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의 재해석
오랜 시간 뜨겁게 사랑했던
남자와의 사랑은
막장 비극 스토리로 막을 내렸다.
나는 살면서 그렇게 마음 아픈 일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몸과 마음이 아렸다.
유행가 가사에서나 나오는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그때 한참 들었던 노래는
바이브 '그 남자 그 여자'였다.
여잘 울렸으면 책임져야지
네가 뭘 알아 여자의 마음을
모든 걸 다 주니까 떠난다는 그 남자
내 전부를 다 가져간 그 남자
한 때는 내가 정말 사랑했던 그 남자
다 믿었었어 바보 같이
남자는 다 똑같나 봐
그리고 준비하던 시험도 낙방했다!
물론 2번의 도전으로 막을 내렸지만...
덕분에 병원 신세를 질 정도로
몸도 많이 아팠다..
모든 것은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마흔이 넘어 돌아보니
그 남자와는 어차피
잘 될 수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우와 신포도 이야기 같은
자기 합리화라고
이야기할지도 모르겠으나,
나이를 먹고 보면 보이는 것들이 생기는데
함께 결혼 생활을 하기에
그 사람은 나와는 맞지 않는 것들이
많았다는 것을,
끝이 뻔한 만남이었을 거라는,
계속 살면서도 아프고 다치고
나의 자존감이 무너졌을 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 알게 되었다. 내가 준비했던 시험은
내가 아니라 내 주변 사람들이
원하던 것이었다는 것을
사실 9 to 6의 삶이
나와 잘 맞지 않다는 것을..
그러니 어쩌면 실패는
내가 가면 안 되는 길을 알려주는
안내자일지도 모르겠다는 것을..
그리고 그때 그렇게 아팠던 덕분에
엄청난 운동광이 되었다.
뭐 물론 그렇다고 보기 좋은 몸매는 아니지만
나 자신을 돌보는 법을 깨닫고
좀 더 적극적으로 운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결론은
'실패해도 괜찮다'라는 · 것이다.
살아보니까 실패했던 것이 피와 살이 되었다.
그리고 나와 인연이 아니었기에
연결되지 않은 것들이기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인연이 정말 나의 것이라면 그 이후에도
분명 연이 닿았을 것이다.
며칠 전
카이스트 실패 연구소에서 발간했다는
<실패 빼앗는 사회>라는 책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맞다!
넘어지고 넘어져야 제대로 걸었던
우리 아이들처럼
나도 그때 아주 호되게
넘어졌던 것일 뿐이지
실패가 어디 있나 생각했다.
전형적인 자기 구실화 전략에서는
실패가 자신의 '능력 부족'으로 일어나지
않았음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을 하지 않거나
능력을 발휘하기 어려운 상황을
의도적으로 만든다.
나 역시 대학원을 새롭게 도전하면서
'아이들 핑계', '집안일 핑계' 등등을 찾으면서
대학원 원서 내기를 망설이면서
어차피 힘들 텐데 떨어지는 게 더 나을지도 하는 생각을 했었다.
사실은 떨어지면 쪽팔린 거였으면서 말이다.
사족:
책에 이런 페이지가 나와요.
"자기한테 맞지 않는 곳에
부자연스럽게 있는 모습이
꼭 내 모습처럼 느껴졌다."
카이스트 같은 명문대를 다니면서도
저런 생각을 한다는 것은
사실 모든 사람이 실패를 두려워하고
또 지금 자신이 있는 곳이 자신과 맞는 곳인지
확신하지 못한다는 것을 말해준다고 생각했어요.
그렇다면 어차피 넘어져봐야 한다는 말이라고요.
제가 먼저 넘어져보니까
말할 수 있는 것들이 있어요.
아프긴 참 많이 아파요.
그렇지만 한 번은 해 볼만했다!
그렇게 말해주고 싶어요.
그리고 한번 아프고 나니까
많이 돌아보게 되기도 한다고요!
또 넓어지고 커지기도 하고요!
마트에 갔다가 꽃을 만났어요.
너 참 예쁘다.
그냥 그대로 참 예쁘다!
그렇게 말해주고 싶었어요.
이상 이루다 T였어요.
감사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