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쓰는 날
34년의 교직 생활 동안 1학년을 여섯 번 맡아 가르쳤어요. 매번 1학년을 가르칠 때마다 새로운 세상을 만났지만, 마지막으로 만났던 3년 전 1학년 아이들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1학년을 할 때마다 가끔 기록했던 것들을 바탕으로 입학하고서부터 순차적으로 재구성합니다. 아이들의 이름은 가명입니다. 천사 같은 아이들의 학교생활 모습을 적으며 저는 행복했습니다.
입학하고 두 번째 날이 되었습니다.
강당에서 한 시간 동안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른 후, 줄을 세워 교실로 들어오는 날입니다.
아이들은 짝의 손을 잡고 선생님을 따라 들어옵니다. 교실 복도에 있는 신발장에 신주머니를 놓아야 합니다. 신발장에는 선생님이 이미 번호와 이름을 붙여 놓았습니다. 아이들이 신주머니를 놓기 전에 선생님은 앞 친구의 신주머니를 들고 신발장에 놓는 방법을 설명합니다.
“얘들아, 신주머니는 엉덩이가 나오게 놓아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신발이 바닥에 떨어지고 신발이 돌아다녀요. 부츠를 신은 친구는 신발장 위에 올려놓으면 되어요.”
이렇게 말해야 신발장 안에 들어가지 않는 신발을 신고 온 아이들이 걱정하지 않습니다. 신주머니를 돌려놓아야 아이들이 신발 장난을 치지 않습니다. 가끔 짓궂은 언니 오빠들이 아이들 신발을 장난치기도 하고, 1학년 아이들도 싸우거나 기분이 상하면 친구 신발을 숨겨 놓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이 놓는 방법대로 아이들은 자기 이름을 찾아 자기 신발을 정리합니다. 목이 긴 신발을 신고 온 아이는 신발장 위에 가지런히 놓습니다. 가르치는 대로 따라 하는 아이들이 기특합니다.
처음 배우는 것을 제대로 하면 앞으로 힘들지 않습니다. 이래서 1학년은 아주 중요합니다. 좋은 습관은 평생의 재산이 되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물려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유산이 좋은 습관이라고도 하잖아요. 처음 학교생활을 어떻게 하느냐가 6년을 좌우하고 나머지 학창 시절을 결정지을 수도 있기 때문이죠.
오늘은 개인 용품들을 나누어 주고 이름을 쓰는 날입니다. 풀, 가위, 색연필, 줄이 없는 종합장, 작은 빗자루와 쓰레받기 세트, 자잘한 학용품을 넣는 바구니, 가위 같은 물건들입니다. 학교 예산에는 1학년을 위한 비용이 따로 마련되어 있어서 봄방학 때, 1학년 선생님들이 미리 준비한 것들입니다. 하루에 다 나누어 주면 아이들이 이름 쓰기가 힘들기 때문에 이틀에 걸쳐 나누어 줄 예정입니다. 바구니를 나누어 주고 책상 속에 잘 넣게 합니다. 네임펜 한 자루씩 먼저 나누어 줍니다.
“네임펜을 쓰고 나면 모자를 꼭 씌워 주세요. 모자가 없으면 네임펜이 추워요.”
1학년은 모든 사물에 생명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가르칠 때도 생명을 불어넣어 가르치면 더 쉽게 알아듣습니다. 물건을 소중히 여기게 되고요. 한 가지씩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여러 개를 한꺼번에 주면 아이들이 어지러워하기 때문입니다.
종합장을 나누어 주고 이름을 쓰게 합니다. 선생님은 아이들이 이름을 쓰는 것을 돌아다니며 봅니다.
딱 한 아이가 거울상 글씨로 이름을 썼습니다. 신주머니 넣을 때는 자신의 이름을 잘 찾았는데. 쓰는 것은 아직 안되나 봅니다. 선생님은 아이의 종합장에 바른 이름을 써 줍니다. 다음에 나누어 준 물건에는 써 준 이름을 보고 바르게 ‘그립니다.’ 한글을 모르는 아이가 없었으면 했는데. 이 아이에게는 도움이 많이 필요할 것 같네요. 그래도 올해는 바닥에 기어 다니거나 막무가내로 떼쓰거나 하염없이 우는 아이는 없어 다행입니다.
그렇게 한 가지씩 나누어주고 이름을 쓰고 책상 속 바구니에 정리하기를 마쳤습니다. 무엇이든 자기 활동이 끝나면 교실 뒤에 있는 책을 가져다가 읽도록 하였습니다. 아이들은 조용히 책을 가져다 읽고 있습니다. 그 모습이 참 아름답습니다.
신학기에는 통신문이 많습니다. 한 장씩 나누어 주고 통신문 파일에 넣게 합니다. 통신문 파일에도 이름이 있습니다. ‘우체통’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고 번호와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아이들은 이름 붙이기를 좋아합니다. 뭐든지 이름을 붙여 주면 좋습니다. 아이들에게 이름을 지어달라고 하면 정말 근사한 이름들이 나옵니다. 모든 사물에는 생명이 있기 때문에 당연히 이름도 따라옵니다. 이름을 쓰고 통신문을 나누어 주었는데 벌써 하교시간이 되었습니다. 의자를 집어넣고 책상을 바로 놓습니다.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인사를 합니다.
“선생님, 사랑합니다.”
“친구야, 사랑해.”
이제 교실 뒤쪽에 줄을 섭니다. 이미 키순으로 번호를 정해 주었기 때문에 순서대로 섭니다. 아직 자기 자리를 모르는 아이들은 똘똘한 아이들이 가르쳐 줍니다. 당분간 키 번호대로 설 예정입니다. 아이들이 앞에 서려고 다툼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신발을 갈아 신기전에 선생님은 다시 신주머니를 정리하는 법을 안내합니다.
“실내화를 벗고 가지런히 담아요. 그리고 엉덩이가 보이게 예쁘게 놓아요. 아무렇게나 놓으면 친구들이 돌아간 뒤에 우리 주인님은 나를 아무렇게나 놓았어요, 하면서 신주머니가 슬퍼해요.”
아이들은 저희들 얼굴 같은 하얀 실내화를 가지런히 잘 놓습니다. 모두 잘했습니다.
학년말이 되었을 때까지 끝까지 가지 못하는 아이도 있습니다. 습관이 될 때까지 교사의 손이 못 미친 까닭도 있습니다. 교문까지 아이들을 데리고 갑니다. 교문에는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등하교 도우미, 태권도 학원 원장님... 많은 사람들이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교문이 가까워지면 걸음이 빨라집니다.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엄마 품속으로 달려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