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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기헌 Feb 02. 2024

사랑의 이해

새벽5시에 출근해 공판장에 들려 물건을 싣고 납품 준비를 한다. 나를 비롯한 새벽을 여는 사람들의 하루는 짙은 어둠 속에서 그렇게 시작된다. 건물 옆 공터에는 토막낸 장작에 불을 붙혀 추위를 녹이려는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한다.


나도 그 틈에 껴 잠시 몸을 녹이며 납품일을 마치고 곧장 오픈해야 될 식당과 마감을 코 앞에 둔 책 원고 작업, 그리고 위탁 받은 번역, 식당 마감 후 영어 과외까지의 빼곡한 하루 일정을 생각해 본다. 생각의 골이 깊어지는 날이면 급한 마음에 무의식적으로 속도를 내다가 감시 카메라에 찍혀 벌금을 문 적도 적지 않다.


오늘도 식자재를 가득 싣고 채비를 마친 뒤, 1톤 냉동탑차 차량을 운전해 가장 먼저 경북도청으로 향한다. 도청 이전으로 인해 신도시로 조성된 이곳은 어디선가 불어오는 쾌적한 공기로 인해 여느 도시와는 색다른 느낌이 감돈다


목적지에 도착해 식자재를 하차 한 뒤 검수를 받고, 곧장 다음 목적지인 청송교도소로 향한다. 약 60km 거리. 가는 도중에 암흑이 걷히고 동쪽에서 뜨는 붉은 태양을 직관할 수 있다. 지구에서 태양까지의 거리는 1억5천만km. 빛의 속도로 가면 8분20초가 걸리는 거리. 그 거리의 태양이 내 눈 앞에 선명히 보인다.


나는 귀에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듣기 시작한다. 언제부턴가 음악을 들을 때 가사의 의미를 귀담아 듣게 되는 이상한 버릇이 생긴 나는, 오늘도 가사를 들으며 그 속에 내 과거를 대입해 보기도 한다.


‘누구보다 사랑스럽던 네가 왜 내게서 떠나갔는지’

‘사랑한다 말하면, 보고싶다 말하면, 그리워했다 말하면, 넌 점점 더 멀어지잖아’

‘내 세상은 널 알기 전과 이후로 나뉘어’

‘혹시라도 내 맘이 들켜서 우리 사이가 조금더 멀어진다면 그게 더 싫어서 사랑한단 말을 아끼게 돼‘

‘널 사랑할리 없어, 내 바보 같은 마음이’


노래 가사 속을 따라 걸으며 지난한 세월을 파노라마 처럼 질서정연 하게 떠올린다. 다시 재회할 것 처럼 기대 했지만, 단 한번도 그러지 못했던 냉담한 현실도 파노라마의 한 켠에 드러나 있다.


대학 시절 만나던 친구가 저 멀리 캐나다 유학을 떠난다며 함께한 마지막 밤. 서로 끌어안고 펑펑 울며 1년 뒤를 기약 했지만, 이제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을 직감한 나는, 사랑의 아픔을 그때 처음 감지했는지도 모르겠다.


오랜 이별 뒤에도 어떻게 그들을 잊겠나. 학창 시절부터 최근까지도, 이별 방정식을 나는 끝끝내 풀지 못했다.


‘자니?’ 하며 취중에 보내는 문자의 속내는 아마도 그 시절의 당신들이 그리워서 일거다. 다른 멋진 사람과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한 가정의 일부분이 된 당신들이지만, 나는 그때 그 시절의 당신들을 기억한다. 오롯이 내 기억속에만 있는 특별함이다.


이혼을 한 이도 괜찮았고, 아이를 키우는 싱글맘이여도 좋았다. 사랑할 때 만큼은 그 모두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랑은 그 모두를 이길 수 있다고 여전히 믿는다.


이 아침, 다시 오지 않을 당신들을 생각해 보게 됐다. 여름에만 피고 사라지는 꽃, 능소화의 아픔을 함께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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