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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기헌 Dec 07. 2023

낯선 맘

얼마전 지인을 통해 한 어머님께서 연락이 왔다. 초등학생 아들이 있는데, 영어 발표 대회가 있다고 나한테 연설문을 좀 써달라는 것이였다.


첨에 나는 이렇게 문자를 보내며 정중하게 거절을 했다. “초등학생이면 본인이 직접 해보는게 훨씬 도움도 되고 경험이 될거에요. 제가 해드리는건 진짜 아무 의미가 없어요. 평가하시는 선생님들도 다 아실거에요. 제가 해드리면 표현 자체부터 다 티가 날거구요.”


어머님은 그래도 괜찮다며 거의 읍소하듯 거듭 부탁을 해오셨다. 시간도 얼마 안남았다고 가급적 빨리 좀 해달라며. 게다가 보상까지 해주신단다.


어쩔수 없이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영작을 하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수준이면 대체 어떤 단어를 써야할지 감도 잘 오지 않았다. 그렇게 A4용지 2장 분량으로 급하게 보내줬더랬다.


어머님은 감사하다며 온갖 표현을 빌려 문자를 주셨다. 그리고 물질적 보상도 해주신다는 걸 나는 극구 사양했다.


그리고 저녁이 되서 다시 문자가 왔다. 발표를 했는데, 초등학생 아이가 말하기를 내가 써준 연설문의 문법도 틀리고 표현도 이상하다며 망쳤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머님은 너무 속상하다며, 나한테 이런 식으로 해줄거면 진작에 못하신다고 하지 왜 해주신다고 그랬냐며 따져 묻기 시작했다.


순간 뭐랄까,,, 이 장면은 가쉽거리를 전하는 뉴스나 맘카페에서 보던 모습인데,, 하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나는 마음을 최대한 가라앉히고 점잖게 되물었다. 혹시 어떤 표현이 잘못된거냐고. 그런데 거기에 대한 대답은 안하시고 계속 감정적으로만 대응을 하는 거였다.


‘욕이나 한바가지 퍼부어줄까’ 하는 생각을 불현듯 했다가 접어두고 이렇게 문자를 보냈다.


”저기 어머님. 제가 참 황당해서 그런데요,, 제가 제 입으로 이런 말씀 드리기 염치 없지만, 과거에 외국에서 대학 생활도 하고, 외국계 기업에서 외국인들과 토론하고 업무 보는 일도 상당히 오래했었어요.. 그리고 문법 말씀 하시는데,, 제가 한 때 영어 선생 일도 잠시 했었구요, 한국에서 치르는 수능영어, 토익, 텝스 시험은 모두 만점 받았었어요.. 제가 잘났다고 말씀 드리는게 아니구요, 신뢰를 못하실까봐 염치 불구하고 말씀을 드려요. 근데 초등학교 4학년인 자제분 말만 듣고 이렇게 감정적으로 문자를 주시면 제가 어떻게 해야 될까요? 자제분이 입상을 못한 이유가 순전히 저 때문이라는 말씀으로 들리는데요. 참 드릴 말씀이 없네요. 숭고한 자제분의 앞날에 민폐를 끼쳐 죽을 죄를 졌습니다. 더 드릴 말씀도 없고, 혹시나 또 답장 하실까봐 차단할게요..“


모르겠다. 아이도 없는 나까짓게 저 어머님의 마음을 알까도 싶다. 하나부터 열까지 무조건 1등으로 키우려 들고, 사회 공공의 이익보단 내 아이 우선주의인 이 시대의 부모를 나는 어디까지 이해해야 될까.


하하,, 실없는 웃음이 돈다. 이젠 하다하다 학부모랑 싸우고 앉았으니 이게 참 뭐하는 짓인가 싶다. 사람이 싫어 고향으로 돌아와 조용히 돈까스나 튀기고 책이나 써야겠거니 했는데 어느새 또 사람들에게 치이기 시작한다.


언제나 사람 사는 세상을 그렸는데, 어느새 사람 없는 세상을 바라게 됐다. 나무 한 그루와 우물과 기름진 밭이 있는 곳이면 좋겠다. 그곳을 찾아 또 떠날 채비를 해야될 때가 점점 다가오는 것만 같다. 언제까지 떠돌아야 정착을 할 수 있을까.


향나무는 자기를 찍은 도끼에도 향기를 뭍힌다고 했는데, 그런 계몽됨을 바라마지 않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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