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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기헌 Dec 16. 2023

조카들과 함께 일본 역사 속으로

일본 여행이 이틀 앞으로 다가와 은행에 가서 환전을 했더랬다. 귀차니즘에 환율을 미리 찾아보지도 않고 100만원을 환전 했는데, 생각했던 것 보다 돈뭉치가 꽤 되어보였다. 얼추 기억 하기론 과거엔 이 정도는 아니였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10년전 즈음 언론사에서 증권연구원으로 발령 받았을 때엔 주요국가 환율에 엄청 민감하게 반응을 하곤 했었던 기억이 있다. 달러, 위안화, 엔화에 따라 국내 물가와 금리, 혹은 증시와 채권 가격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때는 내가 알기로 엔화가 상당한 강세였던 걸로 기억을 하는데, 이렇게 큰 폭의 약세로 돌아선 걸 보니 일본 경제가 위태하긴 한가 보다.


이번에 처음 해외를 가는 조카들에게도 일본 지폐를 보여주며 ”외국 돈 처음 보지?“ 하며 설레발을 유도했더랬다. 이만큼이 우리나라 돈으로 100만원이라고 했더니, 큰 조카는 환율의 의미도 이미 알고 있었다. 이제 곧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다보니 역사와 경제에도 남다른 관심을 보이곤 한다. 중학교 내내 시험만 치면 전과목 100점 이라는데,, 어찌나 대견한지.


이왕 말이 나온김에 조금더 거슬러 올라가 ’플라자 합의‘부터 ’잃어버린 10년‘까지 일본의 굴직한 현대사에 관해 알기 쉽게 쭈욱 이야기를 들려줬더니 웬일로 귀가 쫑긋 서는 듯 보이기도 했다.


어떤 나라를 여행 할 때, 그 나라의 역사와 함께 한다면 그 재미는 배가 됨을 나는 언제나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번 조카들과의 여행에서도 나는 그랬으면 좋겠다. 일본 심장부였던 에도 막부 시대부터 찬찬히 거슬러 올라가며 조카들과 의미있는 시간을 보내고 싶다.


그 끝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오사카의 한 선술집에 둘러앉아 엄마, 누나, 조카들에게 이야기를 풀며 나는 사케를 들이붓고 태평양 전쟁에서 침몰하듯 작렬히 전사하는 거다. 배경 음악으로는 현해탄에 몸을 던진 윤심덕의 ‘사의 찬미’가 좋겠다.


그리고 꿈을 꾼다. 3년 뒤 큰 조카가 수능을 치르는 꿈. 세계사 문항엔 이와 같은 문제가 나오는거다. ’다음 중 미국 주도의 플라자 합의로 인해 일본이 입은 경제 피해 중 틀린 것은?‘ 하며. 수능이 끝난 조카는 문제를 푸는데 삼촌 생각이 얼마나 나던지, 하며 나에게 안기는 꿈이다.


그렇게 조카들의 기억에 대추 한 알 만큼의 흐릿한 기억으로라도 남을 수 있다면 좋은거다. 혼자 늙고 병들어 갈 나에게 조카들이 함께해 줄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잘 알수 있다. 조금이라도 젊은 날 조카들의 기억 한 켠에 아름답게 스며든다는 것, 내 역할은 딱 거기까지인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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