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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기헌 Jan 11. 2024

이제 행복하세요…?

고향에 돌아와 팔자에도 없는 장사를 시작한지도 5년차가 됐다. 회사 생활을 할 때와는 또다른 매력도 분명히 있는데, 그 중 하나는 다양한 손님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느 날은 손님 한분이 식사를 다하고 나가시면서 주뼛주뼛 거리시더니 ”이제 행복하세요..?“ 하면서 묻는거였다. 나는 점심시간 때라 배달이 너무 밀려 있는 바람에 ”네..?“ 하면서 되물었는데, 내 책을 얼마전에 인터넷으로 주문해서 유심히 다 읽어봤다고 하셨다. 그래서 ”저,, 지금은 행복한거 같긴해요. 하하~“ 하며 삐줏삐줏 거리며 머쓱하게 대답을 건넸더랬다. 그러더니 별 반문도 안하시고 그대로 가셨다. 번뇌로 가득해 보이는 뒷모습은 축 쳐진 채.


바쁜 점심 시간이 지나고 잠시 커피 한잔 마시며 쉬고 있는 순간, 그 손님의 물음이 잔상에 계속 떠도는 것만 같았다. '이젠 행복한걸까' 하는. 그리고 그 물음을 던진 손님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걸까, 하는 상념도 함께 들었다.


글쎄다. 뭐랄까. 고향에 돌아온지 5년차가 됐는데, 멀쩡한 직장을 하루 아침에 그만두고 귀향하게 된 표면적인 이유는 그것 뿐이였다. 아버지가 말기암으로 갑자기 돌아가시고 어머니 혼자 고향에 덩그러니 남겨두는게 내 딴애는 너무 싫었던거다. 이유는 그게 전부다.


그런데 서울의 한 언론사에서 오랜 회사 생활을 하면서 결정적으로 마음이 움찔하게 됐던 경우도 부지기수로 떠오른다. 직업 특성상 사회 지도층에 계신 분들을 많이 뵐 수 있었는데, 그 중 두분과의 대화가 유독 기억이 난다.


한 분은 전직 대형은행 회장님이셨고, 한 분은 외교부 차관까지 역임하신 분인데, 이 분은 서울대 정치외교학과를 수석으로 입학하고 행정고시까지 수석으로 합격 했다는 소문이 있어서 당시 엄청 유명세를 떨치고 계셨다.


이 차관님은 업무적으로 협의할게 많아 자주 뵀었는데, 지금은 일찍이 은퇴를 하고 나처럼 지방 어디선가 식당을 운영하고 계신다고 들었다. 그런데 어느 날 뉴스 인터뷰에 나오시는 모습을 우연히 보게 됐는데, 후련하다면서- 너무 행복하다고 하시는 말씀을 듣게 되었다. 부단한 노력으로 이룬 성취와 평생의 업적은 뒤안길로 흘려 보낸 채, 차관님의 모습에서 이제서야 진심이 묻어나는 미소를 볼 수가 있었다.


또 한분인 은행 회장님은 식사를 한번 같이 할 기회가 있었는데 약주를 얼큰하게 하시더니 이런 말씀을 하셨다. 밖에서는 언론의 주목도 받고, 이렇게 환영 받다가 집에 들어가면 너무 공허하다며. 회장이라는 직함이라도 달고 있으니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나 처럼 늙은 이를 이제 누가 찾아주냐면서 말이다.


나는 두 분의 그 말씀들이 어찌나 뭉클했던지, 여전히 기억을 할 수 있다. 그 분들과의 만남에 영향을 받아서인지 지금 이 모양 이 꼴(?)로 살고 있는건 아닌가 싶은, 조소섞인 웃음도 지어지곤 한다.


앞선 손님의 그 물음에 비로소 다시 답한다면, 내가 이젠 행복할 일이 뭐가 있을까 싶다. 아무리 아닌척 한들, 중년에 접어들며 ‘돌싱’이라는 낙인에 찍혀 혼자 버텨내는 삶이 영 달갑지도 않다. 선배며, 후배며, 친구며, 이젠 대부분 자식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때 나는 어디에도 속할 수가 없게 됐다. 그래서 혼자 더 고립되는 삶이 깊어지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요즘은 밤에 잠이 들 때 큰 스트레스나 곪디 곪은 걱정 따위는 들진 않으니 그 지점에서 작은 행복을 느끼게 된다.


몇일전엔 밤사이 눈이 소복히 왔다. 이젠 첫눈이 온다해서 그 설레임을 함께 나눌 이도, 혹은 ”자니?“하며 장난스런 문자 하나 보낼 곳도 없는 삶이지만, 나는 언제나 지란지교를 꿈꾸고 싶다. 그 뿐이다- 나의 행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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