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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기헌 Jan 17. 2024

망하는 건 경험이 아니야

하루는 영어 과외 봐주는 날이라 가게를 평소보다 일찍 마치고 학생 집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리고 2시간 정도 문법과 회화 과외를 해주고, 이 친구가 탕후루를 먹고싶다 해서 같이 먹으려고 집을 나섰다.


유행이긴 한가보다. 늦은 저녁인데도 학원가에 위치한 탕후루 가게는 학생들이 저만치 줄을 서있었다. 우리도 줄을 서서 10분 정도 기다린 후 주문한 탕후루를 받았다. '이 설탕 덩어리를 대체 왜 먹지...' 하는 속앓이를 숨긴 채, 나도 맥주를 한 캔 사서 한 알을 집어 먹었다. 같이 간 학생은 배가 고팠는지 순식간에 꼬챙이 한 줄을 먹어 없애버렸다.


근데 요즘 학생들이 발육이 워낙 빨라서 그런지 이 학생이랑 같이 있으니 괜히 동네 어른들이 보시면 오해할 것 같다는 혼자만의 생각이 들었다. 고2 밖에 안되는 여학생인데, 이 친구 뿐만 아니라 주위에 있는 친구들도 내 기억속의 고등학생들과는 다르게 너무도 성숙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뭐, 잠시잠깐 학생들 틈에 껴 나도 학창시절로 돌아가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한참이나 먹다가 배가 불렀는지 그제야 나한테 뭔가를 물어왔다. 혹시 OOO 유튜버  아냐면서 말이다. 나는 ”응? 뭐 대만 사람이야? 하하“ 하며 되물었다. 그때부터 세대차이 때문인지 대화가 매끄럽지 못하고 헛돌기 시작했다.


알고봤더니 그 유튜버가 얼마전 탕후루 가게를 오픈한다고 공지를 했는데, 기존에 어떤 아주머니가 운영하는 탕후루 가게 바로 옆자리에 딱 붙어서 오픈을 한다고 하는 얘기였다. 이 유튜버가 지금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다며. 그 옆집 아주머니는 생계를 위해 하는데 본인은 '망하는 것도 경험'이라며 유튜브 영상을 통해 조소 가득한 얘기들도 서슴치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오픈을 하면 본인 인맥을 총동원해 인플루언서들을 초대할거라며 유명세도 더불어 과시를 했다고.


글쎄다. 겉모습만 봐서는 앳되 보이는게 참 젊고 귀여운 친구 같았는데, 나도 ’꼰대‘가 다 됐는지 이 친구 부모님은 뭐하는 사람일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리고 저 가게를 계약하기까지의 부동산 사람들과 인테리어 하시는 분들까지, 옆에 똑같은 가게가 버젓이 있는데, 옆에 계신 어른들은 어떤 마음으로 계약을 해주고 작업을 했을까, 하는 생각도 덤으로 들었다.


내 생각이 과한걸까. 모르겠다. 나도 장사를 하고 있으니, 옆집 아주머니의 입장을 조금더 헤아리고 싶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유명세로 사회를 기만하고 그 기만은 통제하기 힘든 지경에 이르는 광경을 자주 목도하게 되는 요즘인 것 같다. 호칭이라기 보단 점점 멸칭이 되어가는 'MZ세대'만의 잘못일까. 혹은 한 아이만 낳아 지극정성으로 키우는 부모세대의 잘못된 훈육이 원인인 걸까. 소시오패쓰, 마키아벨리즘, 나르시시즘의 흑색 삼각형 비율이 유독 커보인다면 너무 나간걸까.


구독자 수에 따라 신분이 갈리고, 법의 사각지대에 있는 플랫폼이 즐비하다보니 통제가 상실된 시대에 살고있는 것만 같다. 황색 매체들이 그걸 부추기며, 많은 소비자들은 어쨌거나 아무 문제 의식 없이 그런 컨텐츠들을 소비해 준다.


결국 그 유명세가 세력화 되고, 일부는 몰락을 맞이한다. 준비되지 않은 권력(=유명세)은 그렇게 무너진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명확히 알려면 권력을 줘보라고 했다. 이면에 가려진 또 한명의 유명 유튜버가 어떤 사람인지, 우리 사회는 권력을 줌으로써 이렇게 또 잘 알게 됐다.


우리 사는 곳이 보다 더 계몽됐으면 하는 바램이 있지만, 그 바램은 언제나 공염불로 그치게 된다. "짧은 삶인데 함께 있는 동안 즐겁게 살라"는 어느 성현의 말씀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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