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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기헌 Oct 25. 2023

좀 더 계몽된 ‘돌싱’의 사회를 꿈꾸며

언제부턴가 '돌싱'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이 참 관대해졌다. 인구 절벽과 맞물린 이유도 있을 것이며, 한번뿐인 인생이라는 '욜로(YOLO)'의 외침도 한몫 했으리란 생각이 든다.


TV에서는 서로 경쟁하듯 '돌싱' 프로그램들을 선보이고 있다. 시청자들은 강건너 불구경을 하듯, 그들의 삶에서 대안적 위로를 받기도 한다. '나는 가정을 꾸리고 잘 살고 있는데, 이혼한 그대들의 삶을 보니 어라? 재미있네!!' 라는 호기심에. 또한 유명인들은 이제 아무렇지 않게 그 흔한 '성격 차이'로 이혼 했다며 물흐르듯 대중에게 발표를 하기도 한다.


얼마전 친구 하나가 <나는 솔로>라는 프로그램에서 돌싱 특집을 했다며 나보고 꼭 보라고 전해왔다. 그래서 봤다. 그 프로그램 자체를 처음 접했더랬다.


글쎄다. 뭐랄까. 가관이였다. 돌싱에 애까지 딸린 분들이 나와 미팅을 하듯 자기 소개를 하고 자기 짝을 찾아가고 있었다.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분들이 대다수였고, 학벌도 알게 모르듯 과시를 하는 모습도 보였다. 나는 보면서 그 생각 뿐이였다. '저러고 싶을까..' 하는.


나는 6년전 이혼을 한 뒤 너무 챙피했다. 저 멀리 해외에서 온 하객 지인부터 비롯해 주례 선생님, 그리고 양가 친지분들께까지. 이혼 뒤 수백명이 넘어가는 그 많은 분들께 죄송스러움을 금할 길이 없었다.


이혼 후 여자를 안만난건 아니다. 고향 안동에 돌아오며 ‘여자’라는 미스터리 한 종족은 다시는 만나면 안되겠다고 마음에도 없는 다짐을 했는데 운좋게 두어명 그렇게 또 만났더랬다. 조용히, 소리조차 들리지 않게, 그렇게 만나려고 노력을 하기도 했다.


어느 정도 연애를 하다가 시간이 흘러 안정이 됐을 때, 주위 사람들에게 알리려고도 했다. 그런데 그게 잘 안됐다. 나의 생각, 당신의 생각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다 또 틀어지고 우리는 학창시절 처럼 철딱서니 없는 싸움을 시전하곤 했다.


'저러니까 이혼했지.. 쯧쯧' <나는 솔로:돌싱 특집>라는 프로그램을 보며 내가 머릿속에 되뇌인 생각이다. 그러는 찰나에 옆에 친구가 다그쳤다. "너도 그러니까 이혼했겠지."라며. 뭐 할말이 없다. 내가 눈에 가시로 보는 장면 속에 내가 있을 줄이야. 이혼 뒤 만났던 친구들도 모두 그런 생각을 했을것만 같다. '저러니 이혼을 했지..'라며.


이제와서 항변 하기는 싫다. 오롯이 '이혼'이라는 결과가 다 말해주리라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 시각으로 이번에 '펜싱 여제' 남현희 사건을 바라보게 됐다. 11살 딸을 가진 엄마가 이혼한지 두 달만에 재혼을 하고, 그 재혼 상대는 15살 연하의 재벌집 도련님이다. 두 달만에 재혼을 한다는 건 결혼 생활 중에 이미 만나고 있었다는 뜻이기도 하겠다. 만남과 동시에 남자가 살고 있는 싯가 30억을 훌쩍 넘는 서울의 한 고급 아파트로 이사 가서 이미 동거를 하고 있다하며, 그 사실을 자랑스레 여기저기 알린다. 언론에 공개가 되자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남자의 과거가 드러나는데, 성별이 여자라는 것과 사기꾼이라는 낭설이 파다하게 퍼지고 있다.


그 후 하루가 지났고, 오늘은 연예계 최대의 파급력을 가진 언론인 <디스패치>에서 확인 사살을 해줬다. 법원의 판결문과 기타 지인들의 증언을 통해서다. 전청조씨는 과거에도 2년6개월 실형을 살았던 사기꾼이며, 성별은 여자라고 단정 지었다.


기가 막히는거 보다, 어떻게 이게 가능할까 싶은 생각이 든다. 42살 남현희씨는 벤틀리와 샤넬, 최고급 아파트에 눈이 멀었던 걸까. 아무리 돈과 섹스가 좋다한들, 전남편과 이혼한지 두 달만에 이게 가능이나 한 걸까.


뭐 다 좋다. 마흔이 넘어가면 여성의 성적 호르몬이 과다분비 되니 섹스에 목이 말라 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 또 궁금해진다. 전청조씨랑 잠자리를 하며 그가 여자인 걸 몰랐을까. 하물며 11살 딸은 또 무슨 잘못일까. 온 국민이 이 사달을 조롱하듯 쳐다보고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11살 딸은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아야 되는걸까.


내가 돌싱이다 보니 나도 때로는 돌싱에 관대해 질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이건 아니다. 보통의 사람들은 돌싱에 관대한게 아니라, 동물원의 원숭이들이 재롱을 떨 듯, 우리들을 보는게 즐거울 뿐이다. 나도 그렇고, 돌싱의 당신들 모두 동물원의 원숭이일 뿐이다. 그래서 말이지, 주는 밥이나 챙겨먹고 제발이지 침묵 했으면 좋겠다. 가급적이면 침묵하고 또 침묵하시라.


특히나 아이가 있다면, 그 침묵은 배가 됐으면 싶다. 돌싱인데도 불구하고 사회에서 합의가 다 된 듯 떵떵거리고 다니는 당신들, 뭐가 그렇게 재미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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