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꽉차게 느껴질 때가 있다. 오늘 같은 날이다. 단체 주문으로 아침을 시작했고, 점심 때엔 이상하리만큼 배달 주문이 몰려 들어와 홀손님은 받지도 못했다.
브레이크 타임 땐 잠시 도서관을 찾아 고려사에 관한 역사 서적들을 뒤져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고, 갑자기 차 한잔 마시자며 연락이 온 아는 동생과 커피숍에서 연이어 수다 삼매경에 빠지기도 했다.
저녁엔 2주 앞으로 다가온 가족들과의 일본 여행 예약을 마무리 했고, 엔화 환전까지 해두었다.
가게를 마친 뒤엔 축구장으로 가 2시간여 가량 땀을 흘리며 클럽 팀원들과 풋살을 했다. 마침 내리는 비가 땀과 뒤섞여 만신창이가 된 채 경기를 끝마쳤다.
집에 가는 길 차안에서는 김동률이 부른 <기억의 습작>이라는 노래가 흘러나온다. 습작, 무언가를 연습삼아 미리 끄적여보는 걸 뜻하는데, 내 삶에 습작이 있었다면 나는 적어도 이런 식의 실패한 삶은 살지 않았겠지- 하는 자조가 들기도 한다.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오랜만에 축구 유니폼들을 널어봤다. 살아생전 축구를 좋아했던 아버지 생각이 난다. 나도 아들이 있었다면 우리 아버지가 그랬던 것 처럼, 주말마다 온 동네방네 공을 차며 함께 뛰어놀았을텐데. 기억 안에서, 습작의 나래를 펼쳐본다.
막걸리 한잔 해야겠다. 꽉 찬 하루에 대한 보상이다. 오늘도 혼자 따르고, 혼자 마시는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