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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기헌 Jan 25. 2024

상처 입은 사슴이 가장 높이 뛴다

요리라곤 라면과 김치찌게 정도 밖에 할 줄 몰랐던 내가 돈까스 가게를 운영한지도 햇수로 5년차가 넘어가고 있다. 대책 없이 회사를 그만두고 애초에 식당을 계획한건 아니였지만, 아는 주방장님과 친분을 맺으며 요식업의 세계로 발을 디디게 된 것이다.


재미있었다. 양파를 써는 속도도 제법 빨라지고, 레시피 없이 간을 맞추는 솜씨도 해가 갈수록 나아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수제돈까스 전문점이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시작한 장사는 나름 입소문을 타고 정착해나가기 시작했고, 나는 급기야 겁도 없이 분점을 하나 더 내기도 했다.


생채기는 거기서부터 시작됐다. 직원을 고용하고, 맡겨놓으면 어떻게든 돌아가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이 화를 부른 것이다. 때마침 코로나 전염병이 발발했고, 두 가게의 매출은 하루 아침에 적자로 돌아섰다. 막막했다. 그 시기였다. 배달을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던 시점.


부랴부랴 나는 '배달의 민족'이라는 우리나라 굴지의 배달 플랫폼에 입점을 해 배달을 시작하기로 했다. 웬 걸, 코로나 시국에 맞물려서인지 배달 시장이 이렇게나 호황일 줄은 상상치 못했다. 적자로 돌아섰던 매출은 다시 이익이 나기 시작했고, 가게들은 다시 정상을 찾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은 무던히 흘러갔고, 나는 낮에는 일을 하며 밤에는 글을 쓰는 삶을 반복하고 있었다.


두번째 생채기는 그즈음 이였다. <배달의 민족>이라는 어플을 이용해 배달업을 주로 하다보니 손님들의 별점과 평가가 가게의 존폐를 좌지우지 하는 듯한 느낌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죄송' 앵무새가 된 마냥 항상 손님들한테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적으로 하고 있었다. 음식이 빨리 도착해도 죄송하고, 1분만 늦어도 죄송한 것이다. 기사분들이 바쁘게 움직이다 보니 음식이 헝클러져 있어도 그 책임은 내 몫이다. 벨을 누르지 말고 문 앞에 그냥 두고 가라고 요청 했는데, 기사 분들이 모르고 벨을 누르게 되면 욕 세례는 우리 가게의 별점과 리뷰로 돌아오게 된다.


그렇게 '죄송' 앵무새가 된 채 3년여의 세월이 흘렀다. 나는 도대체 언제까지 죄송해야 될 지 하는 번민과 함께. 그러다 난생 처음으로 가게에서 운영하는 SNS와 <배달의 민족> 플랫폼을 통해 '고객님께 드리는 글' 이라는 명목으로 글을 공지 했다. '죄송' 앵무새를 벗어나기 위한 나름의 발버둥 이기도 했다.


다음은 글의 전문이다.


안녕하세요, 안동이라는 자그마한 소도시에서 <봉식당>이라는 수제돈까스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임기헌 이라고 합니다. 다름이 아니옵고, 저희 가게는 홀 규모가 작다보니 ‘배달의 민족'이라는 플랫폼을 이용해 배달업을 위주로 하고 있는데요. 이 플랫폼을 수년간 이용하다보니 미쳐 생각지도 못한 다양한 고객님들을 마주할 수 있는것 같아요. 저희 봉식당의 경우에도 타 가게들과 마찬가지로 이따금씩 별점 테러를 당하기도 하고, 때로는 전화를 하셔서 다짜고짜 다그치는 분도 종종 겪어볼 수 있는데요.


가령, 연이어 배달을 시켜드심에도 불구하고 아무 이유 없이 계속해서 별점을 낮게 주시는 분도 계시구요, 너무 맛있었다는 리뷰를 달아주시고는 별점은 최하점인 1점을 주는 분도 계세요. 때로는 배달이 예상치 못하게 너무 빨리 왔다며 별점 한개를 뺀다는 친절한 분(?)도 계셨구요.


저희 봉식당 뿐만이 아니라 아마도 코로나 시국을 겪으며 대부분 자영업자분들은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배달의 민족>을 이용하고 있을거에요. 그런데 이 플랫폼 자체가 고객 기반이라 자영업자들은 자연스럽게 '을'이 되는 것 같습니다. 고객들에게 별점과 리뷰라는 지나치게 강력한 무기를 쥐여 준 셈이 된거죠. 자영업자들은 방어 할 어떠한 수단도 없게 되구요.


여기서 문제가 생기는데요. 앞서 제가 말씀 드렸다시피 장난을 치시는 분들이 많다는 거에요. 저희 자영업자는 어떠한 방어 수단도 없기 때문에 고객님들께서 휘두르는 무기에 그대로 노출이 되어 있어요. 굳이 급소를 가격하지 않더라도, 아무렇게나 휘둘러도 자영업자들은 큰 타격을 입게되는 구조인거죠.


분명 따뜻한 고객님들도 많이 계세요. 밥이 설익었다고 연락이 오셔서는, "사장님!! 밥이 조금 덜 익은거 같은데, 다른 손님한테도 그대로 나갈까봐 걱정이 되서 전화 드려요!!" 하면서 말이죠.


제가 절대적인 어떤 기준을 말씀 드리는 건 아니에요. 제가 뭐라고 말이죠. 귀한 시간에 소중한 밥 한끼를 드시는데, 저의 귀책이 있다면 당연히 질타도 당해야 되겠죠.


그런데 아무 근거 없는 장난은 자제해주셨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정중히 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젊은 날 언론사와 외국계 기업을 오가며 회사 생활만 하다가 불혹의 나이에 접어들며 고향으로 돌아와 난데없이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데요. 그래도 저 같은 경우엔 아직 젊은 혈기에 버텨낸다지만, 하루하루 벌며 벼랑끝에 서있는 심정으로 영업하시는 나이 지긋한 분들이 많이 계세요. 어떠한 도움까지는 바라지도 않지만, 작은 배려 정도는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좋아하는 작가 중에 에밀리 디킨슨이라고 있는데요, 그 분의 시 중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상처 입은 사슴이 가장 높이 뛴다'


고객님들께서도 한번쯤은 총 맞은 사슴의 처지를 상상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어쩌면 뛸 힘 조차 상실해버린 사슴들을 말이죠.


마감 시간이 다 됐네요. 오늘 하루도 저희 봉식당을 애용해주신 모든 고객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마음을 담습니다.


소셜미디어에 올려놓은 위의 공지글에 동종업계 사장님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자영업자들의 마음을 대변해줘서 고맙다는 메세지도 심심치 않게 받기도 했다.


뭐랄까. 고객들의 자비를 바라는 건 순전히 내 욕심인걸까.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면 권력을 줘보라 했는데, '별점'과 리뷰'라는 권력을 오롯이 소비자에게만 줌으로써 결과는 어떻게 됐는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균형을 맞추며 살아가는 일은 여간 쉽지가 않다. 칼의 상처는 아물어도 말의 상처는 아물지 않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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