울댁 잘 갔어? 나 시방 여수 가는 관광버스여.”
여수 밤바다 보고 올라갈 거여. 안 그려도 참 멋진 부부 봤다, 함서 버스에서 내내 자랑했어. 잘하고 있어. 벌면 뭐 해야. 그리 살어. 신랑 헌티도 꼭 안부 전해야 해.
이틀 후, 테이프로 꽁꽁 싼 상자가 택배로 왔다. 포장을 풀어보니 딸기잼과 된장 고추장도 들어 있다.
“거시기 내가 얼마 전 고치장 담았거든. 된장도 쌈 싸 먹어도 맛나. 긍께 한번 먹어바.”
친정엄마처럼…. 통을 꺼내 나란히 놓고 하나씩 맛을 본다. 잼도, 된장도 ‘고치장’도 사랑처럼 달다. 이내 여사님의 진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보다 보믄 그거이 인연이여. 인연이 따로 있간디?”
그 동네 금마 호수 위 잔도에는 이런 글귀가 매달려 있다.
“스치면 인연, 스며들면 사랑”
소리 내어 읽으니 고마운 무엇이 입안에 고인다.
인생길에서 만난 어떤 이는 스치고 어떤 이는 스며든다. 내가 스며든 미륵 같은 딸기 여사. 그가 사는 동네마저 환하게 다가온다.
우연한 만남이 낯선 길을 밝게 밝힌다.
낯선 곳에 스미면 또 어떤 인연이 기다릴 것만 같아
작은 배낭 하나 메고 뚜벅뚜벅 다시 떠난다.
처음 시도해 본 4일간의 뚜벅이 나들이. 단짠단짠 여행.
새로운 무엇이 내 안으로 들어와 가슴이 그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