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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기헌 Dec 11. 2023

우리 시대의 이별법

나와 비슷한 연배의 사람들은 아마 잘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유독 잘 어울려 보였던 그 시대의 유명 커플들을. 나는 신동엽과 이소라가 그러했고, 김민종과 이승연이 지금까지도 기억에 어렴풋이 나곤한다. 대략 2~3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은 홀로 지내는 이도 있고, 또다른 이는 가정을 꾸려 대조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얼마전 이소라가 시작한 유튜브 채널에 신동엽이 등장해서 화제가 됐다. 근 20년만인가, 어쩌면 불편할 법도 했는데, 보는 내가 다 흐뭇해지는건 왜일까 싶었다.


지천명의 나이에 이르면 나도 그들처럼 될 수 있을까. 과거를 노래하며, 기억 속의 우리를 다시한번 소환해 미소 지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과거를 계속해서 이야기 하는 건, 미래가 쉬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건, 현재에 대한 갈증과 연민에 근거할지도 모르겠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헤어지고 난 뒤 남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일단 낭만과 추억은 개나 줘버려야겠다. 먼저 카톡을 차단한다. 그리고 보란 듯 사진을 다 지우고, SNS를 연이어 차단한다. 혹시나 먼저 차단하지 않으면 자존심이 상할 수 있으니 제일 먼저 그것들을 차단하는게 우선시 된다.


그리고 슬그머니 염탐을 하는 행위를 반복한다. 한 이불 속에서 몸을 비비고 마음을 준 사이니 제 아무리 분노에 휩싸인 채 헤어졌더라도 그 여운과 궁금증은 참지 못하나보다. ’이 사람이 나랑 헤어지고 어떻게 사는지, 혹시나 다른 이성을 만나고 있는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하기도 한다.


그리고 혹 선물이나 편지 따위가 있다면 다 찢거나 불태워서 어떻게든 그 상흔의 흔적들을 티 내어 상대의 가슴에 흠짓을 내려 애쓴다. 질서있거나 반성이 깃든 이별은 없어 보인다. 본인 화가 풀려야 끝이난다. 홧김에 또다른 이성을 찾아 몸과 마음을 어떻게든 주려 애쓰는 이들을 보면 측은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우리 사는 시대의 이별법은 이토록 유치하거나 혹은 잔인하다.


우주를 건너 소금별 사람들이 우리별 모습을 본다면 이런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다. ’신기하지,, 그토록 당신밖에 없다며 영원한 사랑을 맹세했던 연인들이 이렇게 쉽게 끝을 맺다니.. 참 희한한 별이군‘


나 뿐만이 아니라 요즘 남자들은 여전히 조선시대의 여성상을 로망처럼 그리는 경향이 있다. ’유교녀‘라 일컬어지며 지조와 절개를 지키기를 바라는 것이다. 서로가 지키지도 못할 걸 빤히 알면서, 적어도 내 사람 만큼은 그러기를 바래보는거다.


시대가 얼마나 바꼈냐면, 이제는 결혼을 해서 내 아이를 낳아도 이 아이가 내 아이인지 의심부터 드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법원 판례를 보더라도 10년을 넘게 내 자식인 줄 알고 키웠는데, 어느 날 유전자 검사를 해보니 내 자식이 아닌 경우가 제법 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일을 어찌할꼬. 부부유별(夫婦有別) 이랬거늘, 지 서방, 지 아내 뿐만 아니라 낯선 이와의 하룻밤 원나잇도 별문제시 되지 않는 세상에서 별로 놀랍지도 않게 느껴진다.


이런 낯선 세상속에서 그나마 위안이 되는건, 과거의 어느 찬란했던 지점에서만 존재한 애틋한 사랑이 아닐 수 없다. 사랑을 해서 아팠지만, 역설적이게도 따뜻하기도 했다. 봄날의 햇살 같았던 당신을 내 기억 속에서만 그릴 수 있다는 건, 특별한 행운이기도 하다.


다시는 사랑 할 수 없을 거라는 슬픈 예감이 지배적이지만, 나는 사랑의 힘을 언제나 믿고 싶다. 과거의 그 순간이여도 좋고, 내 머릿속에만 그려지는 그 무언가도 좋다. 똑같은 사랑인거다.


그 언젠가 봄날의 햇살 같았던 기억속의 누군가를 다시 만나게 된다면, ”오랜만이네, 더 예뻐졌다 너.“ 하며 익살스런 유머를 곁들여 마주하는 날도 바라마지 않고 싶다. 20년만에 다시만난 옛 연인 신동엽과 이소라에게서 그 햇살을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몹시 그리워하고 사랑한 연인의 모습은, 십수년이 흘러도 상대를 배려할 수 있는 그런 여유있는 마음, 그와 같은 모습이 아닐까 싶다.


’주인도 노예도 다 죽었고, 죽은 뒤에 무엇이 있는지는 아무도 모르지. 다만 햇살은 남았네‘ 하며 믿는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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