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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기헌 Dec 05. 2023

MBTI 공화국에서 산다는 건

”저는 T에요, F에요, J에요.“

우리 사회의 새로운 인사법이다. 처음 만난 사람의 외모나 그 사람의 성품도 이제는 대수롭지 않다. MBTI 하나로 한 사람이 살아온 온 우주가 규정되기 때문이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로 어마어마 한 일이다‘ 라며 한 사람의 가치를 대서사로 노래했던 정현종 시인의 메아리가 구슬프게 다가온다.


그야말로 ’MBTI 공화국‘이다. 알파벳 하나로 사람을 규정짓고 판단한다. 어떤 지자체에서는 고3 수험생들을 대상으로 MBTI 검사를 시행해 진로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기도 하며, MBTI 별 여행코스도 발굴을 했다고 홍보를 늘여놓기도 한다. 한 의학 전문 저널에서는 MBTI가 ’E‘면 치매 발병 확률이 낮다며 사례를 들어 기사를 싣기도 한다.


재미라고 치부하기에는 공무원 시험과 민간 기업 이력서에도 MBTI에 따라 당락이 좌우된다니, 그 도는 선을 넘어도 한참이나 넘은 것 처럼 보인다. 서점에는 MBTI 관련 서적들이 줄을 지어 출간되고 있다.


가깝게는 친구·연인, 심지어 가족까지 MBTI를 통해 관계 지표를 평가한다. 신생아를 출산 했는데, MBTI가 무엇일지 걱정하는 산모들도 늘었다고 한다.


이쯤되면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라 할 수 있는 사법부에도 MBTI가 도입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어보인다. 증거가 불충분 할  때, ’T‘면 무죄, ’F‘면 유죄라고 단정지을 수도 있을 것만 같다. 행여나 ’J‘면 어정쩡하니 기소 유예 처분을 내놓기도 하는거다.


그 옛날 별자리와 혈액형으로 사람을 판단했던 때와는 그 결이 사뭇 달라 보인다. 도축장에서 가축들이 ’A‘ 혹은 ’AA‘ 등으로 등급이 찍혀나오면 오로지 그 결과값만 보고 가축의 질을 평가하듯, 사람 사는 우리 사회도 그에 차용된 마냥 MBTI 결과값 만을 맹신한 채 그 사람을 평가해 버리진 않을까 하는 슬픈 전운도 든다.


언젠가 나한테도 MBTI를 물어보던 사람이 있었다. 나는 해본적도 없거니와 관심도 없어서, 즐겨보는 뉴스 채널인 ’Jtbc‘ 혹은 ’M.net‘일 거라고 농을 던지며 대충 둘러댔다. 다양한 가치와 경험으로 얼룩졌을 42년 동안의 살아온 시간과 앞으로 펼쳐질 영겹의 세월을 알파벳 한 단어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지, 나는 급기야 되물어 보기도 했다. 그래도 그들은 대세를 따를 수 밖에 없다는 반응이다.


도둑질도 안하는 사람보다 하는 사람들이 많다면 그 도둑질 자체가 보통의 상식이 된다. 유대인을 몰살하고 총·칼을 앞세워 전세계를 정복하려 했던 히틀러의 나치당원들도 선 보다는 악이 상식이 되곤 했었다.


MBTI를 맹신하는 사회에서 나홀로 그 검사를 업신 여기다니, 나는 상식적인 사람이 되기는 글러먹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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