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찾은 카페는 낮부터 만석이다. 공부하는 학생들이 대부분 자리를 점령했고, 그들 테이블엔 전문 서적들이 한아름 쌓여있다. 그들 틈에 껴 책을 펼치니 나도 대학생이 된 마냥 괜한 경쟁심이 솟구친다. 마치 내일이 기말고사가 시작되는 날인 것처럼.
그야말로 나 혼자 전성시대다. 혼밥부터 시작해 혼여행, 혼등산, 혼영화 등등 온 삶이 혼자가 아닌 경우가 드물어져 버렸다. 스스로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사회 현상과 내 처지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바람에 나는 지금도 ‘혼삶‘을 보내고 있다.
근래 사람들과의 갈등이 잦다. 제 주장에는 관대해지고, 정보 습득량이 무차별적으로 방대해지니 타인의 주장에는 의문이 달리고 쉽게 인정 할 수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다 감정이 곁들여지고, 이내 제어를 할 수 없는 수준으로까지 이르기도 한다. 초심은 저만치 멀어져가고, 쉽게 마지막을 맞기도 한다.
멀쩡히 쓰던 단순하고 간편해진 연락의 장치(카톡, SNS)들을 지우거나 파괴하고, 우리는 ‘먼저 차단하는 사람이 이기는 것’이라고 여기는 듯 마지막 순간까지 스마트 기기를 통해 자존심 싸움을 벌이기도 한다.
성시경이 노래한 영화 <국화꽃 향기>의 주제곡 ‘희재’에서는 “그대 떠나가는 그 순간도 나를 걱정 했었나요”하며 묻는다. 마지막은 할 수만 있다면 그러한 물음이 좋을것 같다.
사냥꾼과 약탈자, 영웅과 겁쟁이, 왕과 농민, 사랑하는 남녀, 어머니와 아버지, 부패한 정치가들, 슈퍼스타, 성자와 죄인 등 인류의 역사에서 그 모든 것의 총합이 여기에, 이 햇빛 속에 떠도는 먼지와 같은 작은 천체 지구별에 살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영성적 충격이 느껴지기도 한다.
아무 갈등도 일어나지 않으려면 아무도 안만나면 되는 단순한 해결책이 있는데, 그 옛날 우주를 좋아하던 친구로부터 받은 토성 모양의 생일 축하 카드를 보니 꼭 그렇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인가보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사색하고 글쓰기에 더할나위 없는 기분이다. 그래서 이런 날엔 나 혼자여도 좋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오는 시기,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는 때가 딱 그렇다.
몇번의 계절이 지나야 하며, 하물며 앞으로 지구가 태양을 몇바퀴나 더 돌아야 모두 끝이날까. 비스듬히 창밖 하늘을 내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