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틈새집이 있었다

그리운 작은 식당

by 오설자

수요일마다 문학모임을 하는 건물 옆에 작은 식당이 있다. 벽과 옆 건물 벽 사이 채 2미터도 되지 않는 틈에 만든 공간이다. 이름하여 ‘틈새집’. 언제부터 그곳에 자리하고 있었는지 모르지만 꽤 오래된 것 같았다.

수업이 끝나면 문우들과 거기서 자주 뒤풀이를 했다. 틈새집이라고 쓰여 있는 좁은 문을 밀고 머리를 숙여 들어가면, 작고 둥근 탁자가 다섯 개가 벽에 붙어 있고, 그 너머 할머니가 음식을 만드는 주방이 옹색하게 이어져 있었다.


할머니의 흰머리와 구부정한 허리에 얹힌 삶의 무게는 지나온 세월을 말해 주는 듯했다. 말없이 우리를 보시다가 주문을 하면 그 좁은 주방에서 뚝딱 요리를 해내셨다. 좁은 홀 탁자에 끼일 것만 같은 거구의 아들은 앉아서 TV를 보다가 손님들에게 말없이 음식을 내어 주거나 음식을 배달하곤 했다. 장성한 그는 아직 미혼인 듯했다. 할머니와 아들에게 어떤 사연이 있을까, 어쩌다 여기서 식당을 할까, 할머니에게는 다른 가족이 없는 걸까, 궁금증이 꼬리를 물다가도 문우들과 수다에 빠지면 다른 길로 가버리곤 했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구수한 음식이 나오면 이내 잊어버리고 부지런히 젓가락질을 했다.


밑반찬이 아주 맛깔스러웠다. 젓갈이 골고루 밴 파김치가 향긋했고 윤기가 나게 조린 멸치조림. 콩자반도 꼬들꼬들했다. 취나물이나 비듬나물 무침은 짭짤했지만 상큼했다. 갈 때마다 반찬이 달라졌다. 부드러운 콩 알맹이가 씹히는 청국장은 진했고, 김치찌개도 진실했다. 구수한 시래깃국을 남김없이 다 들이키면 추위가 싹 가셨다.

오징어볶음이 특별했다. 별다른 야채도 넣지 않고 달콤하고 매콤하게 무친 오징어 살은 아주 깊고 연했다. 입안에서 씹히는 통통한 오징어가 입안을 가득하게 했다. 나는 별로 오징어 요리를 좋아하지 않는데 그 집에서만은 맛있게 잘 먹었다. 음식을 먹을 때마다 소박한 손님상을 차린 전라도 어느 가정집에 온 착각을 하게 했다. 우리는 오징어볶음 한 접시, 청국장이나 시래기, 같은 것은 빠지지 않고 시켜 먹었다. 어떤 때는 파가 절여져 있었는데 일주일 후에 오면 다 떨어질까 봐 아쉬워하기도 했다.


음식값도 할머니처럼 욕심이 없었다. 서너 명이 먹어도 ‘제가 오늘 밥 삽니다.’하기에 전혀 부담이 없었다. 반찬을 집으려 젓가락질을 할 때마다 옆 사람 팔이 부딪칠 정도로 비좁았지만, 수업 후에 거기서 ‘집밥’ 같은 음식을 먹으며 문학에 대한 수다를 떠는 것이 즐겁기만 했다.


한 번은 몇 명이서 그곳에 들렀는데 그날 반찬으로 싱싱한 파를 숭숭 썰어 넣은 부침개가 나왔다. 어찌나 쫄깃하고 파 향이 나는지 나는 그것을 두 접시나 먹었다. 그러고도 계속 입에 남아, 집에서도 몇 번이나 해 먹었다. 그 덕에 뱃살이 늘어나는 것으로 답이 왔지만. 갈 때마다 한 번도 실망한 적이 없었다. 할머니는 말씀도 없이 주문한 요리를 만들었고 맛있다는 우리에게 반찬을 듬뿍듬뿍 담아 주셨다.


언젠가 여행을 하고 오랜만에 학교에 갔다. 그날 뒤풀이는 거기서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지나는데 그곳이 텅 비어 있었다. 깜짝 놀랐다. 식당이 있던 건물 사이에는 담배꽁초들과 비닐 조각이 뒹굴고 있을 뿐이었다. 어떻게 된 일일까. 어디로 갔는지 작은 메모나 전화번호라도 있나 하고 찾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남은 것은 사람의 흔적이 사라진 벽과 벽 사이 좁은 틈뿐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 한참을 서 있었다.


식당이 있을 때는 제법 공간이 있었는데 이렇게 좁은 곳이었다니. 수도며 전기는 어디서 끌어 왔을까. 그 작은 틈새에서 어떻게 식당일을 하였을까. 맥주병을 뉘어 놓은 형상의 땅. 병목에 작은 문이 있었고 병 몸체가 식당이었다. 저런 곳에 어디에 싱크대며 냉장고며 세간살이를 놓았을까. 돌아설 곳 없는 공간에서 할머니는 나물을 무치고 찌개를 끓이고 김치를 담갔겠구나.


건물 벽만 남은 그곳에 서 있자니 그 작은 테이블에 앉아 진한 청국장을 먹는 우리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원탁에 앉으면 서로 부딪쳐 가방을 놓을 공간도 마땅치 않는 곳에 다리를 오므리고 앉아 문학이니 글쓰기에 대해 열띤 토론을 했던 그 시간이 더 간절해졌다. 그동안 우리가 쌓은 추억도 빼앗긴 것 같아 나는 몹시도 아쉬웠다.


어디서 식당을 다시 열고 음식을 만들고 계시기나 한 걸까. 이제 어디로 갔는지 모르는 할머니가 그리울 뿐이다.


아쉬운 마음에 대치동 주민센터에 전화를 했더니 무허가 건물이라 철거했다는 건조한 대답만 들을 수 있었다. 건물 틈새에서 비비고 먹고사는 모자를 그리 모질게 쫓아버린 것만 같아 비싼 땅에 버티고 있는 거대한 건물까지 미워졌다. 적법과 불법 사이 틈에서 욕심 없이 사는 그들을 여지없이 철거해 버린 세태가 비정하기까지 했다.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 나는 이제 알 길이 없다. 엉성한 식당이 없어진 그곳을 볼 때마다, 내 가슴속에도 틈이 하나 생기고 말았다. 그 틈새로 서글픈 바람이 자꾸만 불어오는 것이었다.


길을 걷다가 건물 틈이 단란한 곳을 지날 때마다 나는 멈칫하고 그 할머니가 식당을 하면 딱 좋은 곳인데, 하고 중얼거리곤 한다. 할머니의 음식과 함께 그 집에서 있었던 추억을 꺼내보면서.


비를 가릴 허름한 어딘가에서 할머니는 여전히 맛깔스러운 음식을 만들어 힘든 오늘을 살아낸 착한 사람의 헛헛한 틈새를 채워 주고 있을 거라고 위안해보곤 한다.

<에세이문학 2019 여름호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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