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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기헌 Dec 08. 2023

언젠가 설명이 필요한 밤

서른 여섯 때 안동으로 돌아왔으니까 고향살이도 햇수로 6년차가 됐다. 문득, 나는 잘 살고 있나- 그런 생각에 사로 잡히며 지나온 거리를 비스듬히 바라볼 때가 있다. 겉으로 보면 완전히 실패한 인생이지만, 아직도 마음 속에 꿈틀거리는 뭔가를 생각할 때면 땅거미 지는 길의 지평선에 희망을 비춰보기도 한다.


많은 것이 바꼈다. 나의 삶도, 세상과 사람을 대하는 나의 시선도. ‘어울림’에서 ‘단절’로 가는 과도기와도 같다. 김영하 작가께서 강조한 그것과 궤를 같이 한다. 마흔이 넘으면 사람, 그러니까 친구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거다. 친구를 덜 만났으면 인생이 더 풍요로웠을거라고 확신하는 그의 모습에서 내 모습도 반추를 해보게 된다.


40년 넘는 시간을 살아오며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나는 왜 그토록 좋아했을까, 하는 후회다. 결국 제 이익을 쫓아 흔적도 없이 모두 사라져 버릴 것을.


인간이 얼마나 이기적이냐면,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잘 나타내준다. 우리가 저녁식사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정육점 주인과 양조장 주인, 빵집 주인의 자비심 덕분이 아니라 이익에 대한 그들의 관심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이기심이 결국 ‘보이지 않는 손’까지 연결이 된다.


내가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가 그렇다. 서로에게서 파생되는 이익에 우리는 어쩌면 관심이 더 있었는지도 모른다.


언론의 힘을 빌리려, 영어 통역과 해석을 해달라며, 여행 가자며, 술한잔 하자며, 이성 친구를 소개해 달라며, 사랑한다며, 영원히 함께하자며… 이와 같은 행위들과 언어들로 영겹의 세월을 함께 수놓았던 그들은 이제 없다. 돈까스 가게는 어디에나 있기 때문에 나에게서 이익을 도려낼 일은 이제 더욱이 없어졌다.


자연스럽다. 토끼 같은 자식과 여우 같은 마누라를 얻은 그들 틈에서 나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은 설 자리를 점점 잃어간다. 멀어져 가는 저 지평선 어딘가에 행복한 사람들의 구역 뿐만 아니라 나 같은 사람들의 자리도 어딘가에 마련되어 있긴 한 건지, 원망스런 마음이 든다.


금요일 밤 안동의 밤거리가 화사하게 드리운다. 이면엔 달빛이 기우는 낙후된 달동네의 모습도 아스라히 피어 오른다. 만석의 술집과 사람 한명 없는 서점의 모습도 대조적이다.


서점에서 신간 책 한권을 사들고 이 달빛 아래 부르고 싶은 노래가 한곡 있어 코인 노래방에 들렸다. 규현의 <우리가 사랑한 시간>이다. 좋다. 고요히 흘러나오는 선율과 가사의 결도 이 밤과 잘 어우러진다.


집에 가는 길엔 맥주 한 캔과 소주를 샀다. 안주는 오색 반찬이 가득한 도시락 하나면 되겠다.


설명할 수 없는 오늘 밤, 이렇게 또 기울어 간다. 언젠가 설명이 필요한 밤, 어딘가에 있을 ‘사랑하는 너에게’ 오늘 못다한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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