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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기헌 Jan 20. 2024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책 출간 작업, 그 과정 중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은 원고를 쓰는거다. 원고를 쓴 후에는 출판사를 선정한 후 계약을 하고, 표지 디자인 등 책 대강의 얼개를 서로 의견을 교환하며 하나씩 그려나간다. 이름만 대면 알법한 스타 작가들의 경우 출판사를 본인이 나서서 굳이 섭외 할 필요가 없다. 굴지의 출판사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다.


예전에 'JYP' 박진영 대표가 데뷔 하자마자 스타가 되버린 가수 'god' 2집 작업을 앞두고 한 얘기가 문득 생각이 난다. 이제 너희들은 내가 필요없다며, 너희들은 이제 '학교종이 땡땡땡'이란 노래를 불러도 언론이 관심을 가질거고 대중의 인기를 끌거라며.


해서 나도 종종 저 하늘에 있는 별(스타)의 자리가 부럽기도 하다. 감히 넘나볼 수 없는 미지의 세계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나는 원고를 쓰며 가끔 출판사 몇몇 곳에 직접 문을 두드려보기도 하고, 서울에 있는 선후배를 통해 알음알음 소개를 받아 접촉이 되서 담당자들과 더러 얘기도 나눠보곤 한다. 그러다 반색하는 분도 계시고, 어떤 출판사는 지향하는 편집 방향과 나의 언어가 결이 다르다보니 문전박대를 당하는 경우도 이따금씩 발생을 한다.


어느 편집장께서는 내가 쓴 첫 책 중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문장이 있냐고 여쭈시는거였다. 글쎄다. 압박 면접을 받듯 허를 찔린 느낌이였다. 생각이 나질 않아서였다.


그래서 나는 혹시 인용한 부분도 상관없냐고 되물었다. 문인수 시인의 <하관>이라는 시의 대목인데, 돌아가신 어머니를 땅에 묻으며 말하는 장면이다. "이제, 다시는 그 무엇으로도 피어나지 마세요. 지금, 어머니를 심는 중..." 하며.


이 후 나는 내가 쓴 책을 다시한번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봤다. 그리고 언론사 시절 때 쓴 기사들도 쭉 훑어봤다. 자아도취, 혹은 자기모순에 빠지기 십상인 경우가 아닌가 싶다. 내가 나를 지레 평가하고 읽는다는 것이 말이다.


그래서 인터넷에 달린 댓글들도 훑어봤다. 멀쩡한 사람 같은데, 굳이 책 낼려고 우울증을 들먹여 슬픈 레파토리를 설정한거 같다며, 별점은 1개를 버젓이 주고 간 독자분도 계셨다.


오랜 벗들은 그러지 않지만, 가끔씩 사회에서 새롭게 만나는 사람들조차 그런다. 설정 아니냐며. 이쯤되니 이혼한 과거 조차 글을 쓰기 위한 도구가 아니였는지, 하는 의구심을 품는 사람도 있을것만 같다.


내가 하는 모든 행동과 말들이 아무리 진솔하게 전달하려 해도 순수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걸 나는 요즘 많이 느낄 수가 있다. 사회가 극단적으로 양분되고, 국민소득이 3만불을 훌쩍 넘어가니 사람들의 목소리가 더욱 당돌해지고 과감해지는 것만 같다. 눈치를 보지도 않는다. 할 말은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다하고 만다는 주의다. 귀는 막고 입만 여는 이들이 그 중심에 있다. 당사자는 알 리가 없다. 그들 누구도 ‘내가 틀릴 수도 있다’라는 원초적인 생각은 하려들질 않으니 말이다.


혼자 있어서 외롭지도, 이별 했다고 아플 일도 없다. 온종일 손 안에 끼고 다니는 휴대폰에 삼라만상 온 우주가 다 들어있기 때문이다. 외모가 조금 부족해 스트레스를 받아도 이제는 별 문제가 없다. 어플들이 감쪽같이 속여 훈남·훈녀를 만들어주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걸 소비하며 현실과 가상세계를 자유롭게 오가기 때문이다. 공부해서 좋은 대학 가고, 조국을 위한 일꾼이 되려는 건 순박하거나 멍청한 사람들이나 하는 시대가 되버렸다. 유튜브에 올라갈 10분짜리 영상 편집만 할 줄 알아도, 편의점 알바만 해도 대기업 초봉 이상은 벌어들이는 시대인데 말이다.


언젠가 할리우드의 톱스타 키아누 리브스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 처럼 수천억 달러를 벌어도 보고, 나 처럼 유명해 봤으면 좋겠어요' 하며.


그렇다. 사람들은 모른다. 그저 곁가지 하나만 보고 그 나무의 뿌리까지 판단해버리곤 한다. 그리고 본인 생각과 배치되면 비아냥 대고 익명의 뒤에 서서 지레짐작으로 누군가의 결점을 파고들기도 한다.


마음에 균열이 이는 속도가 예사롭지 않은 세상이다. 누군가는 봄과 여름 사이에 허락받은, 그 부드러운 바람결에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라며 다짐 했는데, 우리 사는 사회는,,, 영 그렇다. 서쪽 어딘가에서 고운 바람이 불어와도 이젠 별로 나아질 것 같지가 않다.


그럼에도 나는, 살아봐야겠다. "짧은 삶인데 함께 있는 동안 즐겁게 살라"며 가르침을 주셨던 제주도에서 뵌 스님의 말씀을 다시한번 곱씹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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