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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기헌 Feb 26. 2024

사랑인줄 알았는데 부정맥

근래 스트레스가 많이 쌓여 영화관으로 가 영화를 한 편 봤다. 호기롭게 나서긴 했는데, 하필 골라도 광기 짙은 호러 영화를 고르는 바람에 영화가 끝난 후엔 더 어질어질 한 기분이 드는 것 같았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는 근처에 있는 아는 동생과 저녁을 같이 하기로 했다. 약속 장소로 가는 길, 오랜만에 평일 퇴근 시간대에 밖을 나서서 그런지 낯설었다. 도로에 차들이 이렇게나 붐볐나 싶다. 거리엔 사람들로 넘실거렸다.


회사를 마치고 동기, 혹은 선후배들과 모여 을지로 지하 골뱅이집에서 소주한잔 하던 그 시간들이 오늘따라 참 그립게 다가왔다. 2차는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이 내려다보이는 라이브 카페를 자주 갔었더랬지. 3차는 광장시장으로 옮겨 해물파전을 안주삼아 막걸리를 안마실 수 없었고. 만취가 된 새벽에 여친에게 보내는 ’자니?‘ 하는 문자는 반복되는 헤어짐의 단초가 되곤 했었지.


지나간 건 향기롭다. 현재를 사는 오늘은 맡지못할 그 향은 언제나 과거로부터 불어온다. 봄이면 꽃향기와 뒤섞여 추억의 블랙홀이 되어 빨아들이기도 한다.


사랑인 줄 알았는데 부정맥이란 사실도 마흔이 훌쩍 넘어서야 알게 됐다. 긴 착각과 오해의 시간들로 얼룩진 상실의 시대를 살아간다는 건, 그래서 낯설다.


낯선 거리와 낯선 향, 낯선 오늘이 저문다. 막걸리 좋아하는 이 치고 악한 심보 없다는데, 상실의 시대에도 그런 이들로 가득하길.


오늘 저녁은 막걸리로 정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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